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리아스》 6 -(결結) 분노는 복수로 해소되지 않는다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의 이 복수 퍼레이드를 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기가 아쉬웠던 모양입니다.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이고 시신을 마차에 매달아 트로이 성을 한 바퀴 돌며 시위하는 것으로 그의 분노가 해소되었다고 이 복수극을 끝내기에 호메로스의 분노의 시 《일리아스》는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은 아닐까요?늦은 밤 트로이의 왕, 늙은 프리아모스는 늙은 마부만 데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그리스 진영 아킬레우스를 찾아갑니다. 신의 도움을 받아 아킬레우스의 막사에서 마주한 두 장수. 프리아
- 《일리아스》 5 -(승承) 분노는 분노를 낳고아킬레우스의 전선 이탈로 그리스 전력은 급락합니다. 성안까지 몰렸던 트로이가 저항에서 벗어나 공세로 전환하며 그리스를 바닷가까지 밀어냅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가멤논은 오디세우스를 보내 아킬레우스와 화해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요지부동입니다. 트로이 왕세자 헥토르가 이끄는 트로이군은 이제 항구에 정박한 그리스 함선까지 쳐들어와서 불을 지릅니다. 그리스 장수들이 하나둘 부상당하고,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몰립니다.더 이상 개인적 분노에 사로잡혀 조국 그리스의 위기를 외면할
- 《일리아스》 4 -(기起) 아킬레우스의 분노아킬레우스의 분노도 그 처음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됩니다. 승리를 눈앞에 둔 그리스 진영에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이에 전군 지휘관 회의가 열리는데, 여기서 아킬레우스는 그 이유가 아가멤논이 아폴론의 신관 크리세스의 딸 크리세이스를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버럭한 아가멤논은 크리세이스를 돌려줄 테니 그럼 아킬레우스도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를 내놓으라고 맞짱을 뜹니다. 이에 화가 난 아킬레우스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전선을 이탈해버립니다. 이렇게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시작됩
트로이의 찌질이 왕자 파리스와 당대 최고의 미인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의 사랑의 도피- 《일리아스》 3 -트로이전쟁, 그 시작은 미약하나트로이전쟁이 역사 속의 전쟁으로 확인되었지만, 그 발단과 경과 등 전쟁의 전모는 알 수 없습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두 편을 통해 트로이전쟁을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는 수 없이 그리스의 트로이 성 습격 사건 정도의 일회성 전투일 수 있는 트로이전쟁을 그리스인 호메로스의 상상대로 당대 모든 신과 영웅 그리고 지혜로운 인간들이 총출동한 최초의 동서 세계대전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세상
- 《일리아스》 2 -역사 속의 트로이전쟁트로이전쟁은 신화 속의 전쟁으로 오랫동안 묻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1870년에 독일의 아마추어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1890)이 트로이전쟁 유적지를 찾아냈다고 발표했습니다. 역사적인 고고학적 발견이었습니다. 그러나 하인리히 슐리만이 주장한 곳은 트로이전쟁이 일어나기 천몇백 년 이전 지층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정작 그 지층 위에 묻혀 있었던 트로이 성벽 일부가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20세기 들어 과학적인 조사를 통해 트로이전쟁의 유적으
- 《일리아스》 1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항상 붙여서 말하다 보니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로 하나의 작품으로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지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라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리아스》는 1만 5,693행으로 된 ‘트로이 성의 노래’이고, 《오디세이아》는 1만 2,110행으로 된 ‘오디세우스의 노래’로, 각각 24권에 수록된 독립된 대서사시입니다.《오십, 고전에서 역사를 읽다》 시리즈에서 두 번째로 다룰 고전은 바로 《일리아스》입니다. 《일리아
