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조용한 선거+지역일꾼론 앞세워 치고나가…천호선, 노풍+새인물론으로 맹추격

서울 서북부 끝자락에 위치한 곳. 1949년 서울시에 편입된 후 1979년에서야 서대문구에서 분리돼 독립된 구로 승격된 곳. 서울 은평구(恩平區)다.

은평구는 서울의 한 축을 이루고 있지만, 서울이 갖고 있는 도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서남쪽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북한산 분지(盆地)로 돼있어 지가가 상대적으로 싸다.

그만큼 도시발전이 더딘 곳이다. 불광동과 갈현동, 연촌동 등지에는 지금도 낙후된 주택과 건물들이 적지 않다. 주민들의 개발욕구가 강한 이유도 이런 까닭이다.

이곳에서 제대로 맞붙었다. 이재오 새누리당 후보와 야권단일후보인 천호선 통합진보당 후보의 진검승부다. 4.11 총선 초반 은평 ‘을’ 지역이 최대 격전지로 급부상한 이유도 ‘이재오 vs. 천호선’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영원한 MB맨 ‘이재오’와 친노 ‘천호선’의 대결구도.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선 은평을 지역을 ‘MB vs. 노무현’ 대결의 결정판이라고 말했다. 불붙은 정권심판론이 확산되느냐, 마느냐의 분기점이라는 이유에서다.

4.11 총선 초반 언론의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중반 이후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가 발표되면서 점차 언론의 관심도는 희미해져갔다. 팽팽한 접전 양상이 아닌 이 후보의 우세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천 후보가 야권단일후보에 선출된 이후 “그림이 된다” 며 기대감을 한껏 드러낸 통합진보당 한 인사의 말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그래서 다녀왔다. ‘MB vs. 노무현’의 구도는 여전히 유요한 것일까. 정권심판론이 꺼진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간직한 채 9일 오후 은평을 지역으로 몸을 향했다.

은평을, 이재오 vs. 천호선 대전(大戰)…예상 밖 기류 왜?

9일 오후 6시 30분 은평구 연신내역. 지하철 입구에 오르자 ‘은평발전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라는 이재오 후보의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조용한 유세전을 치른다는 언론 보도와는 달리 곳곳에 선거운동원들이 적지 않았다.

당초 <폴리뉴스> 4.11 ‘은평을’ 총선현장 취재는 지난 주말 예정돼 있었으나, 이 후보 측이 조용한 유세선거를 이유로 인터뷰에 난색을 표해 결국 영상 인터뷰가 무산된 터라 이 후보 관계자 인터뷰만 가능했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판세가 좋다. 원래 이 후보의 텃밭이 아니냐. 은평 발전을 위해선 (이재오 같은)큰 인물이 필요하다. 그래야지 지역개발 등을 잘 돌볼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녹번 소방서, 병원, 해맞이 공원 등 이 후보가 유치한 업적을 언급한 뒤 “은평 구민이 원하는 것은 ‘지역발전’이다. 정권심판론? 여기 아니야. 은평구에는 그런 것이 없다”면서 “은평구의 재정자립도가 높지 않다. 때문에 (이재오 같은)큰 인물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후보가 4.11 총선에서 6호선 복선화와 연장선 추진 등을 공약으로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터뷰 도중 지나가는 시민들은 ‘이재오는 우리 식구야. 걱정하지마’라는 말을 수차례 했다. 70대 할아버지인 이재원 씨(가명·남)는 “이재오는 한 식구지. 뭐…. 15년 동안 은평에 있었는데…. 미워도 이재오야. 여긴”이라고 말한 뒤 “하지만 선거는 끝까지 조심해야지. 젊은 층들이 얼마나 투표할지는 알 수 없어서….”라고 말했다.

지나가는 60대 황정민(가명·여) 씨는 “내가 찍어줄게”라며 이 후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다른 지역주민은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느냐’고 묻자 대뜸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 얘기를 꺼냈다. “지난번에(2008년 18대 총선)문국현이가 그냥 왔다가 갔잖아. 그러면 안 되지. 은평구민들이 이번엔 또 당하면 되겠어”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한 시민은 “문국현 학습효과가 있다”고 귀띔했다.

지역주민들의 지역개발 욕구와 지난 2008년 문국현 학습효과가 맞물리면서 ‘정권심판론’은 생각보다 거세게 일지는 않은 듯 했다. 이 후보 관계자도 “더 많은 사람들을 한 번 만나보면, 정권심판론 얘기하는 분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심판이 아닌 지역개발”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같은 날 오후 7시30분쯤. 천 후보가 연신내역 6번 출구에 나타났다. 그는 목이 쉬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막판 바닥 표심을 훑고 있었다. 천 후보는 <폴리뉴스>와 인터뷰에서 “막판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팽팽해지고 있다”며 초박빙 승부를 예상했다.

