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부적절한 공약검증에 있다

37쪽짜리 <경부운하 재검토 결과보고서>를 유출시킨 사람은 수자원공사 기술본부장 김모씨인 것으로 경찰수사 결과 밝혀졌다. 김씨는 결혼정보업체 대표 김모씨에게 보고서를 건넸고, 대표 김씨는 보고서를 언론사 기자에게 다시 전달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의 발표만 갖고 정부에 대해 면죄부를 주기에는 아직 이르다. 수자원공사 고위간부가 어떤 용도로 37쪽 짜리 보고서를 따로 작성했는지, 이 보고서는 어디로 보고된 것인지가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이번 보고서 파문에 대해 오락가락 하는 발언들을 계속했던 이용섭 건교장관이 정말로 37쪽 짜리 보고서의 존재를 몰랐었는지도 더 확인되어야 할 부분이다.

경찰의 발표는 37쪽 짜리 보고서의 언론유출 과정에 대한 내용일 뿐, 37쪽 짜리 보고서와 관련된 의문들을 모두 해소해 주는 것은 아니다.

<면죄부 받을 수 없는 정부의 책임>

물론 청와대나 건교부로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상황이다. 그동안 유출 당사자로 의심받았던 청와대나 건교부가 유출에 직접 관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이 밝힌 유출의 진상이 정부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37쪽 짜리 보고서를 누가 언론에 유출시켰느냐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정부의 정치적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각계의 동향까지 담은 37쪽 짜리 보고서의 용도에 대한 진상이 더 밝혀져야겠지만, 수자원공사 간부의 책임에 국한된다 하더라도, 결국 문제의 근원은 정부의 부적절한 대선개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야당 유력 대선주자들의 공약을 검증하겠다고 TF까지 구성하여 작업을 벌인 정부부처, 그리고 그같은 일을 독려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행동이 이같은 결과를 사태를 야기한 것이다.

문제의 보고서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부처가 산하기관과 함께 TF를 구성하여 국민들 몰래 이같은 비밀작업을 한 방식도 문제이다. 반대로 이번처럼 공개되면 그 내용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공개되든 아니든간에 정부부처과 산하기관이 야당 후보들의 공약검증에 나서는한 정치적 논란은 따르게 되어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정부부처가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검증하는 것은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옹호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정부부처가 산하기관을 동원하여 작성한 보고서가 청와대로 보고되고, 대통령은 그 보고서를 활용하여 야당 주자들을 비난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그같은 작업의 순수성을 국민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야당 대선주자들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하는데 보고서의 내용이 활용되었다는 것은, 이미 그같은 보고서 작업이 가질 수밖에 없는 정치적 성격을 그대로 설명해주는 장면이다.

<대선주자 공약검증, 정부가 할 일 아니다>

대선주자들의 공약을 정부부처가 나서서 검증하는 일이 반복되는한 계속될 수밖에 없는 논란이다. 대운하 보고서 유출 파문 이후 숱한 논란과 의혹이 제기되었다. 경찰은 작성자와 유출자 수사에 나섰고, 선관위는 검찰에 수사의뢰를 했다. 대선정국의 폭탄과 같은 사안이 되어버려 정치적 공방전이 연일 전개되고 있다.

이 무슨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논란인가. 정부부처가 이렇게 대운하 공약 검증을 해서 그 결과가 얼마나 설득력있게 전파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작업의 내용적 결과보다는 이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만이 관심사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노 대통령은 정부부처들이 대선주자들의 주요 공약을 검증할 것을 독려하고 있지만, 매번 정치적 논란이 따를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정작 정부부처가 수행한 검증의 결과를 국민들이 얼마나 객관적인 것으로 받아들일지 또한 의문시된다.

대선정국을 무작정 시끄럽게 만들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대선의 공정한 관리를 책임져야 할 정부가, 대선주자들의 공약을 검증하고 점수를 매기겠다는 발상 자체가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다. 이미 대통령이 특정 주자들에 대한 호.불호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는 마당에 그들의 공약에 대한 정부부처의 평가가 객관적으로 이루어지리라고 믿기 어렵다.

대선주자들의 공약검증은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 더 이상 이런 일이 진행되지 않도록, 노 대통령은 자신의 주문을 거두어 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한반도 보고서 유출파문과 같은 사태는 계속 이어지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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