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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칼럼] 이재명 앞에만 서면 약해지는 박지현

더불어민주당의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근래에 보기 드문 청년 정치인이다. 이십 년도 넘게 정치를 해온 당내 중진 정치인들을 향해 ‘86’ 용퇴론을 거듭해서 제기했다. 그의 면전에서 책상을 내리치고 화내며 회의장에서 퇴장했다는 아버지뻘 86 정치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세상에 이런 코미디 같은 장면이 또 있을까를 생각했다. 이제는 기득권 서열에서도 가장 높은 꼭대기에 있는 86 정치인들을 향해 그런 요구를 굽힘없이 하는 박지현은 당찬 정치인임에 분명하다.

성희롱성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최강욱 의원이 징계를 받게 된 것도 박지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최 의원이 ‘짤짤이’라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할 때, 무거운 처벌을 일관되게 요구했던 것이 박 전 위원장이었다. 끝내 이실직고 하지 않던 최 의원은, 딸 뻘 되는 청년 정치인의 준엄한 논고 앞에서 이미 정치인으로서의 모든 권위와 신뢰를 상실하고 말았다.

“팬덤정치에 기댄 의원들이 주도한 검수완박은 지선의 가장 큰 패인이었다"고 지적한 것도, “처럼회는 팬덤에 취해 당을 국민과 멀어지게 만들고 지선을 참패로 이끌었다"면서 처럼회의 해체를 요구한 것도 박지현이었다. 민주당 안의 나이도 많고 경륜도 많다는 수많은 의원들이 강경파와 팬덤들의 눈치를 살피며 침묵하고 있을 때, 26세의 박지현만이 상식에 따라 입바른 소리를 하고 나섰다. 박지현의 용기 있는 발언들은, 물론 당내에서는 따가운 시선을 적지 않게 받았지만, 여론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사실이다. 만약 박지현의 외침조차 없었다면 민주당은 대체 국민 앞에 무슨 낯으로 고개를 들 수 있었을까. 적어도 민심을 의식한다면 누군가는 했어야 할 얘기를, 원외의 26살 청년 정치인이 한 것이다. 이제까지 오랫동안 정치를 해왔던 민주당의 선배 정치인들은 그 방식의 거칠음을 탓하기 이전에 일단은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런 박지현의 행보를 지켜 보노라면 의아한 대목이 있다. 대선에서 패배하고 이제는 국회에 입성한 이재명 의원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박 전 위원장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동료들을 모두 적으로 돌린 극렬 팬덤의 뺄셈정치는 대선 패배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폭력적 팬덤의 원조는 이른바 '극렬 문파'”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문 대통령의 입장과 조금만 다른 발언을 해도 낙인 찍고 적으로 몰아 응징했다는 것이 박지현의 지적이었다. 여기까지는 팬덤정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내용의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박지현은 느닷없이 이재명을 호명하며 소환한다. “이들의 눈엣가시가 되어 온갖 고초를 겪은 대표적인 정치인이 이재명 의원”이라는 것이 그의 얘기이다. 그러면서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좁히고 팬심이 아닌 민심을 많이 얻는 후보를 당 대표로 선출할 수 있도록 당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재명 의원이 ‘극렬 문파’들로부터 얼마나 고초를 겪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또한 ‘개딸’로 대표되는 팬덤정치의 가해자 측이 되고 있음이 현실이다. 이 의원의 극렬 팬덤들도 그 극성맞음에 있어서 ‘극렬 문파’들에 결코 뒤지지 않음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마당에 이 의원이 팬덤정치의 희생자인양 말하는 것은 팬덤정치를 끊어내자는 그의 진성성을 의심하게 만들 수 있다. 마침 그가 주장하는 당 대표 선출 규정의 개정은 전댕대회를 앞두고 이재명 의원 측에서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사실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박 전 위원장이 이재명 당시 후보와 관련된 문제점에 대해 성찰적인 얘기를 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없다. 대장동 특혜 의혹을 대하는 태도 등, 민심의 눈높이에서 문제가 있는 많은 의혹과 일들이 있었음에도 유독 이재명에 대해서만은 박 전 위원장이 너그러운 이중 잣대를 드러내 온 것이 사실이다. 86 중진들에 대해서도, 처럼회에 대해서도, 팬덤들에 대해서도, 그토록 단호하고 용기 백배의 박지현이건만 유독 이재명에 대해서만은 약해짐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마침 같은 당의 이원욱 의원이 박 전 위원장을 가리켜 "이재명 의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진다"고 비판한 것이 그리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다. 팬덤정치의 극복이라는 박지현의 주장은 옳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지극히 편파적이다.

지금 민주당에는 두 개의 팬덤정치가 존재한다. 하나는 ‘친문’의 팬덤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친명’의 팬덤정치이다. 두 개의 팬덤은 서로에 대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런 현실에서 유독 이재명만이 “이들의 눈엣가시가 되어 온갖 고초를 겪은 대표적인 정치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팬덤정치를 끊어내자는 외침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두 개의 팬덤을 함께 끊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부한 권력투쟁이 되고 만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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