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분열 막기 위해 신공항 백지화 했지만...그야말로 미봉책에 그칠 공산

[폴리뉴스 정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공약인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대한 사과는 없이 “김해공항이 영남권 신공항”이란 억지주장을 펼쳐 갈등이 증폭되고 허탈에 빠진 대구-부산 등 영남권 민심을 더 자극했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박 대통령도 22일 오후 청와대 민주평통 해외자문위원과의 통일대화 자리에서 “정부는 김해 신공항 건설이 국민들의 축하 속에서 성공적으로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김해공항이 ‘신공항’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자신의 대선공약 파기란 비판과 관련해선 어떠한 언급이나 사과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작년 1월에 신공항과 관련된 지자체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외국의 최고 전문기관을 선정해 용역을 의뢰하고, 그 결과에 따르기로 약속한 바 있다”며 영남 5개 광역시도 단체장들이 정부 용역결과에 승복하기로 한 약속은 강조했다. 이는 ‘김해공항이 신공항’이라는 결론을 대구와 부산시민이 수용하고 받아들이라는 윽박지르기에 가깝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언급은 이번 정부 발표가 신공항 백지화로 해석돼선 안 된다는 억지주장이다. 앞서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이날 오전 “김해공항 확장은 사실상 신공항으로, 동남권 신공항이 김해공항 신공항이 되는 것”이라며 “공약 파기라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약속을 지켰다”고 한 것을 박 대통령이 재차 강조한 것이다.

공약파기가 되면 박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이에 대해 사과해야 하나 이를 막기 위해 억지주장을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5년 전 신공항 백지화 발표 다음날인 4월 1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돼 매우 안타깝다”면서 “영남 주민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한 바 있다.

그러나 김해공항이 신공항이라는 박 대통령의 억지주장은 영남권 민심을 거스르며 오히려 자극할 가능성이 높은 현실이다. 대구와 부산 양쪽에서 이를 ‘공약 파기’로 보는 상황에서 ‘공약파기’가 아니라고 우길 경우 이곳에서의 박 대통령에 대한 민심은 차갑게 식을 수 있다.

대구와 부산 모두가 이번 ‘김해공항 확장 결정’을 박 대통령이 대구-부산의 영남권 분열을 막기 위한 정치적 고육지책으로 꺼내 든 것으로 보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이러한 주장은 공감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구-부산 모두가 이번 결정을 ‘정치적 미봉책’이라고 한 것도 여기에 있다.

영남분열 막기 위해 신공항 백지화 했지만...그야말로 미봉책에 그칠 공산

그러나 박 대통령이 공약파기 논란을 무릎 쓰고 영남 분열을 막기 위해 ‘김해공항 신공항’이란 ‘정치적 미봉책’을 냈지만 그야말로 미봉책에 그칠 공산이다.

사실 박 대통령의 이번 백지화 결정은 여권의 핵심기반인 대구와 부산이 영남권 신공항을 두고 심각한 갈등을 빚자 고심 끝에 내놓은 것에 불과하다. 국제관문으로서 김해공항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 때문에 그 대안으로 제기된 영남권 신공항을 도로 ‘김해공항’로 되돌려 놓고 ‘신공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로 보일 수밖에 없다.

경제성과 안전성, 효율성을 심도 있게 검토해 내린 결정이라기보다는 대구경북(TK)와 부산경남(PK)의 분열을 막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작용한 결정이다. 이에 대해 용역기관도 ‘정치적 고려’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임기 후반기 국정 레임덕 문제와 2017년 대선 차기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대구와 부산이 갈라서는 사태는 막자는 정치적 선택이란 의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이러한 결정은 대구와 부산 민심을 봉합하기보다는 분열을 가속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양쪽 어느 쪽도 정부의 결정을 수용하려들지 않는다. 부산 쪽은 “죽도 밥도 아니다”는 반응이고 대구는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반발한다. 이처럼 격앙된 민심은 좀체 수그러들 조짐이 없다.

정부 발표 전까지만 해도 부산민심이 들끓었다. 2차례에 걸쳐 수만 명이 부산도심에서 “가덕도 신공항”을 외치며 집회를 벌였다. 서병수 부산시장 및 부산의 여야 정치권은 용역조사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가덕도가 선정되지 않으면 불복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반면 대구 쪽은 조용하게 움직였다. 밀양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21일 막상 뚜껑이 열리자 대구 민심이 폭발했다. 대구지역 유력지 <매일신문>은 22일자 신문 1면을 “신공항 백지화, 정부는 지방을 버렸다”는 글귀만 싣고 백지로 발행했다. 그리고 사설과 기사를 통해 현 정부에다 ‘융단폭격’을 가했고 심지어 박 대통령과 현 집권세력을 ‘배신자’라고 했다.

부산은 대구가 원한 밀양이 선정되지 않아 발표 전의 ‘성남 민심’은 가셨다하지만 실망감과 허탈감은 여전하다. 밀양이 선정되지 않아 부산은 자체적으로 민간자본을 유치해서라도 가덕도에 신공항을 추진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해 ‘한숨’은 돌렸다지만 국가가 이를 지원하지 않을 경우 ‘공염불’이다.

박 대통령은 텃밭 분열을 막을 ‘묘책’이자 ‘고육책’으로 김해공항 확장을 들고 나왔지만 대구와 부산민심은 지금 정반대 쪽을 향하고 있다. 이는 5년 전인 지난 2011년 3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신공항 백지화 때보다도 더 심각하다. 당시에도 경제성과 효율성 논란 외에 영남분열을 막자는 정치적 고려의 성격이 강했다.

그리고 이 전 대통령의 당시 선택은 부산과 대구를 두 축으로 하는 영남권의 핵심거점 간의 갈등을 막는 ‘묘책’이 됐다. 여권의 강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박 대통령의 존재가 이를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존재 자체가 당시 대구와 부산의 갈등을 봉합하는 촉매였다. 또 박 대통령 스스로도 대선에서 영남권 신공항 재추진에 발 벗고 나섰다.

그러나 지금은 갈 데까지 간 대구와 부산의 갈등을 봉합할 여권 내 리더십이 부재하다. PK에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있지만 기대난망이며 TK엔 최경환, 유승민 의원이 존재하지만 대구와 부산을 아우를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 김해공항으로의 회항은 ‘묘책’이라기보다는 대구-부산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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