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구속-박근혜 1심 선고와 결부, 구여권 지지층 민심 결집 반영

김기식 금감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자산운용사업 신뢰구축 자산운용사 CEO 간담회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김기식 금감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자산운용사업 신뢰구축 자산운용사 CEO 간담회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의원 재직 시절 피감기관 비용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왔다는 의혹이 정국의 핵이 됐다. 청와대와 여권은 이를 두고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의 집요한 공격을 탓하지만 직접적인 배경은 6.13 지방선거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에 있다.

정치적 사건과 이슈는 일상적으로 다종·다양하게 생산·유통된다. 국민의 이목을 끄는 충격적 사건이 아니라면 대부분 이슈는 정국의 핵으로 부상하기보다는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 이슈가 정국의 핵으로 부상하기 위해선 사건 자체의 무게도 중요하지만 ‘민심’의 반응이 더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를 앞둔 시점은 다르다. 인사청문회 대상이 아닌 김 원장의 의원 시절 외유 논란이 민심의 주목을 받으며 강력한 정치적 파문을 야기한 데는 6.13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보수언론의 집요한 공격, 한국당의 심상치 않은 무차별 폭로가 주효했지만 정치적으로 더 중요한 지점은 ‘민심의 반응’이다. ‘김기식 파문’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흩어졌던 구(舊)여권 지지층 ‘민심’을 유기적으로 자극하고 결집할 명분을 제공한 측면이 강했다. 한국당과 보수언론의 ‘김기식 타격’의 목표지점도 여기에 있다.

대수롭지 않은 사건일지라도 선거 국면에선 핵이 되는 경우가 많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치러진 17대 총선 당시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의 이른바 ‘노인 폄하 논란’이 탄핵 직후 숨 죽였던 보수층이 재결집하는 ‘명분’이 됐던 것이 대표적 전례다. 1995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고 김윤환 의원의 ‘충청도 핫바지 발언 논란’도 비슷하다.

‘김기식 파문’은 이러한 요소를 제대로 구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와 ‘김기식 파문’은 떼려야 뗄 수 없다.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구여권 지지층이 문재인 정부를 향해 “너희는 뭐가 깨끗하냐”는 볼멘소리를 하고 싶은 시점에 김 원장 논란이 던져졌다. 한국당과 보수언론이 구여권 지지층과 비슷한 심정으로 집요하게 김 원장을 공격했고 구여권 지지층 ‘민심’이 곧바로 ‘반응’한 것이다.

‘김기식 파문’은 도덕성 문제를 건드린 것이기에 현(現) 여권지지층을 동요시킬 수 있다. 진보진영의 ‘도덕 프레임’은 과거보다 다소 약해졌지만 여전히 강고하다. 김 원장과 청와대와 여당이 ‘의원 관행’이란 상대적 기준과 잣대로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다. ‘부패해도 유능하면 된다’는 보수진영이 진보진영을 공격하는 무기로 ‘도덕 프레임’을 사용하는 배경은 여기에 있다.

한국당과 보수언론, 그리고 보수층이 ‘김기식 논란’을 키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 5월말 또는 6월초 북미정상회담 등에 가로막혀 있는 6.13선거를 앞두고 보수층 결집을 위한 정략적인 성격이 강하다.

‘적폐청산 대 기득권’ 대치전선의 중심, 기득권 반발의 타깃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의 힘을 떨어뜨리는데 있어 ‘김기식 논란’은 기득권층의 좋은 타깃이다. 정관계, 경제계 뿐 아니라 사회 곳곳의 이른바 기득권층들은 자신이 ‘적폐’의 대상으로 지목 받을 수 있다는 ‘피해 심리’가 강하다. 이들에게 “너희는 우리와 뭐가 다른데?”라는 반발과 저항 심리를 표출하는 소재가 김기식 원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김 원장 논란과 관련된 입장을 밝히면서 인사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고 했다. 이번 ‘김기식 논란’의 생산지가 금융개혁에 반발하는 기득권력의 저항이라는 인식의 일단을 감추지 않았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도 보수언론과 한국당이 유독 심하게 공격한 대목과 겹쳐진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11개월이 넘었지만 금융개혁에 큰 진전이 없다. 은행 등의 채용비리와 관련 의혹들이 터져 나왔지만 오히려 최흥식 전 금감원장만 유탄을 맞았다. 금융기득권이 금융개혁의 장애물이자 방해물이 아니냔 지적까지 나온다.

비단 금융부문만이 아니다. 비금융 부문의 기득권력들도 ‘김기식 논란’과 이해가 직결된다. 지금의 ‘김기식 논란’은 ‘적폐청산 대 기득권’이란 구도의 중심에 선 셈이다. 바로 이 때문에 정치적인 파급력이 배가되면서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사실상 전면에 나서도록 했다. ‘민심’은 금감원장 임사문제로만 바라보지 않는 국면이다.

도마에 오른 의원 해외출장 관행, 국회 불신의 흐름 반영

‘김기식 논란’의 판이 커지면서 정치적 여파는 국회 전체로 번졌다. 이 부분은 지난 12일 임종석 비서실장 명의로 중앙선관위에 김 원장의 의원 시절 외유와 후원금 사용에 대한 적법성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질의서를 보내면서 시작됐다. 국회의원의 해외출장 관행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문 대통령도 다음날 “김 원장의 과거 국회의원 시절 문제되고 있는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인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이 당시 국회의원들의 관행에 비추어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위법이 아니더라도 사임토록 하겠다”며 선관위 조사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했다.

김 원장의 의원 시절 해외출장과 관련한 ‘도덕성 평균’은 전체 의원들의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 전반을 살펴봐야 나온다. 중앙선관위가 전체 해외출장 건수와 그 내용을 들여다봐야 김 원장이 ‘평균’ 이상이냐, 이하이냐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이와 관련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의 도움으로 조사했다면서 “무작위로 16곳을 뽑아 자료를 봤는데, 피감기관 지원을 받아 해외출장 간 경우가 모두 167차례(더불어민주당 65차례, 자유한국당 94차례)였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정치사찰’이라고 펄쩍 뛰고 있고 다른 야당들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 또한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김기식 논란’을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겠다고 했지만 자칫하면 그 불똥이 자신에게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도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김 원장 파문은 급기야 국회 전체의 신뢰 문제로 확산됐다”며 “국회의장이 직접 나서서 피감기관 비용으로 해외 출장을 간 사례를 전수 조사해 국민 앞에 낱낱이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국회 불신’과 맞물려 있다. 특히 대통령 개헌안 발의와 맞물려 ‘민심’을 자극하는 부분이다.

‘김기식 논란’은 이러한 6.13 선거, ‘적폐청산 대 기득권’ 대치, 국회 불신 이 세 갈래의 정치적 에너지가 만나는 병목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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