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지난 봄 이라크전 파병문제를 놓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더니 이제 다시 추가파병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윤영관 외교부 장관이 예정에도 없던 부시 대통령의 환대를 받자 다들 의아해했고 연이어 부시 행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으로의 변화가 보도되면서 그 진의를 궁금해하던 차였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이 이라크 치안유지를 위한 다국적군에 한국군의 추가파병을 요구했다는 정부의 공식확인이 곧바로 뒤따랐다.





최근의 미국 태도를 보면서 우리는 국가간 외교관계가 당위의 측면보다 실리적인 현실의 측면이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고 바로 이 대목이 추가파병 문제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법을 시사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당면한 추가파병 문제를 놓고 이라크전의 정당성 여부,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비판 등 당위적 차원의 가치판단만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를 전제한다면 정부는 한미동맹의 현실 속에서 '기여 없이 동맹 없다'는 경구를 염두에 두되 그 기여를 통해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국가이익의 최대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정부는 추가파병이 가능한 조건으로서 지금과 같은 미국 지휘의 다국적 치안유지군이 아니라 유엔의 결의에 따른 다국적 평화유지군의 방식에 의해 파병요구가 이루어져야 함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 정부가 유엔 안보리에 새로운 결의안을 제출해놓은 상태이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의가 진행중임을 감안할 때 우리가 유엔이라는 국제적 명분을 요구하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파병문제를 통해, 일방주의적인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을 수정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다음으로 우리 정부는 추가파병 수용의 댓가로 미국으로부터 북핵문제와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양보를 얻어내야 한다. 6자회담 개최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여전히 답보상태인 것은 상당부분 미국의 대북 협상의지 결여에 연유하고 있다. 따라서 추가파병 수용을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와 연계하여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국가이익 확보의 제일조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미간 최대 현안이 되고 있는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을 조건으로 거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4월 이라크전 파병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변화하지 않았고 주한미군 재배치 역시 미국 의지대로 진행되었음을 들어 이번의 추가파병 수용 역시 미국의 실질적인 양보를 얻어낸다는 기대는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라는 비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라크전 파병이 직접적으로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과 압박조치를 강화한 것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북미간 긴장상황이 그나마 한반도 전쟁위기로 발전하지 않은 것에는 분명 한미동맹에 의한 우리 정부의 역할이 작용했음을 애써 부인할 필요는 없다.




또한 우리 정부는 추가파병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전투병 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종전 이후 더 많은 사상사자 속출하고 있고 치안유지마저 불안정한 지금의 이라크 상황에서 덥석 전투병 파병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야말로 월남전의 악몽을 재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월남 파병도 처음에는 비전투병에 국한되었지만 결국은 전투병 파병으로 이어지면서 헤어나지 못할 수렁에 빠졌음을 명심해야 한다.





추가파병 문제를 놓고 우리 사회는 또 한번 적잖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시민단체는 미리 나서서 파병반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어차피 피해갈 수 없는 선택이라면 불가불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전략적 고려를 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의 현실적 선택이나 시민단체의 파병반대도 결국은 우리의 국가이익에 도움을 주는 것임을 서로 받아들이는 현명함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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