- 《그리스 로마 신화》 6 -두 쿠데타의 배후 세력은 모두 어머니입니다. 가이아는 우라노스에 속고, 레아는 크로노스에 속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가이아는 막내아들 크로노스를 모반에 끌어들여 남편 우라노스를 거세하고, 어머니 레아는 막내아들 제우스를 앞세워 남편 크로노스를 지도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립니다. 어머니의 선택은 둘 다 남편이 아니라 아들이었습니다. 대지를 품은 자, 어머니는 새로운 시대를 위해 막내아들이자 여섯 번째 아들과 손을 잡고 기존 질서를 지배하던 아버지를 거세하고 추방합니다. 모성애에 의한 어머니의 분노가 그 발단
- 《그리스 로마 신화》 5 -《신통기》에 따르면,“크로노스는 자식들을 입에 삼킨다.”크로노스는 누이 레아를 아내로 맞아 6명의 자식을 낳습니다.그런데 크로노스도 태어나는 족족 제 자식들을 집어삼킵니다. 자식 중 한 명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거라는 아버지 우라노스의 저주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우라노스와 똑같은 짓을 되풀이합니다. 이번에는 아내의 자궁이 아니라 자신의 입이 타르타로스가 됩니다. 그러나 자궁에서 입으로만 바뀌었을 뿐, 두려움 때문이라는 그 동기는 똑같습니다.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남근을 자른 크로노
왜 하필 크로노스는아버지 우라노스의 남근을 노렸을까?- 《그리스 로마 신화》 4 -우리는 앞서 소개한 이 막장 복수극의 상황 설정에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아들 크로노스는 왜 하필이면 아버지의 남근을 노렸을까요? 아니, 어머니 가이아는 왜 아들에게 남편의 남근을 공격하라고 했을까요? 왜 타깃이 남근이 되었을까요?공모한 상황으로 볼 때 합리적인, 아니 불가피한 설정일 수 있습니다. 우라노스가 사랑에 눈이 멀어 경계를 가장 소홀히 할 때 크로노스가 그 틈새를 노렸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공격자인 크로노스가 자궁
“크로노스는 어머니 가이아가 준 낫으로아버지 우라노스의 남근을 내리친다.”- 《그리스 로마 신화》 3 -《신통기》에 따르면,“최초의 신, 신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바로 우라노스와 가이아다.”가이아는 홀로 우라노스와 폰토스를 낳은 후, 아들 우라노스와 3+3=6, 6, 6, 열여덟 명의 자식을 낳습니다. 이마 한가운데에 둥근 눈 하나만 가진 키클로페스 삼형제(3)와 머리 50개와 팔 100개가 달린 거인 헤카톤케이레스 삼형제(3) 그리고 티탄족 6남 6녀가 그들입니다.《신통기》에 따르면,“우라노스는 자식들을 태어나는 족족 타르타로스에
“천지창조를 신의 메시지로 보느냐 아니면 자연의 진화로 보느냐?”- 《그리스 로마 신화》 2 -《신통기》에 따르면,“그리고 에로스(Eros, 사랑)가 나타난다.”《그리스 로마 신화》는 가이아라는 판을 깐 다음에 생뚱맞게 에로스를 꺼내 듭니다. 이 시점에서 웬 에로스? 이 에로스, 뭐지?이 에로스가 천지창조를 주관하는 신의 사랑, 마치 《구약》에서 신의 말씀처럼 그 에로스인지 아니면 두 번째 창조 과정을 관통하는 법칙으로서 사랑, 마치 불교에서 모든 사물은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인연을 좇아 사라진다는 인연생기(因緣生起)처럼 그 에로스
《구약》에서는 빛이고,《그리스 로마 신화》는 가이아, 땅이다.무슨 차이일까?- 《그리스 로마 신화》 1 -‘어쩌다 오십’이 선택한 첫 번째 고전은 《그리스 로마 신화》입니다.아시다시피 《그리스 로마 신화》는 수 세기에 걸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말 그대로 구전(口傳)입니다. 이 구전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우리에게 전해준 이가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등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편저자들인 셈이죠. 그러나 우리가 정작 기억해야 할 편저자는 19세기에 와서 그동안 쏟아져 나온 《그리스 로마 신화》의 다양한 에디션들을
“영원을 살 것처럼 일생을 앙탈 부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일생을 찰나처럼 여겨 영원을 구하는 이도 있다.”- 시리즈를 시작하며 -오십이 되어 다시 고전을 찾아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 모릅니다.오십이 지천명(五十而知天命).공자는 나이 오십이 되면 하늘의 도를 알아,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다고 하는데, 이 ‘어쩌다 오십’은 어이하면 좋을지요? 서른에 세상에 나서긴 했으나 딱히 뜻한 바 없었고 (이립, 而立), 마흔 나이에 세상과 부대끼다 보니 삭된 마음을 놓지 못하고, 허망한 일을 좇느라 좋은 시절을 다 보냈으니 (불혹, 不
