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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칼럼] 오거돈의 성추행, 기게스 반지를 낀 시장

 

오거돈 부산시장이 강제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며 시장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최근 한 여성 공무원을 5분간 면담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있었고 강제추행으로 인지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마치 남의 얘기 하는 것 같아 거북하다.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뭐고 ‘인지했다’는 건 또 뭔가. 어쨌든 "공직자로서 책임지는 모습으로 남은 삶을 사죄하고 참회하면서 평생 과오를 짊어지고 살겠다"며 흐느끼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런 일인줄 몰랐나, 부산시장 정도의 지위에 오른 사람이 그 정도도 분별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난과 욕을 하기에 앞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었을까 하는 의아함이 앞서게 된다.

상식적으로 따지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불필요한 신체접촉’이라고 표현하니까 마치 자신의 의지가 실리지 않은 것 같은 의미로 들리는데, 성추행은 분명히 가해자의 적극적 의지가 실린 범죄행위이다. ‘접촉’이라는 표현으로 마치 우연한 실수인 것처럼 말할 일이 아니다. 그것도 시장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래에서 일하는 여성 공무원을 상대로 그런 몹쓸 짓을 했다니. 행위의 야만적 폭력성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그런 행위가 자신의 파멸까지 가져올 것임은 두렵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2년전 미투 열풍 속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여비서를 성폭행한 사실이 알려져 지사직을 사퇴하고 징역형을 선고받은 일이 있었다. 정봉주 전 의원도 미투 논란 속에서 서울시장 출마 계획을 접어야 했고, 1심에서는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아직까지 재판이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아무리 권력자라도 성추행 같은 몹쓸 짓을 했다가는 인생이 파탄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런 짓을 버젓이 하다니, 도대체 어떤 생각이었을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짓을 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플라톤의 『국가』 2권에는 인간의 자발적 도덕성을 의심하는 ‘기게스의 반지’ 얘기가 나온다. 이 반지는 손가락에 끼면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  이 반지의 위력을 알게 된 기게스는 나쁜 마음을 먹고, 반지를 이용해서 왕비와 간통하고, 칸다우레스왕을 암살하여 왕위를 찬탈하고 스스로 리디아의 왕이 된다. 이 얘기를 전하는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런 경우에 올바름 속에 머무르면서 남의 것을 멀리하고 그것에 손을 대지 않을 정도로 그처럼 철석같은 마음을 유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이 생각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인간은 나쁜 짓을 한다는 의미가 담긴 얘기이다.

댄 애리얼리가 쓴 『상식 밖의 경제학』이라는 책에도 기회만 주어지면 남을 속이려 드는 인간들의 얘기가 나온다. 애리얼리가 참가자들에게 수학 문제를 풀게 한 후 그들이 실제보다 더 많은 문제를 풀었다고 주장하면 더 많은 돈을 받아갈 기회를 주었더니 대다수 참가자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리얼리는 연구 결과를 이렇게 정리했다 “정직한 사람들도 기회만 주어지면 상당수가 남을 속이려 든다. 우리의 연구 결과를 보면, 나쁜 놈 몇이 보통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사람들 대다수가 남을 속이는 것으로 나타났고, 남을 속이는 것은 소소한 수준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발뺌의 여지만 있으면 대부분이 남을 속인다는 것이다.

안희정 지사 사건에 이어 오거돈 시장의 성추행 사건까지 겪으니 인간의 자발적 도덕성에 대한 회의가 생겨나는 것이 사실이다. 공인 중의 공인이라고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러하니, 우리는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한단 말인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애리얼리의 연구가 덧붙인 중요한 얘기가 있기 때문이다. 애리얼리가 기게스의 반지로 모습을 감출 기회를 주자 사람들은 어느 정도까지만, 즉 스스로의 힘으로는 더 이상 정당화가 안될 때까지만 남을 속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 대다수가 남을 속이지만, 소소한 수준에 그친다고 애리얼리는 말한다. 거짓말을 할지 언정 자신을 선한 존재로 믿으려는 양심의 버팀목을 각자가 가지려 함이다.

또한 위안이 되는 것은 우리를 배신하는 그런 공인들에도 불구하고 그런 폭력에 분노하며 고통받는 피해자들 편에 서는 사람들이 그래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범부(凡夫)들이야 다른 사람을 유린하는 폭력 같은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며 일상을 정신없이 살아가지만, 혹여 아무도 보지않는다 생각하며 나쁜 짓을 하면서 살지는 않는지 이 기회에 돌아보게 된다. 부끄러운 짓은 권력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데, 부끄러움은 그저 일상을 살아갈 뿐인 우리의 몫이 되고 있다. 이번에도 그렇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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