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온라인게시판에 올라온 어느 카페 사장의 글이 기사화되어 화제가 됐다. 카페에서 예의 없는 태도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 노인 손님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떠난 자리에 소변이 흥건히 남아 곤혹을 치렀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 달린 댓글 대부분은 노인에 대한 비난이었고, 그 중 상당수는 읽기 힘들만큼 혐오성이 짙었다.

노키즈존 연합뉴스 포켓이슈 12월 2일자 기사 https://www.yna.co.kr/view/MYH20211201017800797
▲ 노키즈존 연합뉴스 포켓이슈 12월 2일자 기사 https://www.yna.co.kr/view/MYH20211201017800797

손님으로 온 노인이 소변을 흘리고 떠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노인성 질환으로 인해 신체 기능이 저하된 탓으로 짐작된다. 이들이 보인 예의 없는 행동과는 별도로, 나이가 들고 신체 기능이 떨어져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것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요실금이나 경증 치매 증세를 가진 노인들이 이 기사와 댓글들을 본다면 어떤 심정일까.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들이 가장 대하기 어려운 상대가 교수 출신의 남성 노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늙고 병든 것도 힘든데, 익숙한 사회적 지위를 잃은 채 약한 존재, 돌봄의 대상이 된 상황에 적응하는 것은 더 힘들어 완고한 태도로 반발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타인의 돌봄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음에도,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평생을 제 손으로 밥 한 끼 지어보지 않고도 따뜻한 밥상과 깨끗한 옷가지, 청결한 집이 어떻게 마련될 수 있는지 무관심한 사람은 숟가락 들 힘이 없어져서야 자신이 돌봄 받을 처지에 놓였음을 깨닫고 좌절한다.

누군가의 돌봄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타인과 사회공동체의 돌봄을 받아야하며, 이것은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할 기본권이다. 나이가 들어 신체가 퇴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로 인해 더 많은 돌봄을 받아야하는 상황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몇 해 전부터 등장한 ‘노키즈존’은 행동을 제어하기 힘든 사회 구성원을 공간에서 배제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우는 아기, 뛰어다니는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지 않고 방치하는 보육자에 대한 비난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는 아동의 발달 특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사회 구성원들과의 공존 보다 내 공간을 침범 받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가치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면 돌아다니지 말라는 사회에서 소란스러운 아이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존재만으로 ‘민폐’로 낙인찍힌다.

이렇게 만들어진 얌전하고, 재빠르고, 건강한 ‘정상인’들만의 사회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평생을 ‘정상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결국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민폐’를 끼치며 살아야한다면, 이를 공동체 안에서 수용 가능한 자연스러운 질서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어리고, 병들고, 늙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위해서는 ‘돌봄 받을 권리’를 사회 공동체가 보장해주어야 한다. 약한 존재에 대한 시혜와 동정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리는 기본권으로 말이다.

인간은 맹수와 같은 힘도, 조류와 같은 날개도 없었지만 유구한 시간동안 서로를 돌보며 살아남았다. 피가 섞인 혈족이 아니라도 서로를 지켜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발전시켜왔다. 국가라는 울타리를 비롯해 법률, 군대, 세금, 복지 등의 질서를 통해 서로에 대한 돌봄을 주고받았다. 돌봄을 비생산적인 노동으로 치부하고, 돌봄의 대상을 무시하는 것은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최근 핀란드의 남성 국방부 장관이 육아휴직을 공지해 화제가 되었다. 나토 가입으로 바쁜 시기이지만 아이는 금방 자라니 그 순간을 사진으로만 남기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말에 응원이 쏟아졌다. 육아휴직은커녕 야근과 주말특근으로 아이들과 친해질 시간조차 갖기 어려운 한국 남성들에게는 여전히 꿈같은 이야기다.

나토 가입 바빠도 아이가 먼저…핀란드 장관 '2개월 육아휴직' (연합 12월 16일자 기사) https://m.yna.co.kr/view/AKR20221216093100009
▲ 나토 가입 바빠도 아이가 먼저…핀란드 장관 '2개월 육아휴직' (연합 12월 16일자 기사) https://m.yna.co.kr/view/AKR20221216093100009

소중한 사람을 ‘돌볼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돌봐야할 대상은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사랑하는 가족을 돌볼 수 있도록, 그 권리를 법과 제도로 보장하는 사회라야 돌봄 받을 권리도 함께 충족될 수 있다.

정부에서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보겠다고 나섰다. OECD 최고수준의 노동시간을 더 늘리겠다는 것은 돌볼 권리도, 돌봄 받을 권리도 기대할 수 없는 사회로 향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강공모드가 노동부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을 퇴행시킬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세상, 타인을 돌보고 돌봄 받는 것이 짐이 되지 않는 세상을 언제까지 상상 속에 가두어둘 것인가. 새해엔 함께 돌보는 세상을 향한 돌봄 시민들의 뜨거운 연대와 행동이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김재연

前 진보당 상임대표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
19대 국회의원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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