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민주-고건의 통합신당, 정체성은 일치하는가?

열린우리당은 창당 3년만에 '당 해체'를 하려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창당3주년 행사)
통합신당은 과연 여권을 위기로부터 구출해줄 수 있을 것인가.

열린우리당, 민주당, 고건 전 총리의 이른바 '범(汎)여권 통합신당' 추진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통합신당 추진론이 대세를 점하고 있다. 민주당은 열린우리당 주도가 아닌, 헤쳐모여식의 신당창당을 제안해 놓은 상태이다. 근래 들어 지지율의 하락을 겪고 있는 고건 전 총리측도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통한 통합신당 창당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배경은 명확해 보인다. 이들 세 세력 모두가 자신의 힘만으로는 내년 대통령선거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정국상황에서 다른 세력와 연합하지 않고서는 설 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판단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추진하는 통합신당 정계개편은 결국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들 사이의 통합을 가로막는 장애요인들은 많다. 각 세력간의 주도권 경쟁,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사이의 감정, 열린우리당 내부의 입장차이, 노 대통령의 배제문제, 세력간 정체성의 차이 문제 등, 진통이 예고되어 있는 여러 사안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세 세력이 처해있는 다급한 현실은, 이러한 장애요인들을 뛰어넘는 대타협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범여권의 세력들은 한나라당이 독주하고 있는 대선정국의 분위기를 신당창당을 통해 반전시키려 할 것이다.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한 대선후보 선출로 국민의 관심을 끌어모아 당와 후보의 지지율을 반등시키겠다는 기대이다. 대선구도가 '한나라당 대 반(反) 한나라당 연합'의 구도로 전개되면 전통적 지지층의 재결집을 통한 바람몰이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범여권의 통합신당이 성사된다해도 이같은 신당효과가 가능할 지는 현재로서는 불투명해 보인다. 그것은 현재의 정계개편 논의가 갖는 한계로부터 비롯된다.

열린-민주-고건의 '범여권 통합신당', 정체성없는 '생존용 이합집산'일뿐

현재 범여권의 정계개편 논의가 갖는 결정적인 한계는 명분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평화번영세력의 결집'이니 '민주개혁세력의 대연합'이니 하는 정치적 구호로는 설명되지만, 막상 지켜보는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정계개편의 뚜렷한 명분을 발견하기 어렵다.

현재의 정계개편 논의가 정치적 대의명분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내년 대선을 앞둔 살길찾기용 이합집산이라는 점을 국민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세 세력간의 통합에는 논리적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대목들이 존재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갈라섰던 과거의 입장차이는 과연 해소된 것인가, 열린우리당과 고건 전 총리의 정체성은 과연 일치되는가.

세 세력의 다급한 현실은 이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략한채 정계개편 논의를 진척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세 세력이 꼭 통합해서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해야할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취약한 상태에서 정계개편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범여권의 통합신당 창당이 과연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는 아직 불투명해 보인다. 대선용 정계개편이라는 한계에 따라,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이나 비전을 제시할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이나 고 전 총리 모두 정치적으로는 기성세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간의 통합이 이루어진다해도 기존세력간의 평면적 재결합 이상의 감동을 안겨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지지층의 재결집을 통해 바람을 불러일으키려는 구상이 달성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이같은 한계를 그나마 보완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이제라도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 논의가 되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대선이라는 목적 이전에 정체성의 확보를 위한 정계개편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세 세력이 정책과 노선면에서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가가 국민들에게 먼저 설명되어야 하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들 이외의 어떤 세력이 함께 하게되는 지를 또한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자신들이 표방하는 대의를 위해서는 각자의 기득권을 함께 포기하고 정치적 위험조차도 감수하려는 사즉생(死卽生)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보여지는 모습은 서로가 정치적 주판알을 튕기며 여러가지를 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자신들이 말하는 정계개편이 대선용 정략적 개편에 불과함을 고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논의없이 진행되는 정계개편은 선거철만 되면 찾아오는 또 한번의 이합집산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게해서 급조된 정당은 선거가 끝나고 나면 언제 사라지게 될 지 모른다. 그것이 우리 정치사가 보여준 생생한 경험이다. 어차피 정계개편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범여권의 현실이라면, 무엇보다 대의명분을 우선시하며 국민의 눈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주문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