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6일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강당에서 열린 '의사인력 수급 실태 발표 및 의대정원 확대 촉구 기자회견'에서 경실련 관계자들이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0월26일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강당에서 열린 '의사인력 수급 실태 발표 및 의대정원 확대 촉구 기자회견'에서 경실련 관계자들이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 정부의 의료정책 수술과 의료계의 반발

마침내 정부가 의료정책의 수술에 나섰다. 지난 2월6일 정부는 의료현장의 곤경과 향후 수요 예측을 통해 의대 정원을 2천명 늘려 5년간 유지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의료계의 즉각적 반발이 있었고,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선도적으로 파업(형식상 사직)의 형태로 증원을 무력화시키려는 집단행동을 결행하고 있다. 의대생들 역시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응급실 뺑뺑이 등 환자 사망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국민들은 의사 증원에 압도적 찬성이다. 물론 의료계 일각서 제기하는 일부 정책 사안은 지극히 온당하다. 예컨대 외과수술 등 필수의료 분야에서 인력이 대거 빠져나가는 취약성을 드러냈는데, 고된 일에 비해 낮은 수가가 책정되는 등 의료자원의 배분과 관련된 정책의 과실이 문제라고 판단된다.

또한 법률 규정으로 수술실에 CCTV를 설치토록 의무화하였는데, 이로써 감시받는 느낌을 갖는 의사가 위험한 일을 기피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부분이 있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실수가 있을 터인데, 그럼에도 전적으로 신뢰를 주어야 책임감을 갖고 소신껏 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문제 제기는 의대 정원 확충과는 직접 무관하다. 국민의 눈으로 시선을 서울 아닌 지방으로 돌리면 사태가 달리 보인다. 환자들이 서울로 대거 몰려들고 있음은 지역의료가 황폐함을 말해준다.

지역의료 시스템이 강화되어야 하고, 또 곳곳에 의사가 포진되어야 한다. 의사 수가 대폭 늘어나야 해결 가능하다. 의사는 의료행위를 하고, 정부는 바르게 의료정책을 짜면 된다. 그런데 왜 일부 의사들은 난리를 치는 것일까? 그럴듯한 나름의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국민 눈에는 진짜 속내가 하나로 보인다. 실력과 노력으로 쟁취했으니 최고의 돈 대우를 받고 싶다는 것이다.

2. 의사의 능력주의에 대한 정치철학적 성찰

왜 일부 의사 집단은 국민의 따가운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노동자 파업은 노동3권에 대한 권리이기도 하고 그 파장이 해당 사업장에만 미치는 반면, 의사집단의 의료행위 거부는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뿌리치는 냉혹한 처사이다. 노동자가 약자의 위치에 있는 한 그들의 항거는 정당성과 결부된 파업일 수 있지만, 의사는 용어 그대로 성 안 사람이라는 뜻의 부르주아로서 오늘날 사회적 강자이고, 이에 그 집단의 행위는 파업이 아니라 이익 결사체의 처사일 뿐이다.

미국의 헌법을 기초한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은 어떤 사회든 시민의 자유를 허용하는 한 이익집단의 발호를 해소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두 가지를 사회제도에 적극 반영코자 하였다. 하나는 로마 공화정을 쫓아 권력의 분산 통한 견제와 균형을 조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화주의 정신에 의거하여 권한 위임을 받는 위치에 “견식 있는 관점과 덕을 소유함으로써 국지적 선입견과 부정의 계략에 대해 우월하다고 인정되는 대표들”로 구성되도록 공을 들였다.

만일 의사집단이 정부의 말마따나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잡고 극단적인 투쟁을 부당하게 일삼는다면, 보건의료 제도의 대수술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는 새 방도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사법시험 제도의 병폐를 개선한 것과 유사한 조치가 취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사는 판검사 및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사’자가 붙는 상류층이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능력만큼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익숙하다. 과연 온당한 생각일까? 존 로크(John Locke)는 자유와 생명,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는 누군가로부터 침해당하지 않을 천부적 권리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토지에 대해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으니 로크의 사유재산권이 옳다고 할 수 없다.

사람이 갖는 재능은 어떤가? 자유지상주의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공정한 절차를 통해 자발적으로 취득하거나 이전한 자산은 정의롭다는 소유권 개념을 제시하면서 최소정부와 시장자유주의를 옹호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지능이나 신체적 조건 등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속성의 경우 마땅히 받을 만해서 받은 것이 아님에는 동의하고 있다.

평등 지향의 자유주의를 개척한 존 롤스(John Rawls)는 누구도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마땅히 받을 만해서 받은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한 부모의 형제 가운데 하나는 재능이 있어서 ‘사’자 직책을 갖기도 하지만 다른 형제는 발달장애를 갖고 태어난 경우가 얼마든지 있듯이 자연적 재능은 우연이다. 임의적 우연성은 당연지사의 도덕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이에 롤스는 무지의 베일을 쓰고 맺게 되는 사회계약의 차등원칙은 타고난 각인의 재능의 분배를 공동자산(common asset)으로 간주한다. 이로써 어떤 제도든 사회적 약자인 최소 수혜자에게 가장 나은 이익을 가져다줄 때 정의롭다고 판정한다. 물론 후천적 노력마저 다 외면하지 않기에 차등을 허용하지만, 노력하는 성품 역시 일부 물려받는 것이기에 이를 최소화하는 방도를 제시한 것이다.

3. 공동선에 부응하는 존경받는 의사

미국 건국의 공화주의를 발전시킨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롤스의 공동의 자산 개념에 주목하지만, 그가 출발 때 채택한 무연고적 자아 개념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수미일관의 정당성을 갖는다고 본다. 샌델은 2020년 <능력의 횡포(The Tyranny of Merit)>라는 저술을 통해 “사회 속의 우리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고유한 역할을 인정하는 “공동선의 정치”에 들어설 때,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인지함으로써 겸손해질 수 있기를 고대한다.

의사는 제 능력 뽐내며 집단 이익에 매몰되기보다는 공동선에 기여할 때 상응하는 명예와 아픈 이들의 칭송이 이어지는 따뜻한 인정을 받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염려 속에 환자들을 성심껏 돌보는 존경받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 정부와 의사, 국민과 의사 사이에 갈등이 첨예하게 빚어지는 이 시기에 건강한 식견과 덕을 갖춘 의사들이 나서서 난국을 바르게 푸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해본다.

 

한면희 21세기공화주의클럽 상임대표
한면희 21세기공화주의클럽 상임대표

한면희

현재 21세기공화주의클럽 상임대표 (성균관대 철학박사)
전 창조한국당 대표, 한국환경철학회 회장, 녹색대학 대표
전 (사)환경정의 연구소장,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위원장
저서로 <환경윤리>, <초록문명론>, <제3정치 콘서트>, <21세기 공화주의>(공저)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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