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민초들 시간은 아랑 곳 없나...실천하는 것이 실용이라더니

이명박 대통령은 3일 10시 30분에 '마이스터고'로 지정된 원주정보공업고등학교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정보다 30분 늦은 11시 경에 현장에 도착했다.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은 춘추관에서 가진 짤막한 브리핑을 통해 이 대통령이 늦게 도착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원주로 이동하던 중 여주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면서 시민들과 사진 촬영을 하는 등 담소를 나눴으며, 이 대통령은 이런 만남을 즐기는 편"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휴게소 깜짝 방문은 예정에 없었던 일이며, 아이들을 동반한 시민들과의 사진 촬영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국민들과 스킨십을 통해 소통을 강화하려는 대통령의 의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예정에도 없던 일, 그것도 커피마시면서 아이들과 사진 찍는 것 때문에 대통령이 약속 시간이 정해진 다음 행사는 뒤로 미룬 채 시간을 지체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속칭 '번개(갑작스런 만남)'를 즐기는 것이 대통령의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원주에서 대통령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은 30여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이들도 국민이며 자신의 시간이 매우 소중한 사람들이다.

대통령이 이들과의 시간 약속을 이런 이유 때문에 안 지킨다면 그들을 무시하는 행위로 여겨진다. 대통령 스스로 자신이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다음에야 어떻게 아무 이유 없이 그들을 기다리게 할 수 있겠는가?

대기업 회장들의 회고록을 보면 '대통령이 불러 청와대로 갔는데 오랜 시간 동안 아무런 설명 없이 기다려 속으로 많이 화가 났다'는 취지의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이 대통령도 대기업 회장 시절 이런 경험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경험을 했다면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물론 원주에서 대통령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대통령이 와서 자신들의 얘기를 경청해주고 정책에 반영시켜준다면 ‘까짓 이틀 밤은 못 기다리겠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와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매우 화가 많이 났을 것이다.

권위는 신뢰에서 비롯된다. 신뢰는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대통령은 휴게소에서 이런 만남을 가지려했다면 30분 일찍 출발했어야했다. 그렇지 못했다면 약속 시간을 지키기 위해 휴게소를 거치지 말고 바로 원주로 갔어야 마땅했다.

대통령의 이런 처신이 ‘자신의 시간은 중요하고 국민들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변명할 수 있겠는가? 이 대통령은 얼마 전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실용’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아주 작은 약속도 지키지 않는 대통령이면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2007년 12월 19일 당선자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겠다’고 밝혔다. 이제 일 년 반이 지났다. 얼마 전 이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을 섬기겠다고 다시 확인했다. 민초들의 시간을 헤아려주는 것이 국민을 섬기는 자세고 실용이다. 이런 주장이 논리의 비약이라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옛말도 있다는 점을 새겨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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