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트럼프에 공 넘겨, 65년 대결구조 청산과 평화협정 길로, 통일보다 공동번영 중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국 공동 사진기자단]

4월27일 ‘2018 남북정상회담’은 73년 민족분단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대전환의 막을 열었다. 18년 전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11년 전 2007년 10.4 정상회담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반도 평화’를 향한 한 줄기 빛을 제시했고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 길을 따라 한반도 뿐 아니라 세계사 대전환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번 정상회담은 과거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준비단계에서부터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남북관계 개선·발전 이 3가지 의제에 집중했다. 이 중 비핵화가 한반도에 설기설기 엉킨 난마들을 푸는 핵심고리였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에게 놓은 최대 숙제는 다름 아닌 ‘비핵화 합의’를 어느 수준까지 이끌어내느냐에 맞춰졌다.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관계 발전’은 공염불에 가깝다는 냉혹한 현실을 수십 년에 걸친 경험 속에서 터득했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 당사자의 의지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기본상수’로 설정해야만 하는 것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 없이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는 미국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없기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의 한반도 정세를 규정하는 힘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의 이목도 여기에 집중됐다.

4.27 남북정상회담은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는 장은 아니다. 이는 5월말 6월초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에서 판가름 난다. 그렇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북미정상회담에서의 비핵화 합의 도출의 징검다리다. 이를 토대를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종 담판’을 짓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을 ‘북미정상회담의 길잡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의 최종 해결자로서 역할을 다하도록 자신은 ‘충실한 안내자, 길잡이’로서 남북정상 간의 ‘최선의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지였다.

그리고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4월27일 오후 정상회담 최종 결과물인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합의했다. 여기서 선언문 3항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의 4호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한 줄의 ‘비핵화 합의’를 도출했다.

남과 북이 ‘완전한 비핵화’를 공동 목표로 삼고 있다는 이 한 줄의 합의가 북미정상회담 ‘길잡이’다. 이 공을 넘겨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약 한 달 후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완전한 비핵화’의 최종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맡았다. 여기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이 던진 숙제도 담겨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선언문’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선언문 3항 ‘평화체제 구축’ 속 1, 2, 3호 남북정상 합의사항을 미국이 주도해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①무력 불사용과 불가침 합의 재확인 및 엄격 준수 ②상호 군사적 신뢰의 실질적 구축에 따라 단계적 군축 실현 ③올해 종전선언,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3자 또는 4자 회담 개최가 그것이다.

4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 확인’에 앞선 이들 선언은 남북한 당사자 문제를 넘어 사실상 미국을 향한 것이다. 한국군 전시작전권을 가진 미국의 동의가 없이는 실천 자체가 불가능하고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도 미국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는 북한이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대북 적대적 정책 폐기’, ‘북미관계 정상화’ 요구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란 용어로 표현됐지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로 가기 위한 ‘길잡이’는 여기에 있다는 의미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천명해 미국에게 한 발 더 다가가면서도 ‘비핵화’는 ‘북미관계 정상화’ 로드맵과 같이 간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한 달 후 열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북미정상회담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두고 벌이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바로 이 지점을 보다 구체화했고 북미협상의 성과가 날 수 있도록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보다 분명히 하도록 했다. 이것이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성과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선언’에 서명한 직후 판문점 평화의집 연단에서 가진 기자회견 공동발표에서 “김 위원장과 나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공동목표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핵 없는 한반도’에 대한 의지를 자신의 목소리로 강조한 대목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공동발표에서 “이 합의가 역대 북남 합의서들처럼 불미스런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이라는 말을 넣었다. 김 위원장은 앞서 오전 정상회담에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지난 6.15선언과 10.4선언이 무위에 돌아간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의 강력한 뒷받침이 없는 6.15와 10.4선언의 한계를 넘고 싶다는 의중을 담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에 담긴 북한의 목표가 ‘체제 안전’에 있음을 읽어냈을 것이다.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를 얻어내기 위해선 ‘북한 체제 안전’을 어떤 식으로든 보장하는 ‘포괄적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전 미국을 방문하는 문 대통령을 맞아 심도 깊은 논의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판문점 선언’ 공동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 공동 사진기자단]

65년 적대·대결구조 청산, 종전·평화협정의 길로. 통일보다는 공동번영에 중점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현안인 ‘비핵화’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란 포괄적 접근 방식을 담은 남북 군사적 긴장해소와 남북관계 발전 도모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합의점을 찾았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정상회담 정례화다. 선언서에 이미 개통된 정상 간 직통전화(핫라인) 정상회담 정례화와 올 가을 평양에서 차기 정상회담 개최를 명시했다. 올 가을 2차 정상회담을 예약한 것은 북미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포괄적인 합의가 이뤄질 것을 가정한 것이다. 남북 정상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겠다는 뜻이다.

선언서 2항 ‘군사적 긴장완화와 전쟁위험 해소’에서 ①상대방에 대한 모든 적대행위 전면 중지,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②서해 평화수역 조성으로 우발적 충돌 방지 대책 마련, 안전어로 보장 ③국방부장관회담 등 군사당국자회담 수시 개최, 5월 장성급 군사회담 개최 등 3가지에 합의했다.

