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못말리는 MB의 고집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임기 말 이명박 대통령이 환대받는 곳은 국내가 아니라 외국에서다. 10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극진한 대우를 해줬다. 국빈 방문인 데다가 그동안 미뤄왔던 한미 FTA 비준을 이명박 대통령 방미 시점에 맞춰 처리해주는 세심함까지 보였다. 미국 의사당에서 상하원들에게 연설하면서 5번의 기립박수를 포함해 45번의 박수를 받은 이명박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 들어 외국인 정상으로서는 최다 박수였다고 한다. 연설 뒤에는 미국 의원들에게 사인공세까지 받아야 했다. 최근 국내에서 우리 대통령이 받는 대접과 비교해보면 정말 감개무량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환대는 공짜가 분명 아니다. 대접을 잘 받은 다음에는 반드시 청구서가 날아오기 마련이다. 한미동맹을 전략동맹으로 격상시키고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최선봉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이번 청구서에는 조금 특이한 내용이 담겨 있어 보인다. 감탄할 정도로 환대를 베풀어 준 미국은 한국에게 북미협상이 개시될 수밖에 없음을 통보했다. 그리고 북미는 제네바에서 보다 진전된 북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미 오바마 행정부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중시하면서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진전을 최우선의 과제로 간주하고 한국에게 협조를 요구했다. 연초에 개최된 미중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핵심의제로 논의되고 공동성명에서 비중을 많이 차지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천안함과 연평도라는 스스로의 덫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남북관계 개선에 소극적이고 심지어는 엇박자를 내곤 했다. 미중 정상회담 직후 천안함까지 논의할 수 있다며 북한이 제의한 고위급 군사회담마저 실무회담에서 결렬시킨 이명박 정부였다. 2010년 한반도 긴장고조를 목도한 미국이 전쟁위기라는 한반도 정세를 감수하기보다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긴장완화를 선택했고 그 맥락에서 일관되게 북한과의 관계회복을 한국에 주문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재개를 내켜하지 않았다.

미중 정상이 합의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그렇게 남북관계 개선을 주문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요지부동이었고 급기야 오바마 행정부는 6월에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 외무장관회담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라는 경고성 최후통첩을 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의 체면을 감안해서 남북 대화를 거쳐 북미 대화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북미 협상이 시급한 만큼 남북 대화 없이도 북미 대화를 할 수밖에 없다는 미국의 처지를 설명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 외무장관 회담 기간에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과 위성락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이 동시에 워싱턴을 방문한 것도 당시 저간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급기야 미국의 요구와 압박에 못이겨 발리에서 남북 비핵화 회담이 전격적으로 개최되었지만 이 역시도 이명박 정부는 적극적으로 임한 게 아니라 울며 겨자먹기식의 억지춘향으로 회담에 임했다. 북한 역시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인지라 남북 비핵화 회담은 이후 예정된 북미 협상으로 가는 인증샷이 필요해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발리 회담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기다렸다는 듯이 북미는 뉴욕에서 곧바로 협상을 가졌다. 9월에 베이징에서 개최된 2차 남북 비핵화 회담 역시 미국과 북한이 2차 협상을 하기 위해 체면치레용으로 필요한 형식적 사진찍기 회담이었다. 그리곤 바로 제네바에서 2차 북미 회담이 진행되었고 상당한 진전이 있은 것으로 양자 모두 평가했다. 비핵화 사전조치와 상호 신뢰구축 조치를 놓고 북미간에 일정한 의견접근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제 본격적인 북미협상이 개시된 것으로 평가되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전략적 인내에서 전략적 개입으로 방향을 전환한 오바마 행정부가 북비협상에 나서는 걸 지켜보면서도 여전히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진전에는 못마땅하거나 무관심하고 있는 셈이다. 극진한 환대 속에 진행된 한미정상회담 중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와의 회담에서 ‘현 대북정책이 북한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자화자찬하면서 정책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심지어 G20 정상회담차 프랑스를 방문하기 앞서 르피가로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임기 만료 전에 김정일을 만날 의무가 전혀 없다’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지금까지 6자회담은 평양에 시간을 벌게만 해줬을 뿐’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서슴치 않고 피력했다. 연초부터 일관되게 오바마 행정부가 나서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재개를 요구하고 설득하고 심지어 압박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여전히 요지부동인 것이다. 급기야 미국은 한국을 제끼고 북한과의 본격적인 협상에 나섰고 이제 정세는 남북관계 없는 북미협상 국면으로 진입되는 형국이다.

