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주년 세계 여성의 날, ‘성평등 사회’ 한 목소리
‘미투’ 이후 강력해진 성폭력 대응
‘공감’과 ‘연대’로 더 큰 변화 만들어야

1908년 미국 여성 시위
▲ 1908년 미국 여성 시위

 

[폴리뉴스 이지혜 기자] 111주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각계각층에서 여성인권 신장과 성평등 사회 실현에 대한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UN은 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매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했다.

1908년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동료들을 기리며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빵’은 여성 또는 노동자의 ‘생존권’으로 근로여건 개선을 포함하고, ‘장미’는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 보장’을 뜻한다. 한국은 지난해 이 날을 공식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지난 2018년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큰 힘을 가졌던 해였다. 여성들은 일상 속의 차별과, ‘여성주의’에 눈떴다. 예스24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한해동안 출간된 페미니즘 관련도서는 114종으로 최근 3년 동안 가장 높았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밀리언셀러가 됐다. 

서지현 검사가 촉발시킨 국내 ‘미투(Me Too)운동’을 비롯해 웹하드 카르텔을 비롯한 불법촬영, 여성혐오 범죄, 낙태죄 폐지 등이 주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미온적이었던 성폭력·가정폭력 대응에 분노하고 일상 곳곳에 숨어있던 차별들을 드러냈다. 

분노로 그치지 않았다. 여성들은 시위에 나섰고, SNS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으며, #위드유(WithYou)로 연대했다. 합쳐져 공명한 목소리는 분명 사회에 닿았고, 조금씩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다.

7일 대전 여성단체 연합 등 시민단체와 정당 관계자들이 대전시청앞에서 여성의 권리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7일 대전 여성단체 연합 등 시민단체와 정당 관계자들이 대전시청앞에서 여성의 권리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폭력적인 사회를 바꾸겠다는 강력한 선언, #미투

작년 1월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과 인사 불이익에 대해 폭로하면서 국내 ‘미투운동’이 촉발됐다. 안 전 검사장은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후 안희정 전 충남지사, 이윤택 연출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 등 각계각층에서 권력자의 성폭력이 폭로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오늘 보도자료를 통해 ‘미투운동’에 대한 설문통계자료를 제시했다. 전국에 거주하는 만 19세~59세 성인 남녀 2012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미투운동을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가 70.5%로 나타났다. 

또 60% 이상이 과거에 자신이 했거나 주변인들로부터 들은 말 또는 행동이 성희롱‧성폭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연구원은 “미투운동이 국민 성인지 감수성 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관계부처 합동의 ‘범정부협의체’를 구성해 다양한 방식으로 성폭력 대응에 나서는 중이다. ‘체육계 성폭력’ 근절대책을 마련하고 상담창구를 넓혔다. 

최근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대검찰청을 포함한 9개 관계부처와 공동으로 ‘물뽕(GHB)’을 포함한 불범 마약류 공동대응에 나선다고 밝혔다. 관세청은 GHB 밀수입을 막기위해 탐지장치를 기존보다 5배 이상 확대하여 보급한다. 

처벌 수위도 강화됐다. ‘체육계 미투’ 이후 정부는 “체육 단체·협회·구단 등 관계자가 성폭력 사건을 은폐·축소하는 경우 최대 징역형까지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성폭력으로 벌금형 이상을 확정받은 공무원은 즉시 퇴출된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대응도 논의됐다. 지자체는 공중화장실과 탈의실 ‘몰카’ 단속에 나섰다. 

관련 법안 개정도 진행됐다. 자신의 신체를 촬영한 촬영물을 촬영대상자의 동의없이 유포한 경우에도 처벌이 가능해졌으며, ‘불법촬영 행위’, ‘불법촬영물 유포행위’, ‘동의하에 촬영했으나 이후 촬영대상의 의사에 반하여 유포한 행위’를 모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을 강화했다. 

정부는 1월 국정현안조정회의에서 ‘웹하드 카르텔 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불법음란물 모니터링 대상을 모바일 웹하드까지 확대하고, 웹하드 업체와 헤비업로더, 광고주, 필터링업체와 디지털장의업체에 대해 웹하드 카르텔이 근절될 때까지 집중 단속을 실시한다. 

또 정부는 ‘방통위법’과 ‘정보통신망법’ 등에 의거 96개 불법 음란사이트를 접속 차단했다. 


학생이 바뀌었다, 학교가 바뀐다

8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창문에 스쿨미투 운동 참여 학생과 교직원을 향한 응원메세지가 붙어있다 <사진=서울시 교육청 제공>
▲ 8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창문에 스쿨미투 운동 참여 학생과 교직원을 향한 응원메세지가 붙어있다 <사진=서울시 교육청 제공>

 

학생들은 ‘스쿨미투’라는 이름으로 교사들의 성폭력 고발에 나섰다. 교육부는 ‘스쿨미투’ 대응매뉴얼을 만들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혐의가 입증된 교사들을 중징계했다. 전문 상담교사 총 정원을 20%이상 충원하고 2차 피해를 방지하는 등의 노력도 시작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스쿨 미투’전담팀을 만들고 시민조사관을 참여시켰다. 학교내 성폭력 사안 조사는 물론 후속관찰과 2차 가해 방지까지 진행한다. 울산시교육청은 장학사 4인, 전문상담사와 변호사가 포함된 ‘성인지 교육팀’을 신설하고 적극적 대응 및 교육에 나섰다. 

