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우익 장관이 넘어야 할 산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최악의 남북관계를 지내온 현인택 장관 후임으로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이 임명되었다. 통일부 장관의 교체는 그동안 대북정책의 변화 가능성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남북관계 경색과 대북 강경정책의 신봉자였던 현인택 장관을 바꾼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새로운 대북정책 을 시도하겠다는 것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지속적으로 현인택 장관의 교체를 요구했고 이를 통해 남북관계를 유연하게 풀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우익 장관 후보자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방법론적인 유연성’을 찾아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류장관 임명 후에 조계종 총무원장 일행과 정명훈씨 일행들의 방북이 허락된 것도 긍정적인 정책변화의 조짐으로 해석되었다.

물론 류우익 신임장관이 현인택 전임장관과 달리 대북정책의 유연성을 발휘하고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가지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가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시절 ‘남북교류를 촉진하는 국토정책’을 주장하고 ‘철도 도로 연결과 뱃길과 항공로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점은 향후 대북정책이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논리적 토대가 될 수도 있다. 또 그가 대통령실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은 이명박 정부 초기로서 김병국 외교안보수석과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라인업을 구축했고 이른바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이라는 화해협력의 대북정책 구상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정권 출범 초기 남북이 기싸움을 벌이는 시기였지만 남북관계가 완전중단되고 전면파탄난 상황은 아니었다. 장관 내정 전인 지난 6월에는 북경에서 북한과 비밀접촉을 갖고 당시 첨예화된 남북갈등의 오해를 풀기도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따라서 류우익 대통령실장의 통일부 장관으로의 귀환은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이 변화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기대와 희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 주위의 기대와는 상관없이 류우익 장관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유연성을 궁리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통일부 장관이 풀기에는 이미 남북이 너무 나가버렸다. 임기 말 신임 장관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기에는 구조가 너무 복잡해져버렸다.

류장관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이후 최악으로 가버린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싶어도 이명박 대통령이 현인택 장관을 교체하지 못했던 이유는 대북정책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스스로의 고집 때문이었다. 현장관을 교체해서 북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것을 대통령은 결코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류장관을 새로 임명하고 나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에 대해 단호하게 부인하고 나섰다. 추석맞이 특별기획에 출연한 이명박 대통령은 ‘대북정책은 대통령의 기조에 의해 움직인다’면서 ‘통일부 장관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다’고 못박았다. 여전히 북한의 선변화를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남북관계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류장관이 아무리 의지를 갖고 궁리를 한다 해도 장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생각과 뜻이 변하지 않는 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크게 변할 수 없다. 북을 굴복시키고 버릇을 고쳐놓겠다며 북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남북관계 중단도 감수하겠다는 대북 강경기조는 지금도 대통령에게 강하게 남아 있다. 북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아무런 제재나 조치도 없이 그냥 넘어갈 수 없으며 북이 기필코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 역시 대통령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지점이다. 결국 류장관이 밝힌 대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노력해볼 수 있으려면 가장 먼저 대북 강경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대통령의 생각을 바꿔놓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류장관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은 보수진영의 완고한 인식이다. 사실 대통령이 섣불리 대북정책 전환을 못하는 이유도 알고 보면 강경 정책을 주문하는 보수 진영의 정치적 요구 때문이다. 이미 정권 초기 촛불로 엄청난 정치적 상처를 입은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최후까지 자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던 10%의 보수 진영에게 정치적 부채를 지게 되었고 따라서 대북 강경정책을 요구하는 보수 유권자들에게 정치적 화답을 해야 했다. 특히 임기말 레임덕이 우려되는 시기에 대북정책을 섣불리 전환할 경우 최후의 핵심 지지층인 보수 진영마저 이탈할지도 모른다는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다. 결국 대통령의 완고한 대북 원칙도 기실 보수 진영의 정치적 요구를 수용한 측면이 강한 것이다.

이를 감안한다면 지금 류장관이 대북정책을 전환하는 데서 최대의 난관은 바로 보수 진영의 반대 여론이다. 대북 강경정책을 일관되게 요구하는 보수 진영은 지금 국면에서 북한과의 대화재개나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지난 8월 김정일 위원장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합의한 가스관 연결 사업에 대해서도 보수 언론과 정치세력은 한사코 반대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마저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이지만 보수 진영은 북한에게 대남 위협의 지렛대를 주는 꼴이고 또 금강산 관광 시설마저 압류해가는 북인데 가스관 몰수도 가능하다며 반대논리를 펴고 있다. 심지어 보수 진영은 통일부가 밝힌 대북 수해지원 물자 제공도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는 데 우리가 먼저 지원을 구걸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강경 일변도의 보수진영은 북한의 변화와 굴복이 없는 한 우리가 먼저 북한에 손을 내밀어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입장인 바, 류장관의 새로운 대북정책이 가능하려면 바로 이들의 반대를 이겨내야 할 것이다.

또 류장관이 넘어야 할 산은 바로 북한이다. 이미 북한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되었고 특히 최근에는 금강산 관광 재산 몰수와 해외관광 유치 시도에서 보듯이 아예 임기 내에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는 것을 포기한 듯하다. 따라서 류장관이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대화 당사자인 북한의 마음을 설득해야 하는데 지금 북한의 입장은 그 어느 때보다 완고한 모습이다. 2009년까지만 해도 북은 이명박 정부와 화해협력의 남북관계를 시도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과 남북관계 개선 의지에 대해 기대도 신뢰도 하지 않고 있다. 손뼉도 마주쳐야 하듯이 남북관계도 결국은 상대방이 호응해야 풀릴 수 있는 것인데 지금 북한의 입장은 류장관의 노력과 의지로 바뀌기에 너무 늦어 보인다.

발리 비핵화 회담 이후 남북관계에도 훈풍이 불지 않겠냐는 일각의 기대가 제기되었지만 이에 대한 북의 반응은 냉담 그 자체였다. 통일부가 먼저 나서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포함해 실무 회담을 갖자고 제안했지만 북은 일정대로 민간 사업자와 재산권 처분문제만 논의하겠다며 당국간 회담을 거부했다. 오히려 북한은 예고된 일정에 따라 남측 사업자의 재산을 몰수하고 한국을 배제한 외국 관광객 유치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더 이상 금강산관광 재개에는 연연하지도 기대하지도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수해지원을 위해 50억원 규모의 물품을 제공하겠다고 결정하고 예산을 집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일절 대꾸도 하지 않고 있다. 북이 받겠다는 공식 입장 표명도 없이 이명박 정부는 서둘러 수해지원에 매달리는 형국인 셈이다. 이처럼 완고한 북한의 태도를 바꿀 수 없다면 류장관이 아무리 남북관계 개선에 나선다 해도 성과를 장담하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

결국 류장관의 개인적 의지와 노력을 충분히 기대한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생각과 보수진영의 여론 그리고 북한의 입장이 모두 완고한 입장이기 때문에 이들을 극복하지 않는 한 류장관의 시도는 좌절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이미 남북은 너무 멀리 가버렸고 지금의 구조적 대결 국면에서는 남북 모두 먼저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에 대한 대북 요구사항을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북한이 스스로 나서서 천안함 사태를 시인하고 사과할 리도 만무하다. 이미 남과 북은 스스로 돌이키기 힘든 상황에 와버린 것이다. 류장관의 노력은 시작도 못하거나 시도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하면서 필자도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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