이들 합의들은 제1항에서 명기한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이 실질적으로 적용된 부분이다. 무엇보다 남북한의 육해공 모든 공간의 군사적 적대행위 전면 중지는 남북 당사자 간 ‘종전선언’이다. 이것은 또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의 종전선언과 정전협정 폐기와 평화협정 체결 추진의 근본동력이다.

이를 위해 남북한은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의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워 나가기로 했다.

특히 비무장지대를 완전히 비무장화함으로써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기로 합의해 남북 간 우발적 충돌 위험을 근본적으로 감소시키기로 했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 남북은 국방부장관회담 등 군사당국자회담을 수시로 개최키로 했고 5월에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기로 했다.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해소에 실질적인 조치를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는 또 제3항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의 ①불가침 합의 재확인 ②단계적 군축 합의에서의 남북한의 실천조치를 담은 것이다. 이러한 합의를 점검하고 검토하기 위해 정상회담 공식수행원으로 북한에서는 군부 실력자 리명수 인민군 총참모장이, 우리 측에서는 정경두 합참의장이 참석했다.

선언서 1항 ‘남북관계의 전면적·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에서 구체적으로 ①민족자주의 원칙 확인, 기존 남북 간 선언·합의 철저 이행 ②고위급회담 등 분야별 대화를 빠른 시일 안에 개최, 실천대책 수립 ③남북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지역 설치 ④각계각층의 다방면적 교류·협력 및 왕래·접촉 활성화 ⑤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 진행, 남북적십자회담 개최 ⑥10.4선언 합의사업 적극 추진,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등 6가지를 합의했다.

고위급회담 개최, 이산가족 상봉, 적십자회담 개최 등은 당장 실행할 수 있지만 10.4선언 이행 등은 유엔의 대북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행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이 또한 북미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전망하며 향후의 압축적이고 신속한 단계적 ‘완전한 비핵화’를 상정한 것에 가깝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합의들은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대북제재와 맞물려 있다. 민간교류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를 선언문에 명기한 것은 역시 북미정상회담에서 경제제재 해제와 관련된 조치들에 대한 북미 합의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정상회담 전 경제교류와 관련해 유엔 제재 상황을 인식하며 우리 측에 이에 대한 부담은 갖지 말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과거 정상선언 합의가 불이행됐던 상황을 서로가 공유하는 가운데서도 6.15, 10.4선언 합의 이행과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도 명기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란 로드맵을 향한 남북한 정상들의 의지가 여기서도 표현됐다.

또 여기엔 문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구상’의 토대도 담겼다. 10.4선언 합의사항 이행은 ‘한반도 신경제구상’의 핵심내용들이다. 남북한이 이에 대해서도 일정 공감대를 이뤘을 것이다. 북한은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한반도 신경제구상’에 편승하는데 일정 공감했을 것이란 판단이 가능하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한반도 평화’와 함께 ‘남북 공동번영’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한반도 신경제구상’은 이를 위한 청사진이며 남북 간 도로·철도 등 교통망 연결은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남북한이 이어지면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교량국가로서 공동번영의 길을 걷게 된다.

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이고 이를 풀기 위해선 ‘완전한 비핵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판문점 선언’은 남북 공동번영의 길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역시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란 전제를 요구하고 있음을 새삼 확인시킨다.

이 같은 내용의 ‘판문점 선언’이 목표하는 바는 분명하다. 65년간 지속된 적대와 대결의 구조를 청산하고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해 남북한이 공존하고 공동번영을 이뤄나가는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이 ‘완전한 비핵화’이고 ‘비핵화’가 진행되면 남북관계 발전과의 선순환 프로세스가 만들어지도록 한다는데 있다.

다만 이번 선언서에는 ‘통일’이란 단어는 많지 않다. 과거의 남북합의에는 통일의 당위적 언급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필요한 곳이 아니면 사용을 자제한 흔적이 역력했다. 이보다는 ‘공동번영’이란 표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북한의 흡수통일에 경계감을 불식시키기 위해 대북적대시 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공격할 의도가 없으며, 북한정권 교체나 붕괴를 원하지도 않으며 인위적으로 통일을 가속화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이른바 ‘4No’의 원칙을 여러 차례 밝혀왔고 4월12일 원로자문단 위원들과 만나서도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한 바 있다.

‘판문점 선언’이 지향하는 목표가 실현될 지 여부는 아직 자신할 단계는 아니다. 다만 지난 6.15, 10.4선언 합의 때보다는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 1년차에 이러한 결실이 나왔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집권 초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0년을 목표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완성시킨다는 로드맵이 공공연히 거론된다.

청와대는 ‘판문점 선언’ 결과로 안착시키기 위해 국회 비준을 받는 절차에 돌입키로 했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에 따라 ‘남북합의서의 체결·비준’에 관한 법적인 절차를 거쳐 발효하겠다는 것이다. 이의 목표는 ‘판문점 선언’에 법적 지위를 부여해 과거처럼 역행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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