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정치권 주변에서 이회창 전총재의 이름이 자주 나오고 있다. 이 전총재의 지지모임인 '창사랑'은 그의 정치복귀를 촉구하고 나섰고, 한나라당내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회창 역할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나라당이 '병풍'(兵風) 특검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지난 대선에서 그의 낙선이 부당한 것이었음을 부각시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사자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이래저래 '이회창 복귀론'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회창 복귀론을 말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그의 대선출마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 가운데는 야권 후보 가운데 여전히 이 전총재의 득표력이 가장 높을 것이니까 다시 한번 출마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대선 출마는 무리이지만 차기 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특히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는 이 전총재가 범보수세력의 축이 되어 '킹 메이커'의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모두가 이 전총재의 정치복귀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그 파장은 간단할 수가 없다. 이회창 복귀론의 바탕에는 두 차례의 대선에서 '아슬아슬하게' 패배한 결과에 대한 애석한 정서가 깔려있다. '그래도 이회창만한 인물이 없다'고 믿었던 보수층의 입장에서는 결과에 대한 미련이 아직도 남아있을 법하다.

특히 승리를 확신했던 지난 대선의 경우'병풍'만 없었다면,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만 없었다면...... 여러 미련속에서 대선결과에 대한 정서적 불복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미련'은 다시 한번 '기회'를 갖고 싶어하는 욕망으로 이어지게 된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의 '부진'은 그같은 욕망을 더욱 부채질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 이 전총재의 복귀는 우리 정치의 퇴행을 의미하는 일이다. 물론 이 전총재가 다시 정치를 하거나 출마하면 안된다는 법은 없다. 김대중 전대통령같은 경우 대권4수까지 하면서 대통령이 되었는데, 이 전총재라고 대권3수를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이 전총재에게는 김 전대통령과는 다른 업보가 있다. 지난 대선에서 있었던 '차떼기'에 대한 총체적 책임이 그것이다. 이 전총재가 직접 관련이 되었든 아니든간에, 그는 '차떼기'에 대한 모든 정치적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였음이 분명하다. '차떼기'의 기억은 몇 년의 시간이 지난다고 잊혀질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정경유착이 낳은 한국 부패정치의 결정판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전총재에게는 법적 책임보다 더 무서운 정치적 책임이 따라다니고 있는 것이다.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우리 정치는 한 시대를 보내고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이 전총재는 본인이 원하든 아니든간에, 이미 지나간 시대를 상징하는 정치인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정치를 만들겠다며 정치를 시작했던 그였지만, 이제 어느덧 그 자신이 과거의 정치를 책임져야 할 당사자가 되어버렸다. 세상은 그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다. 다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회창. 그의 이름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등장하는 현실은, 지금 우리 정치에 반성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현존하는 정치에 대한 불만족이 과거의 인물에 대한 미련이나 향수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고건 전총리의 행보도 관심을 끌고 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는 차기 대권주자 가운데 고 전총리의 지지율이 1위를 달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그 역시 1970년대말 이래 과거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그를 놓고 이 당 저 당에서 영입이야기를 꺼내는 장면을 보는 것도 착잡하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과거의 인물들이 관심을 모으는데 비해, 정작 현재 정치권의 모습은 아직 관심권 밖에 있는 모습이다. 국정을 주도해야 할 열린우리당은 무기력증에 빠져있고, 환골탈태를 다짐했던 한나라당의 변화는 여전히 미흡해 보인다. 그래서 과거 인물들의 등장을 탓하기 이전에, 그같은 상황을 낳고 있는 지금 정치권의 허약성을 먼저 탓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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