천 후보에게 물었다. ‘MB vs. 노무현’ 대결 구도와 관련해 그는 “이재오 후보는 은평을 지역에선 MB의 오른팔이 아니다. 16년 동안 은평을에 있었던 이재오 구성요소 중 일부가 (이번 선거에 나온)이 후보”라며 “MB vs 노무현‘ 구도라기보다는 실적이 부진한 오래된 일꾼을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40대 가장인 한 시민은 이에 대해 “이재오 후보가 은평에서 오랜 의원활동을 했는데,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후보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기류가 있다”고 천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천 후보는 이와 관련해 “(은평지역)구청장도 바뀌고, 이제 곧 정권도 바뀔 것”이라며 “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 와야 한다. 새롭게 바꿔야 한다. 이명박 4년 보다 이재오 15년이 갖는 상징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권심판론이 아닌 ‘이재오 15년’에 대한 심판이라는 애기다.

천 후보 측 관계자는 “지역주민들에게 새롭고 참신한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문국현 학습효과와 관련해 “시장상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돼있다. 천 후보와 선거운동원 등이 진정성을 갖고 지역주민들과 대면하고 있다. 기류가 점차 바뀌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불광역에서 만난 천호선 캠프 관계자는 막판 판세와 관련해 “분위기가 좋다. 언론에서 경합지역으로 분류하지도 않는다”고 분통을 터트린 뒤 “거리에서 주민들을 만나보면 전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이날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은 야권단일후보 ‘천호선’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선거운동원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며 지지를 드러냈다. ‘왜 지지하느냐’고 묻자 20대 이미연 씨(가명·여)는 “이제는 바꿔야 한다. 언제 적 이재오냐”고 말한 뒤 “천호선 후보가 은평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4.11 은평을 총선은 ‘20∼40 對 50대 이상’의 세대간 투표에 의해 승부가 갈릴 전망이다. 투표율이 60% 이상이면 천 후보가, 이보다 적으면 이 후보가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천 후보는 인터뷰를 마친 뒤 선거운동원 2명과 함께 연신내 물빛공원과 역촌동 일대에서 거리유세전을 펼쳤다.

이재오, 나홀로 선거운동에 천호선, 진보진영 스타 총출동

한마디로 전쟁터다. 은평을 지역은 4.11 총선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양 측 모두 선거운동원들의 적극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다만 정작 당사자인 이 후보는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 유세전을 치르고 있어서다.

반면 천 후보 측은 진보진영 지식인 등이 총출동했다. 앞서 이날 오전 조국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은평을 지역을 찾았다. 조 교수는 은평구 연신내사거리에서 천호선 유세차에 오른 뒤 “은평 발전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천호선 후보를 꼭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조 교수는 정권심판론을 화두로 던졌다. 그는 “(이명박 정부 4년간)정치적 민주주의가 너무 후퇴했다. 보통 시민이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고, 민간인을 불법 사찰해서 개인의 사생활과 재산, 이메일을 팠다”며 “이재오 후보는 이 정권의 핵심으로 여기에 책임이 있는 분”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민생 파탄의 책임을 투표로 물어야 한다. 누구에게 힘을 실어줄 것인가. 경제민주화, 민생, 복지는 시대적 과제”라며 “천 후보는 일관되게 재벌개혁, 민생, 복지 강화를 얘기했다”며 “인격을 걸고 호소한다, 천호선 후보를 선택해달라”고 말했다.

지난 8일엔 가수 이은미, 배우 권해효 씨가 천 후보 유세현장을 찾았다. 이은미 씨는 연신내 사거리에서 “지난 4년간 여러분은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이 행복하셨습니까. 저는 그렇지 않았다”며 “지난 4년간의 삶이 팍팍하셨다면, 이제 (이 후보에게)벌점을 주십시오”라며 천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말했다.

‘개념배우’ 권해효 씨도 같은 날 “연기자 이전에 두 아이의 아버지로 이 자리에 섰다”고 운을 뗀 뒤 “이번 총선의 의미에 대해 ‘정권실정 심판’ 등 여러 가지를 꼽는데 사실 단순하다. 이번 선거는 우리 아이와 자신의 이익을 위한 투표”라고 주장했다.

한편 4.11 총선을 하루 앞둔 10일 이 후보는 조용한 유세전으로 선거운동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막판까지 중앙당 지원보다는 개인기로 정권심판론 구도를 뚫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반면 천 후보는 이날 오전 6시 30분 불광역 5번 출구에서 출근 인사를 시작으로, 오전에는 불광1, 2동 일대에서, 오후에는 불광역 사거리 등에서 막판 민심 훑기에 나선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이날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와 김진애 민주통합당 의원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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