인권위는 ‘2018 초·중등 교과서 모니터링 결과발표 및 토론회’를 통해 ‘여성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여성을 주로 ‘집안일’하는 사람으로 그리는 내용이 여전하다고 발표했다. ‘축구하는 남자’, ‘무용하는 여자’ 등 활동에 대한 고정관념도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여성가족부는 교육부와 협의해 이러한 성차별 표현을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성차별적 교훈과 교가에 대한 불만도 뜨겁다. 일부 여학교들에서는 ‘착한 딸, 어진 어머니’ ‘부덕(부녀자의 덕)을 높이자’ 등의 교훈이 버젓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요구에 따라 50년 이상 써온 이 교훈들을 바꾸는 학교들이 늘고 있다. 

한 여고는 ‘순결,성실,겸양’이란 교훈을 ‘창의적인 생각, 책임있는 행동, 꿈을 향한 열정’으로 바꿨다. 또 다른 학교는 5개월간의 의견수렴을 거쳐 ‘맑은 마음, 착한 행실, 고운 몸매’를 ‘맑은 마음, 밝은 지혜, 바른 행동’으로 변경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교과서 속 여성독립운동가들 또한 재조명되고 있다. 작년 10월 김현아 국회의원은 ‘2018년 교과서 기준 독립운동가 수록현황’을 분석한 결과 여성 독립운동가 및 근현대사 인물은 16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지난달 8일 항일독립운동여성상 제막 행사에 참여해 역사 속에서 소외됐던 항일독립여성운동가들의 재평가 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에게 일할 권리를, 노동계 변화 

8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기념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여성참여 50%'라고 적힌 스카프를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 8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기념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여성참여 50%'라고 적힌 스카프를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201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최초로 행정부 여성공무원의 비중이 절반이 넘었다. 지난해 말 기준 행정부 국가직 여성공무원수는 전체의 50.2%인 32만 9808명을 기록했다. 이외 지자체 공무원의 비율에도 ‘여풍(女風)’이 불고 있다. 

경기도는 워킹맘을 위해 전문가 지원단 10명을 구성하여 고민상담이나 커리어코칭, 자녀양육과 마음코칭 등 4개 분야에서 집중 상담을 상시 진행한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달 ‘유리천장’을 깬 여성임원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진 장관은 “자발적인 (여성 임원) 비율제를 우선하려고 한다”면서 “(여성 임원 할당제)를 병행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여성 임원들은 진 장관에게 육아휴직 확대,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 확충, 재택 근무 활성화 등을 건의했다. 

원희룡 제주 지사 역시 ‘세계 여성의 날’을 만나 여성 공직자들을 만나면서 “여성 대표성 강화를 위해 5급 이상 공무원 여성 관리직 비율을 올리는 균형인사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경력단절여성에 대한 지원도 확대했다. 여성가족부는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15개소에서 30개로 늘릴 예정이며, 취업상담 뿐만 아니라 고충·노무 상담과 직장문화 컨설팅을 지원한다. 지자체는 경력단절 여성에게 콘텐츠메이킹 등의 교육 양성과정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에겐 빵과 장미가 필요하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뿐이다. 아직 ‘성평등’에 도달하려면 갈 길이 멀다. 세계 경제포럼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의 성평등 순위는 149개 나라중 115위다. 

‘성폭력’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성 연예인을 성적 수단으로 사용했던 ‘장자연 리스트’사건은 아직도 명확하게 풀리지 않았고, ‘클럽 버닝썬’을 비롯한 강남 클럽들에서 ‘레이디 킬러’라고 불리는 GHB를 이용해 여성들을 강간해왔다는 의혹이 짙다. ‘김학의 성접대 의혹’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전체적으로 상승해왔지만 30대에 접어들면 참가율이 무섭게 떨어진다. 2018년 10월 기준, 20~24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4%, 25~29세 여성의 참가율은 77.3이었다. 이는 같은 나이대의 남성보다 높은 수치다. 하지만 35~39세가 되면, 여성의 참가율은 60.3%로 급감한다. 같은 나이대의 남성 참가율이 93.6%인것과 대조적이다. 

결혼 및 출산으로 인해 경력 단절 및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남녀임금격차는 2017년 기준 36.7%로 OECD 국가 중 15년 연속 1위다.

끊임없는 ‘젠더 갈등’과 ‘혐오발언’들도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019 3.8여성선언을 통해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성평등 사회를 위한 여성들의 용기와 열망은 서로 연결되어 더욱 강하게 타오르고 있다”며 “‘미투’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근절되고, 성평등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그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성평등 사회’를 향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여성은 공감과 연대를 무기로 남성 중심의 인류사회에서 ‘최후의 식민지’라는 굴레를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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