이 카노사의 이벤트로 성직자의 서임권을 둘러싼 교황과 황제의 전쟁은 일단 그레고리오 7세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이 이벤트로 교황과 황제의 시소게임이 끝났다고 보는 것은 섣부르다. 앞서 말한 대로 언제든 로마로 진군하여 교황을 폐위할 무력은 여전히 황제에게 있었기 때문이다.이번 이벤트의 승패는 교황과 황제의 정치적 수 싸움의 결과일 뿐이다. 다시 말해 노회한 그레고리오 7세가 젊은 황제보다 당시 각 정치세력의 역관계와 이해관계를 더 잘 읽어낸 까닭이다. 그래서 교과서에서 말하듯 이 이벤트로 교황과 황제의 시소게임에서 교황의 승리로
결국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와 교황 그레고리오 7세, 두 사람의 티카타카가 시작된다. 먼저 불을 붙인 이는 젊은 황제였다. 그는 교황의 칙령에도 불구하고 관행대로 밀라노 대주교를 임명한다. 이건 젊은 황제가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했고, 너무 서두른 감도 있다. 더욱이 평판도 그다지 좋지 않은 밀라노 대주교를 굳이 이런 상황에 임명을 강행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아니나 다를까 교황은 황제를 폐위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 역시 두고만 볼 수 없었을 것이다.동시에 노회한 교황은 대외 메시지와 달리 테이블 아래로 황제
가오 때문에 제 밥그릇 못 챙기는 리더 주변에는실속을 챙겨주는 책사들이 모여들고생각이 재고 몸이 바쁜 리더 뒤에는명분을 세워줄 이데올로거들이 들어선다.초한대전에서 전쟁의 신으로 제왕까지 오른 한신에게괴철이 찾아와 천하 삼분론을 제안한다.유방의 한과 항우의 초 거기에 한신의 제까지.“하늘이 주는 기회를 취하지 않으면 나중에 벌을 받는다”고 설득하지만,“내가 한 유방을 배신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거절한다.초한대전이 끝난 후 한신은제왕에서 초왕으로, 다시 회음후로 강등되더니끝내 역모죄로 몰려 목이 날아간다.가오를 부리려면 책사의 말
그래서 형식이 중요하다.누구는 구차하다고 할지 모르나,형식이 절차가 되고 규범이 생기면,형식은 형식으로 끝나지 않고 독자적인 콘텐츠를 갖게 된다.그 콘텐츠가 다시 형식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그 형식은 권위를 갖고권력이 된다.조선의 예송논쟁이 그러하다.효종이 죽자 그 어머니 조대비의 복상 기간을 갖고 다툰다.겉으로는 1년 상으로 할 것이냐 3년 상으로 할 것이냐로 다투지만,효종이 둘째 아들이라 장자가 아니라는 의미와왕위를 계승했으니 장자로 예우해야 한다는 의미의 차이다.그리고 이 의미는왕권을 약화하고 신권을 강화하려는 서인과신권을
피핀 3세를 이은 샤를마뉴는 프랑스어로, ‘샤를 + 마뉴’다. 샤를은 라틴어로 카롤루스, 할아버지 카롤루스 마르텔과 같다. 마뉴는 위대한 대왕(마그누스, magunus)이라는 뜻으로, 유럽을 연 프랑크 왕국의 첫 대제(大帝)다.그가 정복한 영토는 오늘날로 보면 남으로 롬바르디아를 정복하며 이탈리아 중부 아래까지 내려갔고, 동으로는 작센을 정복하여 러시아 서부까지 치고 들어갔으며, 동남부로는 바이에른을 정복하며 크로아티아까지 내려가 동로마와 국경을 맞댔고, 서쪽으로는 이베리아반도를 차지한 이슬람 제후국인 코르도바를 여러 차례 공격했으
명분과 실리가 항상 상충하지는 않는다.그러나 그놈의 가오 때문에굴러온 기회를 놓치는 리더가 있다.결정적인 순간에 실리도 못 챙기고명분마저 잃어버리는 대인배가 그들이다.그래서대인배는 은근슬쩍 뒤를 챙겨주면서도앞서 미리미리 가오까지 세워주는 책사가 필요하다.세상에는그런 책사들을 만나지 못해 이무기로 끝난 대인배,대인배 행세하다 사지가 찢어진 이무기들이 한 가득이다.그들이 끝내 승천하지 못한 것도다 넘쳐나서 부족한 까닭이다. 진짜든 가짜든, 2대 피핀 3세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마르텔은 중국의 조조와 닮았다. 조조 역시 환관 출신의 가문
동로마 황제와 로마 교황의 파워 게임은 성상 파괴령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이 공방의 이면은 세속적 지도자인 황제와 영적 지도자인 교황, 중세의 두 지도자 사이에 속세의 이권을 두고 벌인 권력투쟁이었다.황제는 수도원과 교회의 재산을 압류하여 제국의 재정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었고, 황제의 안정적인 지배 구조를 구축하려는 계획이 있었으며, 로마 제국을 부활하려는 꿈이 있었다. 교황 또한 성상 파괴에 대한 반발은 교회의 재정적 기반을 뺏기지 않으려는 저항이었고, 황제의 교황에 대한 임명과 간섭에 대한 불만이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