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게이오대 방문연구원 박찬종

구조조정은 말만 구조조정이었지 내용적으로 보면, 한참 타고 있는 불길에 휘발유를 부어주는 행동에 불과했다. IMF를 맞이할 때까지 수많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었다. 현 정부는 모든 기업들로 하여금 도덕적 해이로부터 벗어나 경영능력을 키울 수밖에 없도록 시스템을 짜주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기르기 우해 범국민적 리더십을 발휘했어야 한다.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현 정부는 이와는 정반대로 일했다. 부실했던 금융기관과 기업들에게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 부어 주었다. 빚을 갚지 않은 농민에게 매 6개월마다 한 번씩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것이 도덕적 해이를 더욱더 부추긴 것이다. 공적자금, 그것은 보약이 아니라 독약이었다.

외국기업들이 물밀 듯 들어옴에 따라 한국기업들은 제품개발, 품질, 가격, 마케팅, 경영능력 모두에서 턱없이 밀리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난 2년 이상 성장을 계속해올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뿌린 250조 규모의 대팻밥이 타는 효과였다. 그 대팻밥이 소비를 유발시켰고, 공장을 돌려주었으며, 묻지마 식 주식투자 붐을 조성하여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주었다. 그래서 비록 부실기업이라 해도 한시적으로나마 생명을 연장해올 수 있었다.

경영능력 없이 도덕적 해이에만 빠져있는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또 다른 공정자금 즉 대팻밥을 기다리고 있지만 이제는 정부도 더 이상 만들어 줄 수 없다. 대팻밥을 공급해 주지 못하면 많은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쓰러질 것이다. 이는 대량실업과 사회적 패닉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정부가 당면하고 있는 딜레마이다.

△ 원천기술 없이는 대일 무역수지적자를 개선할 수 없다

1995년 40달러를 호가하던 16메가 D램 가격이 불과 몇 년 사이에 1-2달러로 폭락했다. 1998년 삼성은 이로 인해 1천억 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다가 1999년 3월과 9월 사이에 64메가 D램 가격이 4달러 수준에서 갑자기 22달러로 뛰어 올라 반짝 호황을 누리다가 지금은 다시 5-6달러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렇듯 가격 등락이 심한 반도체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2%나 된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반도체 산업은 속 빈 강정이다. 98년 말 당시 반도체 수출고는 170억 달러였다. 그러나 한국은 이를 위해 122억 달러 어치의 핵심 부품을 수입했다. 수출액의 70%는 외국에 바치고 나머지 30%인 48억 달러만 국내업체가 차지한 것이다.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으로 분류된다. 한국 반도체 시장의 81%는 메모리 분야이고, 비메모리 분야는 겨우 19%에 불과하다. 메모리칩은 집중 투자에 의한 방대한 기계 설비로 찍어내는 표준형 칩이고, 비메모리 칩은 수학의 깊이, 응용능력에 의해 설계되는 주문형 반도체 칩이다.

고부가가치는 비메모리 상품이 창출해낸다. 그래서 인텔은 매출액의 95%를 비메모리 상품에서 올렸고 일본의 NEC는 매출액의 73%를 비메모리 분야에서 올렸다. 미국의 인텔은 98년 말 당시 228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렸지만 삼성은 겨우 47억 달러를 기록했을 뿐이다. 메모리 반도체만의 시장에서는 한국이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지만 비메모리 시장이 원체 크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한국 반도체가 국제시장에서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은 겨우 6%에 불과하다.

범용제품인 D램 시장은 95년도의 420억 달러 시장에서 98년도에는 150억 달러시장으로 축소된 반면 특정 목적 수행용 특화제품은 960억 달러에서 1200억 달러로 확장됐다. 지금은 메모리와 비메모리시장 배율이 1대 8이지만 메모리시장은 앞으로 점점 더 축소될 전망이다.
메모리칩은 수조원대의 기계설비에 의해 대량으로 찍어내는 소품종 대량생산품이다. 지식이 만들어내는 상품이 아니라 비싼 설비가 찍어내는 상품이다. 연구개발 능력이 없어도 돈만 많으면 찍어낼 수 있는 비지식 제품인 것이다. 그나마 제조공법은 완전히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해외 업체가 기계설비를 설치해주지 않으면 만들어 낼 수 없는 상품이다. 반도체 가공장치의 80%가 해외업체의 제품이다.

2008.11.10

올바른사람들 공동대표 박찬종

PS. 이글은 필자가 2000년 게이오대학에서 방문연구원 활동을 하던 중 작성한 글입니다. 후편을 계속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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