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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상>의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나는 그간 파도만 보았는데 그것이 패착이다. 파도가 치는 것은 바람에 의한 것인데 바람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파도가 일으키는 변화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람의 방향을 함께 살펴야만 한다. 결국 바람이 파도가 이는 모습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의 파도를 추동하는 물결의 특성과 의미를 제대로 포착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먼저 바람의 성격과 의미를 살펴야만 한다. 

현재 섬과 바다는 위기의 바람과 변화의 물결 속에 있다. 위기와 변화의 경계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섬과 바다의 위기의 바람은 기후변화와 기후위기를 포함한 자연환경과 생태 위기에서 비롯되었다. 생태 위기의 바람은 섬과 바다에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변화의 물결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뉴노멀 시대가 열린 것이다. 뉴노멀 시대에 섬과 바다는 위기의 바람과 변화의 물결이라는 경계 위에 서 있다. 이러한 위기와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것인가? 뉴노멀 시대에 섬과 바다 정책 수립과 실행을 위한 추진 전략 과제 중에서 가장 중차대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뉴노멀 시대에 섬과 바다를 새롭게 보면 섬을 잘사는 섬으로 만들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여 실행할 수 있다. 이때 잘산다는 말의 의미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규모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잘사는 섬이란 문화가 융성해서 섬사람들이 문화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을 가리킨다. 

백범 김구 선생이 그의 저서 <백범일지>에서 말한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와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김구 선생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라고 문화를 통해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소원했다.

이 말은 섬 문화의 융성과 발전을 위한 목표와 무관하지 않다. 문화의 힘으로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내듯이 문화를 통해 섬의 아름다움과 평화, 섬사람들의 행복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선 섬과 바다에 대한 기존의 육지 중심, 농업 중심의 인식을 섬과 바다를 중시하는 인식과 관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경구를 다시 떠올리는 일은 자못 참신할 뿐만 아니라 신선한 충격을 선사해준다.  

독일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인 E. F. 슈마허(Schumacher)는 그의 주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GNP 또는 GDP로 대표되는 기존의 국민소득과 성장률에 기반한 경제지상주의의 허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규모의 경제와 성장 위주의 경제를 비판하고 인간 부흥의 경제를 주창한다. 성과주의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인간의 모습을 한 경제를 강조하면서 더 빠른 성장과 더 커다란 경제와 더 많은 소유에 대한 맹신이 종교적 확신에 이른 듯한 오늘날, ‘작은 기업’ 또는 ‘착한 기업’의 실천을 촉구한다. 공유와 행복을 위한 인간의 경제를 넘어 인간 살림살이의 가치와 규범을 주장한다.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다. 작아서 아름다운 것이고, 작으니까 아름다운 것이다.

그에 따르면, 소규모 사업은 아무리 수가 많더라도 항상 대규모의 사업에 비해 자연환경에 적은 해악을 끼친다. 이는 소규모 사업의 개별적인 힘이 자연의 회복력에 비해 작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식은 이성보다 경험에 훨씬 더 많이 의존한다는 점에서 소규모적이고 단순한 것이며, 이런 이유에서 작은 것에 인간의 지혜가 깃들어 있는 셈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있는 그대로 존재를 인정하자는 것’임과 동시에 ‘너와 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기술 맹신에서 벗어나 ‘작은 것들‘의 연대를 통해 공유와 행복을 이루자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근대 경제학의 물질주의에 경도된 결과, 현재 섬과 바다는 위기의 바람에 직면해 있다. 이 위기를 헤쳐나가면서 변화의 물결을 추동하기 위해선 근대와 전통, 또는 성장과 정체 사이의 대립보다 둘 사이의 중도, 즉 ‘올바른 생활을 발견하는 문제’로 바라볼 때, 이제까지 볼 수 없었고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연에 비해 인간은 한없이 작고 유한한 존재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자신의 존재를 과신하고 자연의 역할을 폄하한다. 인간은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지배하고 정복할 운명을 타고난 외부세력이라고 여겨왔다. 그 결과 인간은 현재 스스로 자신의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다. 코로나19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경종을 울리는 좋은 사례에 속한다. 하지만 자연에 대한 이러한 인간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섬은 육지에 비해 작고 단순한 편이기에 자연환경에 적은 해를 끼친다. 작아서 아름다운 것이고, 작으니까 크지 않으니까 아름다운 섬 또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니까 아름답고 행복하게 잘 사는 섬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작아서, 작으니까, 풍요롭고 행복한 섬 만들기는 어떻게 가능할까?

