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북한붕괴론이 유령처럼 주변을 맴돌고 있다. 잊을만 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지라 놀랍지도 않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 붕괴론에 올인하는 것 같아서 못내 씁쓸하다. 어렵사리 개최된 군사실무회담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결렬로 끝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조건부 대화는 정녕 대화를 위한 조건이 아니라 대화 거부를 위한 조건이었다. 천안함과 연평도를 그렇게 따지고 사과받고 싶다면 어떻게든 본회담을 성사시켜 그 자리에서 시종일관 집요하게 북을 추궁하고 몰아 부쳤어야 할 일이다. 이미 북이 천안함과 연평도를 의제로 다루기로 했음에도 예비회담에서 시인과 사과를 담보하지 않으면 본회담을 열지 않겠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남북회담 성사엔 관심이 없고 오히려 북의 선굴복을 빌미로 남북회담을 거부하려는 속내가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성이라는 추상적인 기준을 내세워 남북대화의 성사여부에 개의치 않는 정황에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북한붕괴 임박론이라는 정세인식이 그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붕괴가 임박한 정권과 회담을 하는 것은 당연히 시간낭비이고 급변사태를 목전에 둔 북한체제와 협상을 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일이 된다. 북한붕괴 임박론은 논리적으로 남북대화 무용론과 대북협상 무용론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연평도 포격 이후 이명박 정부는 부쩍 급변사태와 통일임박론에 희망을 걸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통일이 가까이 오고 있다’고 강조하고 통일부 업무보고에는 북한주민을 상대로 한 북한변화 유도와 통일준비가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대화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미중 정상회담을 바로 앞두고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수석은 미국 공영방송에 나와 ‘북한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미국과 중국이 조성해놓은 남북대화 분위기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화답인 셈이었다.

이집트 민주화를 목도하면서 보수진영은 또 다시 북한붕괴론이라는 주관적 기대에 한껏 고무되어 있다. 이집트와 북한의 차이, 미국과 중국의 차이를 무시하고 독재자 퇴출이 북에서도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만을 앞세워 이집트와 북한을 동일시하고 있다. 연이은 북한붕괴론의 흐름은 한미연합훈련도 이제 북한의 남침대비 훈련에서 북한 급변사태 대비 훈련으로 성격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데까지 나아간다. 심지어 김정일 69회 생일을 맞아 각종 언론에서 김정일 칠순잔치를 인민의 경제난과 대비시키고 김정은에게 밀린 김정철의 콘서트 참석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북한체제의 몰락을 심정적으로 정당화하기도 했다. 평양시 면적이 반으로 줄었다면서 북한이 이제 혁명의 수도까지 포기하고 있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동창리 미사일 기지 완공 소식과 풍계리 추가 핵실험 징후를 연일 보도하면서 비정상적인 북한체제가 군사적 도발에 나설 경우 스스로 붕괴를 자초하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분위기를 몰아갔다. 지금 이명박 정부와 보수 진영은 북한 관련 모든 소식을 북한붕괴 임박이라는 논리적 심정적 정당화로 일관되게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과연 지금 북한이 붕괴직전의 위기상황일까? 후계체제가 불안하고 경제위기가 심화되어 급변사태가 임박하고 있는 걸까? 1990년대 이후 북한은 만성적인 경제난과 체제 불안정성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것만으로 북이 붕괴한다고 당연시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이다. 붕괴 촉진요인과 함께 북에는 붕괴 억제요인이 공존하고 있다. 체제 불안정성과 동시에 체제 안정성이 내재화되어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발생과 함께 사회통합력이 유지되고 있기도 하다. 국가주도의 계획경제가 위기임과 동시에 그 공백을 민간주도의 시장기제가 채워가면서 역설적으로 경제난을 그럭저럭 버티게 하고 있다.

