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윤청신 기자]

MBC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에서 민족 시인 이육사를 조명해 네티즌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1월 12일 방송된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에서는 민족저항시인 이육사의 유일한 혈육인 친딸 이옥비 여사를 찾았다.

'청포도', '광야', '꽃' 등 이육사가 남긴 시들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밑줄을 그어가며 배웠을 정도로 유명하게 알려져 있다. '선녀들'은 이러한 이육사가 사실 펜을 들기 전에 총을 든 무장 독립투사였다는 것을 알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이옥비 여사는 아버지 이육사와의 마지막 인사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육사의 모습 등을 이야기해 정유미는 물론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다.

이육사 시인은 본명은 원록(源綠). 1904년 4월 4일 경북 안동 출생. 보문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대구 교남학교에서 잠시 수학했다.

그는 일제 말기의 어두운 시대 상황 속에서도 명징한 언어로 꺼지지 않는 독립의지를 노래했다. 이육사는 나라를 위해 입이나 머리가 아닌 몸을 던져 싸움으로써, 민족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준 실천 문학인이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가입, 그 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의열단의 사명을 띠고 북경으로 갔다. 1926년 일시 귀국, 다시 북경으로 가서 북경사관학교에 입학, 이듬해 가을에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좌, 3년형을 받고 투옥되었다. 이 때 그의 수인(囚人) 번호가 264번이어서 호를 육사(陸史)로 택했다고 전한다.

1929년에 출옥, 이듬해 다시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곳 북경대학 사회학과에서 수학하면서 만주와 중국의 여러 곳을 전전, 정의부(正義府)‧군정부(軍政府)‧의열단(義烈團) 등 여러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여 독립투쟁을 벌였으며, 노신(魯迅)을 알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933년 9월 귀국하여 이 때부터 시작(詩作)에 전념, 육사란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의 첫 작품은 1935년 『신조선』에 발표한 「황혼」이었다.

1934년 신조선사 근무를 비롯해 중외일보사, 조광사, 인문사 등 언론기관에 종사하면서 시 외에도 한시와 시조, 논문, 평론, 번역, 시나리오 등에 손을 대어 재능을 나타냈다. 1935년 시조 「춘추삼제(春秋三題)」와 시 「실제(失題)」를 썼으며, 1937년 신석초‧윤곤강‧김광균 등과 『자오선』을 발간하여 「청포도」, 「교목」, 「파초」 등의 상징적이면서도 서정이 풍부한 목가풍의 시를 발표했다.

그의 시 발표는 주로 『조광』, 『풍림』, 『문장』, 『인문평론』을 통하여 1941년까지 계속되었으나, 시작활동 못지 않게 독립투쟁에 헌신하여 전 생애를 통해 17회나 투옥됐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광야」와 「절정」에서 드러나듯이 그의 시는 식민지하의 민족적 비운을 소재로 삼아 강렬한 저항 의지를 나타내고, 꺼지지 않는 민족정신을 장엄하게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1941년 폐병을 앓아 성모병원에 입원, 잠시 요양했으나 독립운동을 위해 1943년 초봄 다시 북경으로 갔다. 그 해 4월 귀국했다가 6월에 피검되어 북경으로 압송되어 수감중 북경의 감옥에서 옥사했다. 1946년 『육사시집』이 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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