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대화정치'가 시작된 지도 한달 반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노 대통령은 인터넷에 직접 글을 올리거나 기자간담회를 갖는 방식 이외에도, 언론인과의 대화 자리를 마련했는가 하면 TV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이번 주에도 여당 의원들과의 대화 자리, 언론사 논설위원들과의 간담회가 이어진다.

노 대통령이 이렇게 직접대화에 나선 것은 그만큼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대연정 문제를 비롯한 여러 현안들에 대한 자신의 진의(眞意)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을 답답하게 여기고 직접설명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이 언론인이나 국민들과의 대화를 자주 해나가겠다는데 이를 탓할 이유는 없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대화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의 '대화정치'가 이제는 달갑게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진정한 대화정치가 되지 못하고 '말의 정치'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란 쌍방향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국민은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고, 대통령은 국민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자세가 되어있을 때 대화의 의미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일방적인 자기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지난 주 TV토론에서도 노 대통령은 두가지 점에서 국민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

첫째, 29퍼센트 지지율의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를 토로하면서도 정작 국민 앞에 아무런 자성의 목소리도 내놓지 않았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대통령이라면 응당 낮은 지지율을 초래한데 대해 송구함을 표시하고, 앞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심기일전하여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얘기는 없었고 , 그 날 노 대통령의 이야기는 마치 당신들이 나를 지지하지 않으면 대통령을 그만 둘 수도 있다는 오기섞인 대응으로 들렸다.

둘째, 민심을 거역하면서라도 대연정을 추진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말을 듣노라면, 국민의 뜻을 이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가라는 탄식이 생겨난다. 결국 29퍼센트 지지율 대통령 노릇은 못하겠으니 연정을 해야겠고, 민심이 반대한다 하더라도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면서라도 하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국민이 뭐라고 하든, 나는 내 생각대로 하겠다'는 식이면 대화정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대통령의 일방적인 주장을 전달하기 위한 자리가 될 뿐이다. 노 대통령이 자신을 향한 국민들의 쓴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되는 대화정치는 의미없는 '말의 정치' 가 되고 말 것이다.

최근 들어 노 대통령이 전개해 온 대화정치는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의사소통을 통해 거리를 좁히기는 고사하고, 무수한 논란만을 양산하고 있다. 무엇 하나 정리되고 매듭지어지는 것은 없고 새로운 논란거리만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말을 하면 방향이 잡혀야 할 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대통령이 말을 많이 할수록 앞으로가 불확실해진다. '권력 통째로' 발언이 나오자, 노 대통령이 혹시 '하야'(下野)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각제 개헌 제안을 하고 나오지는 않을까. 어떤 후속카드를 갖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억측들이 난무하고 있고,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개정국이 만들어지고 있다.

노 대통령이 전개하고 있는 대화정치는 사실 집권 초반기에 마음껏 했던 방식이다. 집권 초반기에 노 대통령은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하다가, 결국 그같은 방식을 중단하였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많은 이야기들을 하다보니, 논란만 증폭되고 부작용이 많더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한차례 경험을 통해 검증되었던 문제이다. 그럼에도 다시 그 때의 방식으로 회귀한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금은 노 대통령이 말을 하기보다는, 말을 들어야 할 때이다. 노 대통령의 마음 속에 맺힌 것이 많기로서니 국민들만 하겠는가. 정작 맺혀있는 많은 말을 하고싶은 사람은 국민들이다. 그런 국민들은 참고 있는데, 대통령 혼자 자기 얘기만 다하면 국민들 마음은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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