[폴리뉴스 한유성 기자] 북한이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한 핵무력정책 법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 중 핵관련 언급은 그 내용 측면에서 보면 한반도 핵 위기 우려를 한층 고조시킬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북한이 '자의적 위협 판단'에 따라 언제든 남한을 겨냥한 핵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원칙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채택한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는 핵무기의 사용조건으로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륙무기(대량살상무기) 공격이 감행되였거나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 등 포괄적으로 규정했다.
모두 5가지 사용 조건을 제시했는데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공격이나 공격 임박 징후 때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참수작전' 임박 징후 상황에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핵 선제공격 위협을 내포한 법령 채택에 대해 군 관계자는 12일 "기본적으로 김정은 위원장 등이 최근 밝힌 핵무력 정책을 공세적으로 열거 명시한 것으로,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북핵 고도화에 비례해 한미가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전략자산 수시 전개와 개정된 '맞춤형 확장억제전략' 등 한미 간 논의 결과가 차차 공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군 관계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앞서 올해 4월 남한을 겨냥해 핵을 공세적으로 쓸 수 있다는 방향과 원칙을 제시한 데 이어 그 구체적인 조건과 절차를 새 법령에 명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군 관계자들이 '일축'는 듯한 평가를 내놓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무력정책 법령을 통해 핵무기 사용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우려한다. 세종연구원의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은 핵무기 또는 비핵(재래식)무기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핵무기 사용을 정당화하고, 외부의 비핵무기 공격에도 핵무기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명문화해 한반도에서 우발적 군사충돌 발생 시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진단했다.
실제 이 법령 3항(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은 국가핵무력 지휘통제체계가 공격을 받게 되면 사전에 짜여진 작전계획에 따라 도발원점과 지휘부를 자동적으로 핵타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적 공격으로 김정은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거나, 한미가 북한 수뇌부 제거작전, 속칭 '참수작전'에 나섰다고 북한이 판단하면 자동 핵공격이 이뤄진다는 의미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다만, 북한은 법령에 핵무기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국무위원장이 가진다고 명시하면서도 자동 핵 타격이 이뤄지도록 한 것은 상충되는 대목이다. 사전에 계획된 작전계획에 따라 일선 부대에서 운용하는 핵무기를 사용하려면 일선 부대 지휘관의 발사 명령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일선 부대 지휘관에게 사전 계획에 따른 '핵 버튼' 권한이 부여됐다면 우발적 충돌이나 핵관련 사고 위험도 커질수 밖에 없다.
이에 조남훈 국방연구원 미래전략연구위원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핵무기와 관련한 모든 결정권이 있다고 원칙을 명시하면서도 동시에 자동 핵사용 조건을 만들었다"며 "북한이 어떠한 핵사용 의사 결정 구조를 법령이나 하위법령에 규정했는지, 어느 정도 권한을 야전 사령관에 위임했는지 앞으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7차 핵실험 준비를 마친 것으로 한미 정보당국이 판단하는 가운데 노골적인 핵 '협박'까지 더해지면서 한미의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 목소리도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16일(현지시간) 한미는 미국 워싱턴D.C.에서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를 4년 8개월만에 재가동하고 확장억제 실효성 강화 방안과 포괄적 대북 억제방안을 논의한다. 조남훈 위원장은 "확장억제 실행력 제고는 확장억제에 한국군의 참여를 더 높이는 것"이라며 "정보공유 강화, 감시자산 공동 활용 등 한국군 역할을 확대하는 다양한 토론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확장억제 구현은 결국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에 달려 있으므로 미국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익명을 요구한 핵관련 전문가는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유사시 미국이 제공하는 전력에 핵이 명시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핵에는 핵으로'라는 대응방식이 더 강조될수록 대북 억지효과는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현행 핵우산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북한이 전술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지속하고 선제공격을 위협하는 등 핵위협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현재의 확장억제 수준은 즉각 작동을 확신하기 어려운 '찢어진 핵우산'이 됐으며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 핵균형을 이루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 정가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 확장억제 수준은 북핵 억지에 충분하며, 북한의 핵 사용에 재래식 무기로도 관리·대응할 수 있다는 인식도 퍼져 있다. 정부가 북한의 핵 위협 고도화에도 비핵화 기조는 변함없다고 강조하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대북 정책의 변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9일 미국의소리(VOA)에 북한의 핵무력정책 법령 채택 등에 대해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이 '비핵화'에서 '핵 위기 관리'로 방향이 바뀔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VOA는 "워싱턴에서는 핵무기 선제 사용 의도를 밝힌 북한과의 충돌 가능성을 다루는 데 있어 위협 관리가 정책의 주안점이 될 것으로 본다는 설명"이라고 풀이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앞으로 그런 얘기를 더 많이 듣게 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한국과 다른 나라 당국자들이 핵무장한 북한의 현실과 그 위협의 관리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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