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DJ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 파동 (1)-

“뭣 하는 사람들이야? 내가 죽어야지!” - 노기 서린 김추기경

1987년 10월 16일 오후 6시 청와대 입구에 위치한 로마교황청 대사관에서교황 요한 바오로2세 즉위 10주년 기념 리셉션이 개최돼,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 카톨릭 고위 성직자들과 몇몇 국회의원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30여명의 초청인사 가운데 나도 포함됐지만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제1야당인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와 김대중 고문이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분열하여 각기 대통령 후보로 나설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에 대해 무거운 입을 차마 열기 어려워서였다.

6.29 선언 이후 대통령직선제 개헌이 현실화되자, 김추기경님은 여러 차례 나를 불러서, ‘후보단일화가 되지 않으면 이미 4월에 여당인 민정당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노태우씨가 보란 듯이 당선돼, 박종철군의 억울한 죽음 등 무수한 청년학도들과 광주항쟁 피해자들의 희생이 물거품이 돼 버리고, 민주화를 향한 헌정사가 퇴행하는 결과를 빚을 것’을 우려하며, ‘YS, DJ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는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야당의 과제’라고 촉구했었다.

김추기경님은 70년대는 물론 80년대에도 군사정권의 종식과 민주화를 염원하여 당시 제1야당을 성심성의껏 성원, 격려해 왔으므로 후보단일화에 대한 집념은 누구보다도 확고한 분이었다.
당시 제1야당을 위해 온 힘을 실은 김추기경님의 기도 탓인지 9월 초순에는 통일민주당의 소장국회의원 12명이 후보단일화 촉구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통일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으로서 이른바 당 3역의 한사람이었기 때문에 소장파로 지칭될 수 없었으나, 이미 서명한 12명 가운데 한사람이었던 조순형 의원(현 국회의원. 나의 대학 4년 선배)이 나에게 서명을 제의했다.

“조 선배, 취지는 찬성이오만 그래도 내가 정책위 의장인데, 총재(YS)께는 이해를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와 조의원은 85년 9월의 ‘고대앞시위사건’으로 체포, 기소되어 30여회 1심재판을 받는 동안 혈맹의 동지애를 느끼던 사이였다.

그가 벌컥 화를 내면서 “이봐, 허락할 것 같아?” 라고 하기에, 나는 “그렇지, 자기를 치겠다는데 허락 않겠지! 좋소, 사인하지요.”하고는 서로 크게 웃었다.

해서, 당직 서열상 서명파 수장이 되고, 이후 나의 정치행로는 예측불허의 험로를 걷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크게 머뭇거리지 않고 서명을 한 것은 그 순간 김추기경님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YS, DJ의 오랜 정치적 숙적관계로 미루어 누구 눈에도 단일화는 어렵다고 생각되던 때였기에, 김추기경님의 단일화 요구 역시 그만큼 절박한 것이었고, 그런 심경을 받아들인 내가 소장파의 단일화 서명에 참여하는 것은 예정된 길이기도 했다.

13명의 서명파 의원들은 김현규 원내총무에게 9월 20일 국회본관 146호 소강당에서 의원총회를 열게 하고 YS, DJ(두 사람은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 아니었음)를 모셔 놓고 문을 잠그고, 단일화 끝장 토론을 벌였다. 의원총회장에 마지못해 출석한 두 사람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서명파 의원들의 파상 공세를 받고 있었다.

거의 세 시간이 경과했을 즈음 느닷없이 DJ가 발언대에 나서서 “방금 함석헌 선생이 임종이 가까워 왔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분이 입원하고 있는 을지병원으로 가 보아야겠다.”고 말한 후 회의장을 성큼성큼 걸어서 나가 버렸다.

그 직후 서명파 의원회합에서 “서울 교외 독립가옥에 YS, DJ를 모셔다 놓고 단일화 항복을 받자!”는 의견들이 쏟아졌으나, 일말의 기대를 여론에 걸 수밖에 없어, 결론 없는 끝장토론 같은 모양새였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청 대사관 리셉션이 열린 것이다.

나는 약간 긴장한 가운데 오후 6시 조금 못 미쳐 대사관에 당도했다. 그 리셉션 장은 넓지 않은 공간으로 30여명이 빼곡히 들어찼다. 우선 오렌지주스 잔을 들고 목을 축이고 있자니 뒤이어 김추기경님이 도착했고, 여지없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김추기경님이 손짓으로 나를 오라 하기에 창가로 갔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말없이 깊이 목례만 했다.

“어떻게 돼 가나? 단일화 결국 안 되는 거지?”
모든 것을 예감한 김추기경님의 말에 나는 허를 찔린 듯 일순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간신히 입을 뗐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말끝을 맺지 못했다. 창밖으로 눈길을 주던 김추기경님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뭣 하는 사람들이야? 내가 죽어야지!”
오른 손바닥으로 왼쪽 가슴을 여러 차례 꽤 세차게 쳤다. 그의 눈에서 엷은 노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오랜 세월 김추기경님을 지켜보았지만, 그렇게 노기 서린 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계속)

2009.3.5

박찬종(아우구스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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