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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칼럼] 박원순 시장 조문을 갈 수 없었던 이유

피해 여성이 고통받는 악순환의 반복

 

박원순 시장의 조문을 가지 않았다. 아니, “차마 갈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 시절의 그를 존경했었고 소소한 인연도 있었던 터라, 무슨 사건이 있었던들 찾아뵙고 예를 갖추는 것이 인간적 도리였음을 모르지 않는다. 피해 여성을 향해 벌어지는 야만적인2차 가해의 광경들, 굳이 ‘서울특별시장(葬)’을 택한 서울시의 결정, 추모의 말은 절절하지만 한 여성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는 모두가 입을 닫아버린 고관대작들의 모습, 성추행 의혹을 물으니 예의 없다며 ‘후레자식’이라 퍼붓는 여당 대표의 행동만 없었어도 나는 조용하게 예를 갖춰 애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고인의 삶을 기리며 추모만 하고 입을 닫아버린다면, ‘공소권 없음’이라는 다섯 글자로 모든 일이 종료된다면, 평생을 고통의 감옥에 갇혀 지내야할 한 여성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어느 방구석에 갇혀 온갖 마음으로 괴로워하고 있을지 모르는 한 여성의 편을 들기 위해, 성추행 의혹을 끝내 입에 담는 ‘후레자식’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애도를 할 기회를 박탈해간 사람들은 누구인지 묻고 싶다. 고인을 애도할수록 피해 여성은 외로워지는 반인간적인 제로섬 게임으로 이 사태를 만들어버린 사람들은 누구인지 묻고 싶다. 진정한 애도의 시간을 가질 수 없도록 마음을 흔들어 놓고, 슬픈 마음이 자리해야 할 자리에 분노의 마음이 자리하도록 만들어버린 사람들은 누구였던가.

놀라웠던 것은 평소 ‘약자에 대한 배려’니, ‘양성평등’이니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많은 사람들까지 2차 가해를 방조하거나 심지어 그 대열에 동참하는 광경이었다. 그렇게도 기성세대와는 다른 '청년정치’를 말하던 사람들은 조문을 가지 않겠다는 류호정, 장혜영 두 청년 정치인을 비난하고 있었다. 오직 고인의 명예에 누가 될 것만을 걱정하던 그 사람들은 피해자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려는 입들을 막아버리려 했고, 심지어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런 기막힌 글들에 수천 명씩 ‘좋아요’를 누르는 광경은 어느 미개한 나라가 아닌, 오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화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아니 받아들여서는 안 될 그 현실의 이면에는 고질적인 정파성과 진영성이 숨어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러니 애도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 되어버렸다.

평소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서적 거리감을 가져왔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받고 있는 모멸과 고통은 충분히 알지만, 굳이 모든 남성들을 적(敵) 대하듯이 하고, 남성들과의 투쟁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에 대해 낯선 거리감 같은 것이 있어왔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확인된 저 높고 두터운 벽을 투쟁 아닌 어떤 다른 방법으로 무너뜨릴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미 안희정 지사가,  오거돈 시장이 그 충격을 안겨주며 물러갔건만, 권력관계에 따른 성추행은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다.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일은 아니다. 엄연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일이다. 가해자는 추앙만 받는데 피해자는 외롭게 고통 받는 현실이 바로 잡히지 않고서는 그 악순환의 종지부를 찍을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사건에 관한한, 존경하던 한 인간을 칼로 베는 것 같은 아픔과 괴로움을 감수하더라도 피해 여성을 외롭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말할 것은 어느 교수가 말한 ‘박원순과 함께 박원순을 넘어서 생각하기’가 아니다. 적어도 이 시간만은 ‘피해자와 함께 절망의 벽을 넘어서 생각하기’를 말할 때이다. 고인에 대한 애도의 마음과는 별개로, 성추행은 다른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몹쓸 범죄임을 분명히 하는 일,  어렵게 용기를 내서 피해를 알린 여성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이 야만적 폭력임을 분명히 하는 일, 이 일에 관한한 우리는 고통 받는 피해자와 연대해야 함을 분명히 하는 일, 그리고 힘들더라도 이 당연한 얘기들을  당당하게 말해야 함을 분명히 하는 일, 거기서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고인에 대한 최고의 애도는 더는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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