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100일에도 끌려가나?

지난달 2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고흥길 위원장의 미디어법 직권상정 시도로 촉발된 이른바 2차 입법 전쟁.

정확히 5일이 지난 2일 민주당은 사실상 백기 항복을 한 셈이 됐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2일 오후 양당 대표 회동을 통해 방송법 , 신문법, IPTV법 등 미디어법 처리와 관련해 국회 문방위 산하에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 100일간 논의한 뒤 ‘표결처리’하는 방안에 타결했다.

이 타결안은 전날인 1일 김형오 국회의장의 주재로 열린 3당 교섭단체 회동에서 한나라당이 양보할 수 없다고 주장했던 안으로써 한나라당의 의지가 그대로 반영된 타결안이다.

애초 국회 의장 중재안은 방송법, 신문법, IPTV법, 정보통신망법 등 4개 미디어 법안에 대해 사회적 논의 기구를 만들어 4개월간 논의 후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안이었다.

하지만, 2일 여야 당 대표 회동결과 4개월 논의는 100일로 줄었으며, 국회법 절차는 표결처리로 바꼈다.

사회적 논의 기구 설치도 민주당은 당 대표 신년기자회견과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원외에서 구성할 것을 애초 제안했으나, 한나라당의 반대로 원내에 설치하는 안으로 한 발 양보했다.

2차 입법전쟁을 치르면서 민주당의 무기력한 모습은 곳곳에서 노출됐었다.

지난 25일 국회 문방위에서 기습 날치기 직권상정시도를 당했음에도 바로 다음날인 26일 국회 국토해양위에서도 이병석 위원장의 직권상정 시도 뒤통수를 맞아야 했다.

당시 민주당 문방위와 국토위 관계자들은 한나라당의 연이은 직권상정 시도에 대해 “이럴 줄 몰랐다”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지난 27일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여야 합의에 의해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 30건, 법사위에서 심사 중인 법안 97건 등 민생법안 100건을 본회의에 상정할 것이라며 본회의 개최를 촉구했으나 김형오 의장은 일방적으로 본회의 일정을 취소했다.

2일 오전 예정된 의장 주재 3당 교섭단체 대표 회동은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최고위원, 김 의장 간의 회동으로 일방적으로 취소되면서 민주당은 협상 타결의 실마리를 원천적으로 상실 당했다.

2일 오전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국회 방문은 민주당에 결정타를 날렸다.

박 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많이 양보한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사실상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줬던 것이다.

김 의장이 미디어법을 비롯한 쟁점법안을 직권상정해도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친박의원들의 암묵적인 지지가 없으면 본회의 표결이 부결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으로써는 절호의 찬스를 잡은 셈이다.

현재 국회 재적의원 수는 295명이고 한나라당 의원 수가 171명이지만, 국회 의결정족수는 재적의원의 절반인 148명으로 한나라당 내 親박근혜계 의원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속수무책일 뿐이었다. 민주당 당직자들은 국회 경위대에 둘러싸인 본청 진입 시도할 뿐이었고, 당 지도부 역시 김 의장의 직권상정 가능성을 막을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굴욕적인 여야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언론노조 총파업 동력마저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는 1일 정부여당이 날치기 직권상정 처리하면 이명박 정권 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파국으로 치닫던 2차 입법전쟁은 1일 새벽 의장 중재안이 나오면서 민주당이 승기를 잡는 듯 했으나, 민주당은 다음날인 2일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에 굴복해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대로 ‘표결처리’안을 전격 제안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2차 입법전쟁에서 민주당은 방송법 개정안, 신문법 개정안, IPTV법 등 미디어법과 관련해 어느 하나 저지하지 못한 꼴이 됐다.

100일이라는 시간을 번 것이 일말의 소득이라면 소득이겠다.

남은 100일을 여전히 한나라당에 이끌려 국민에게 실망과 좌절만을 안겨줄 요량이면, 아예 이제부터라도 방송장악 저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삭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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