섬의 철학과 정체성은 소박함과 비폭력이다. 적은 수단으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또는 최소한의 소비로 최대한의 복지를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합리성의 핵심이다. 섬의 비폭력성은 자연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난다. 자연에서 얻는 자원, 특히 재생될 수 없는 재화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억제해야 한다. 나무와 물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석탄이나 석유 등도 보존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를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폭력행위로 간주된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양식어업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어업의 형태가 ‘잡는 어업’에 기반을 둔 어렵(漁獵)에서 ‘심고 기르는 어업’인 어경(漁耕)으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섬과 바다를 둘러싼 어업 환경은 ‘잡는 어업’의 위기를 넘어 ‘심고 기르는 어업’으로 변환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릴 적부터 많이 들어서 귀에 익숙한 “어떤 사람에게 물고기를 그냥 준다면 그를 하루만 배부르게 할 것이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평생을 배부르게 할 것이다”라는 말은 과연 맞는 말일까? 미국 인류학자인 제임스 퍼거슨 교수는 저서 <분배정치의 시대>에서 오늘날 어업의 현황과 어민들의 현실을 떠올려 볼 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주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말은 집어치우고 “그냥 물고기를 줘라”라는 이야기다. 특수 기술을 갖춘 기업들이 어업을 주도하면서 이제는 ‘물고기 잡는 사람’, 즉 어부 또는 어민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 시대에 어떤 인간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실업자 어부를 양산하거나 기껏해야 이미 경쟁이 포화상태인 분야에 뜨내기 한 명을 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세상이 급변한 것이다. 

지금 섬과 바다는 위기의 물결과 변화의 바람이라는 경계 위에 서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은 육지와 내륙과 마찬가지로 섬과 바다에도 뉴노멀 시대를 가져왔다. 뉴노멀은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이나 표준을 뜻하는 신조어다. 지금은 뉴노멀 시대다. 섬과 바다 역시 위기와 변화의 경계 위에서 뉴노멀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점에서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뉴노멀 시대에 접경수역 또는 변경지대에 위치한 섬과 바다는 더욱 그렇다. 조미아(zomia)라는 말이 있다. 주로 국경이 없는 변경지대에서 삶의 터전을 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조미아는 전 세계의 여러 지역 가운데, 아직 국민국가 안으로 편입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나 그런 상황이나 환경에 처해 있는 인간 집단을 가리킨다. 이들은 국민국가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른바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이다. 

넓은 의미에서 섬사람들은 대체로 조미아에 속한다. 이들을 가리키는 다른 용어로, 해상 조미아 또는 수상 조미아라는 말이 있다. 이들을 육상 조미아와 대비시켜 부르는 말이다. 경계에 선 섬과 바다, 그리고 섬사람들은 육지에 사는 사람들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지금 섬과 바다, 특히 섬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위기와 변화의 경계 위에 서 있으며, 이것이 뉴노멀 시대에 이들에게 특히 주목해야 할 주된 이유이자 근거다. 

 


*홍석준 교수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학위와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목포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도서문화연구원 원장직을 맡고 있다.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사)한국동남아연구소 소장, (사)한국문화인류학회 이사, 역사문화학회 회장,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의 <도서문화> 편집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지은 책으로, 『위대한 지도자를 통한 아세안의 이해』(공저), 『동남아의 이슬람화1』(공편저), 『동남아의 이슬람화2』(공편저), 『맨발의 학자들: 동남아시아 지역전문가 6인의 현지조사 경험』(공저), 『ASEAN-Korea Relations: 25 Years of Partnership and Friendship』(co-author), 『동아시아의 문화와 문화적 정체성』(공저), 『Southeast Asian Perceptions of Korea』(co-author), 『동남아의 한국에 대한 인식』(공저),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문화인류학 맛보기』(공편저),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공저), 『동남아의 사회와 문화』(공저), 『동남아의 종교와 사회』(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글로벌시대의 문화인류학(제4판)』(공역),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공역), 『베풂의 즐거움』(공역), 『동남아의 정부와 정치』(공역), 『샤먼』(공역) 등이 있다. 말레이시아의 이슬람과 이슬람화를 포함한 동남아시아의 사회와 문화 및 동아시아의 문화와 문화적 정체성 관련 다수의 논문이 있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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