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금산분리완화’를 위한 삼성의 대반격

2007년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공개한 ‘삼성금융계열사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로드맵’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문제의 내부문건은 2005년 5월 삼성금융연구소에서 작성하고, 삼성생명·삼성카드 등 그룹의 금융부문 최고위 기구인 삼성 금융사장단 회의에서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이 공개되자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작성한 것이 아니라 “삼성생명 금융연구소에서 만든 것”이라며 삼성은 그룹차원에서 금산분리완화를 주장한 적은 없다고 파문의 확산을 막았었다.

이 문건은 삼성그룹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은행업 진출을 위한 방안으로 금융지주회사에 주목하고 이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한 뒤 5대 추진과제를 제시했다. 이 5대 추진과제의 목표는 금산분리정책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를 조성하여 금산분리완화를 이끌어내 최종적으로 금융지주회사법을 개정하는데 두었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 이론적 타당성에 대한 검증없이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산금분리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유도
○ 은행업과 비은행업에 대해서는 차별화된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형성 ->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지분 관련 규제 완화 여론 조성
○ 비은행금융업 성장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비은행금융업에 대한 차별화된 정책수립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환기
○ 이를 통해 비은행금융지주회사제도, 비은행금융기관의 은행업진출, 사업형지주회사에 대한 고객정보 공유 등 과제의 본격 수행을 위한 토대 마련
○ 2006년 비은행금융지주회사제도, 은행업진출 등 과제의 공론화를 위해 필요한 이론과 사례를 심도 깊게 연구

보고서 지침대로 금산분리 반대여론 조직적으로 형성했을 가능성 높아

이러한 지침이 사실이든 아니든 2005년에서 2006년 상황은 결과적으로 이 문건이 의도했던 방향대로 진행됐다.

당시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활용을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하자 전국 대학 경영, 경제학과 교수 100명은 ‘공동성명’을 통해 현 정부의 재벌, 금융개혁 기조가 후퇴하고 있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반면 대기업 계열 민간경제연구소에서는 ‘금산(금융과 산업) 분리’에 따른 부작용과 폐해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앞다퉈 내놓았다.

경제지들은 주기적으로 금산분리법의 부당성에 대해 기사나 칼럼을 실었고 종합일간지들도 뒤따랐다. 국내 산업자본에 대한 역차별, 외국계 중심의 시중은행들에 대한 문제점, 반기업 정서로 인한 기업들의 위축 등이 주된 논조였다.

‘금산분리 완화’ 대통령 공약 채택으로 이명박 후보와 삼성 연대고리 형성

삼성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정 금산법은 2007년 1월 공포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금산분리완화’에 대해 보수층으로부터 여론의 지지를 형성하는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금산분리완화를 대통령 후보 공약으로 채택이다. 당시 대통령 후보로서는 유일하게 금산분리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명박 후보는 2007년 5월 처음으로 ‘국내 산업자본도 은행 등 금융산업의 소유 및 경영에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에 대해 점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금산분리완화를 통한 재벌의 은행소유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당시 정치권에선 ‘삼성공화국’ 후보로 낙점받기 위한 정치적 ‘커밍아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었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금산분리완화 공약 채택은 삼성과 이명박 후보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과 한나라당, 그리고 이명박 후보간의 암묵적인 연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공고해졌다. 그 중심에는 삼성에게 있어 가장 핵심적인 이해관계인 금산분리완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삼성, 김용철 삼성비자금 폭로과 특검으로 이명박 후보에 올인

2007년 10월 터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와 이어진 ‘삼성특검’으로 삼성은 다시 곤경에 빠지는 듯했다. 연일 터져나오는 삼성의 전방위 로비실태와 ‘떡값’시비로 인해 삼성은 다시 곤경에 빠지는 듯 했다. 대선정국과 맞물려 다시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이 사건은 삼성이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게 올인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했다. ‘삼성 특검’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이명박 후보의 대통령 당선과 한나라당으로의 정권교체 외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삼성의 올인 전략은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명박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삼성의 위기를 한꺼번에 날려버리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삼성특검의 무력화는 자연스럽게 진행됐을 뿐 아니라 삼성의 염원인 금산분리완화와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이 가능해진 것이다.

취임 한달만에 금산분리완화 추진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1달째인 2008년 3월 31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금산분리 완화방안’을 추진한다. 당시 금융위는 ‘3단계에 걸쳐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단계는 연기금과 PEF(사모펀드)의 은행 인수를 허용함과 동시에 PEF의 경우 산업자본의 출자 비율을 10% 이내에서 15~20%로 확대한다는 것이고, 2단계에 산업자본의 은행의결권 지분보유 한도를 10%로 상향조정하고 3단계에는 금산분리 규제를 완전히 철폐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달 30일에 통과된 은행법과 부결된 금융지주회사법은 1,2단계에 해당하는 법안이었다.
산업자본의 은행의결권 지분보유 한도는 9%로 10%보다 낮게 됐지만 1단계에 해당하는 PEF를 통한 은행인수 허용부분은 산업자본의 출자비율을 36%까지 개별산업자본은 18%까지 대폭 상향시켰다. 사실상 재벌들이 우호적인 자본을 끌여들일 경우 은행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등 시중은행들의 현재 최대주주 지분이 10%를 넘지 않은 상태임을 감안할 경우 국내 재벌들의 은행 소유의 길을 터준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해준 재계에 대한 선물로 볼 수 있다.

삼성, 공정거래법 개정시 금융지주회사 전환없이 금융자회사 보유 가능

삼성에 대한 선물은 따로 있다. 삼성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고도 금융자회사를 보유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이는 공정거래법 개정이다. 금산분리완화가 보다 확대되는 것으로서 일반지주회사에 대한 금산분리를 완하하는 것으로 6월에 국회에서 심의할 예정이다.

이 법안은 금융지주회사법 보다 더 삼성에게 유리한 법이다. 이 법은 비은행지주회사에 금융, 비금융자회사를 동시지배하게 허용하는 것이 골자이다. 이 경우 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 없이 일반지주회사로서 그룹의 경영지배권을 제대로 확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6월 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는 삼성이 그룹의 지배구도를 안정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금융지주회사법은 삼성그룹의 염원이던 은행업 진출까지 가능하게 한 것이다. 최근 산업은행 민영화와 관련하여 산업은행에 대한 삼성의 인수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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