북한이 붕괴한다는 기대와 당위는 이미 오래전부터 귀가 아프게 들어왔다. 동독붕괴와 독일통일 당시에도 북한붕괴론은 난무했고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에도 모든 전문가는 길어야 3년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량아사와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북한붕괴는 기정사실화되었고 북핵문제 진행과정 내내 한국과 미국에서는 북한붕괴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김정일 와병시에도 북한붕괴는 유령처럼 떠돌아다녔다. 화폐개혁 이후에도 소요사태와 급변사태가 언급되었고 이제 이집트 민주화를 맞아 또 다시 북한붕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20년 넘게 북한붕괴론이 난무했지만 북한은 지금 존재하고 있고 김정일 체제는 3대 세습을 진행시키고 핵무장력을 늘려가고 있다. 지난 해 북은 주체철을 만들어 냈고, 오랜 염원이던 비날론 공장을 재가동했고, CNC라는 컴퓨터 자동화를 진전시켰다고 선전하고 있다. 물만 흐르면 막아서 소형발전소를 만들고 전략을 찾아냈다고 자랑하고 있다. 나름대로 버틸 만 하다는 자신감의 표현들이다.

남북관계를 끊고 대북지원을 중단하면 북이 힘들어할 것이고 결국 체제붕괴를 가속할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 역시 희망적 사고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가 북에 경제적 도움을 제공하지 않을 때 북은 그만큼 중국으로 더 다가갔다. 북중 교역 규모는 해마다 사상최고를 경신하고 있고 중국의 동북3성 개발계획은 이제 국가차원에서 주도하고 있다. 지난 해 김정일 위원장의 연속 방중 역시 남북관계를 대체하는 북중협력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현실은 북한의 붕괴가 임박하거나 급변사태가 도래하거나 통일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은 남북관계의 대체재로서 북중연대를 심화시킴으로써 안전보장과 경제협력을 보완해내고 이를 바탕으로 장기항전의 결의와 자신감을 다지면서 대미 북핵협상과 대남 전략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말 UEP와 원심분리기를 공개하고 연평도 포격으로 한반도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을 과시한 후, 연초부터 북이 대미 대남 대화제의를 잇따라 하는 것은 바로 붕괴임박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오히려 버틸 만하다는 정세인식에서 나온 전략적 접근이다.

급변사태 임박론과 북한붕괴 통일론은 현실과 동떨어진 희망적 사고일 뿐이다. 지금껏 대북 강경과 기다림의 전략이면 북이 괴로워 할 것이고 결국 굴복할 것이라는 인식에 갇혀 3년을 허비하면서 남북관계 파탄과 한반도 긴장고조만을 결과했다. 또 정권교체론에 갇혀 대북 압박과 봉쇄를 하더라도 북중관계가 엄연하고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G2로 부상하고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이해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정권 교체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북한 내부의 변화가 정권교체를 가져오는 것도 아직은 희망적 기대일 뿐 전혀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사회주의 체제전환론의 공통적 결론은 경제위기의 지속과 정치적 불만 그리고 권력엘리트의 분열과 민주화의 외부 요인이 결합할 때 일반적으로 체제전환이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이에 비춰본다면 북한은 오래전부터 경제위기와 정치적 불만이 존재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이를 조직화하고 대안화할 수 있는 엘리트의 분열이나 정치세력화는 미미하다. 더욱이 과거 동구와 지금 중동지역과 달리 외부 정보의 유입이 여전히 제한되어 있고 주변국의 민주화 도미노도 중국이 아직 체제전환에 나서지 않는 한 북을 움직일 만한 외부요인은 미약하다. 따라서 냉정하게 본다면 북한의 체제전환은 필요조건이 존재할 지언정 붕괴의 촉발을 가져올 수 있는 충분조건은 아직 부족한 셈이다.

북한붕괴론이 막연한 희망일 뿐 현실적 전망이 아니라는 점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토대인식이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남북관계 파탄과 한반도 긴장고조로 연결된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붕괴론에 토대한 대북정책은 결국 남북관계 중단과 대북압박을 통해 북한붕괴를 앞당기고 촉진한다는 전략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 결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3년은 사상 최악의 남북관계 파탄으로 이어졌고 북한의 군사도발과 전쟁위협을 걱정해야 하는 한반도 긴장상황으로 이어졌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고 도대체 가능하지도 않은 북한붕괴론이라는 유령에 이끌려 무모한 기다림과 대북 압박을 지속한다면 남은 임기 동안도 우리는 전쟁을 걱정하고 북한의 도발을 걱정해야 하는 위기의 나날을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섣부른 북한붕괴론은 결국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파탄과 직결되어 있는 셈이다.

김근식(폴리뉴스 칼럼니스트/경남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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