오바마 정부도 두 손 들고 만 이명박 대통령의 고집은 최근 류우익 통일부 장관의 온갖 노력에도 마찬가지 완고한 원칙으로 맞섰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의 남북관계를 진두지휘하고 대북 강경의 선봉이었던 현인택 전장관이 ‘왕의 남자’ 류우익으로 교체되면서 일각에서는 대북정책의 변화라는 일말의 기대를 가진 것도 사실이었다. 실제로도 류 장관은 스스로를 ‘유연성’이라 별명 부치고 이른바 ‘방법론적 유연성’을 찾겠다고 이리저리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민간인 방북을 허용하고 개성공단 병원 건립과 도로 개보수를 착수하기도 했다. 새로 바뀐 적십자사 총재를 만나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강조하기도 했고 국회에 와서는 이희호 여사의 방북이 성사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표하기도 했다. 청와대의 부정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방문해서 대북정책을 조율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한미공조를 논의하기도 했다.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돌파구나 계기 마련을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통일부 장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은 확고하다. 류우익 장관 임명이 대북정책 변화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 대북정책은 통일부 장관이 아니라 대통령이 하는 것’이라고 단호히 못 박았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의 해결 없이 즉 북한의 분명한 태도 변화 없이 남북관계가 시작될 수는 없다는 입장이 여전하다. 북한의 버릇을 고치기 전에는 결코 이명박 정부가 먼저 나서서 관계회복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심지어 자신이 임명한 신임 통일부 장관의 노력에도 개의치 않고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굴복이 있기 전에는 분명코 관계 개선이나 대화 재개를 시작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정말이지 모든 사람이 두손 두발 다 든 이명박 대통령의 고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하반기 북한이 이명박 정부와 진정성 있는 관계개선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잇따른 대남 유화조치를 내놓고 적극적으로 임했지만 그 때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요지부동, 고집과 오기로 북한의 완전굴복만을 요구한 채 북이 내민 대화의 손을 맞잡지 않았다. 현정은 회장의 방북, 개성공단 직원의 석방, 연안호 송환, 이산가족 상봉 제의, 군사분계선 통과제한 조치 철회 등 북이 연달아 아무런 댓가 없이 유연한 조치를 내놓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거기에 화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대중 전대통령 조문특사로 서울에 온 김기남 비서와 김양건 통전부장이 청와대를 예방할 때에도 무미건조한 영접과 냉랭한 반응으로 대했고 그나마 그해 10월 싱가포르에서 비공개 회동을 갖고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잠정 합의했지만 그마저도 대북 강경 주문에 휩싸여 11월 개성 회담을 통해 기합의 내용을 번복하고 정상회담 합의를 무산시키고 말았다. 북이 그렇게 절실하게 원했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신뢰의 가늠자로 간주했던 금강산 관광재개마저도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2월 실무회담에서 야멸차게 북의 요구를 거부하고 말았다.

임기 내내 시종여일하게 북한의 완전굴복만을 기다리며 남북관계 파탄과 한반도 긴장고조까지도 감수하면서 대북 원칙을 고수한 이명박 대통령의 고집과 일관성은 가히 놀랄 정도이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은 서로의 필요와 이해관계에 의해 협상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형국이다. 핵없는 세상을 주창한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재선을 앞두고 우라늄농축으로까지 악화된 북핵상황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고 마찬가지로 북한도 북미협상으로 내년 강성대국 진입의 외적 환경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연초의 국면전환 기회도 거부하고 류우익 장관의 노력마저 부인하고 나선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북미협상 진전이라는 상황변화에서 ‘나홀로’의 외로운 길을 가야 할 것이다. 판을 깨면서까지 대북 강경기조를 고수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자신의 의지와 전혀 다른 북미협상의 국면에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외로운 동키호테처럼 비장한 고집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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