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37쪽 보고서’, 누가 작성했을까?

이명박 전 시장(ⓒ폴리뉴스)
누가 ‘37쪽’ 짜리 보고서를 작성하고 언론에 유출시켰을까. 그 진상이 대선정국의 분위기를 좌우할 중요한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의 핵심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재검토 보고서를 정부산하기관들이 작성했다는 사실은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던 일이다. 문제가 더 심각하게 불거진 것은, 언론에 보도된 37쪽 짜리 보고서가 원본이 아니라 9쪽 짜리 원본을 각색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였다.

원본 보고서 공개, 그러나 이어지는 의혹들

이용섭 건교부 장관은 18일 국회답변에서 37쪽 짜리 보고서는 처음 보는 것이라고 밝혔고, 건교부는 이날 저녁 9쪽 짜리 원본 보고서를 전격적으로 국회에 제출하며 공개했다. 건교부는 그동안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보고서 공개를 거부해왔으나, 이 전 시장측의 강력한 요구와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문제의 보고서를 공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9쪽 짜리 원본 보고서의 공개와 동시에 새로운 의문들이 줄을 이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이 전 시장측에서는 건교부가 공개한 원본 역시 급히 변조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유는 같은 날 이용섭 장관이 국회에서 답변을 통해 밝힌 내용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관은 국회에 제출한 9쪽 짜리 보고서는 위조된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여러 대목에 대해 일일이 설명했지만, 말끔하게 해명된 것은 아니다. 기억력의 한계에 따른 착오일 가능성도 있지만, 공개된 보고서 내용과 이 장관의 답변 내용간의 차이는 계속 논란거리가 될 상황이다.

하지만 결국 핵심적인 의혹은 도대체 누가 원본을 각색해서 37쪽 짜리 보고서를 만들고 이를 언론에 유출시켰는가 하는 부분이다. 이 장관도 “일부 내용이 다르지만 37쪽짜리는 TF에서 논의된 것을 가지고 누군가가 다시 친 것 같다”며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정부로서도 누가 37쪽 보고서를 작성했는지 밝혀지기를 원한다는 이야기이다.

청와대도 37쪽 짜리 보고서와의 연관성을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나섰다. 청와대가 보고받은 것은 9쪽 짜리 보고서일 뿐, 37쪽 짜리 보고서는 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37쪽 짜리 보고서의 작성자는 이명박 전 시장측, 건교부, 청와대 모두가 같이 찾으려하는 묘한 상황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한가지 의아한 대목은 37쪽 짜리 보고서가 처음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왜 청와대나 건교부가 자신들은 아는 바 없는 보고서라고 즉각 부인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평소의 모습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청와대나 건교부가 직접 보고받지는 않았다 해도, 37쪽 짜리 보고서의 존재나 작성주체를 최소한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도 가능한 대목이다. 청와대의 적극적인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작성주체, 집권세력과 무관한 곳일까?

청와대와 건교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불똥이 청와대로 튈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청와대의 해명대로 37쪽 보고서와 관련하여 청와대가 작성에 관여하거나 보고받은 바도 없다 하더라도, 집권세력 내부의 비공식적인 라인에서 이같은 작업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쪽 보고서에 각계의 동향같은 내용이 추가되어 있는 점이라든가, 대통령을 VIP라고 표기한 점 등을 놓고 보았을 때, 집권세력과 무관한 곳에서 이런 일을 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 사안이 민감한 것은 마침 노 대통령의 대선개입에 따른 법적 논란이 정점에 달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거듭되는 선거법 위반 결정에도 불구하고 대선개입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정부기관들이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검증할 필요성까지도 노 대통령이 직접 제기하고 나선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37쪽 보고서의 작성과 유출이 집권세력과 관련된 조직이나 인맥에 의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결국 노 대통령의 대선개입 의지가 그같은 결과를 낳은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관권선거 시비까지 불거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사안이 워낙 정치적으로 민감하기에 섣불리 예단하기는 조심스럽다. 이용섭 장관이 경찰에 수사의뢰를 했다고 하니 일단은 그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경찰이 철저한 수사의지만 갖는다면 37쪽 보고서의 작성자와 유출자를 조기에 밝혀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성격이 그리 복잡하지는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결과에 따라 대선정국이 다시 요동치는 일이 있게될지, ‘37쪽 보고서’가 대선정국의 뇌관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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