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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칼럼] ‘손혜원 죽이기’ 음모론이라는 유령

세계 곳곳에 출몰했던 음모론을 분석한 작가 톄거의 『대중은 왜 음모론에 끌리는가』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음모론자들의 논리대로라면, 가령 어느 해 한 도시의 사망률이 예년보다 훨씬 많다면 사람들의 죽음 뒤에 장의사들의 음모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우스개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역사에 등장했던 음모론을 돌아보면 그런 비유가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유대인들이 모여 세계정복을 모의했다는 「시온 의정서」라는 조작된 문서가 출판된 이후 나치는 그것을 구실로 유대인 6백만명을 학살했다. 괴벨스는 이 「시온 의정서」에 대해 “지금도 처음 출간되었을 때처럼 신선하다”고 격찬했다. 그에게 「시온 의정서」에 담긴 음모론은 유대 민족을 절멸시키기 위한 가장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명분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음모론은 학살의 무기로, 죄악의 핑계로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 음모론자들은 상대를 악마화시키고 낙인찍음으로써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 한다.

최근 손혜원 의원과 관련된 SBS보도에 대해 음모론이 난무했다. SBS의 ‘손혜원 죽이기’ 보도에 배후가 있다는 얘기였다. 처음에는 SBS 대주주인 태영건설이 등장했다. ‘태영건설이 목포에 고층 아파트를 지으려다 손혜원 의원 때문에 실패하니 SBS를 동원해서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내 근거 없음이 확인되었다. 정권의 눈치를 봐야할 태영건설이 무모하게도 집권여당 소속, 그것도 대통령 부인과 절친인 국회의원의 의혹 보도를 사주했다는 것은 애당초 터무니없는 주장이었다. 태영건설은 목포와 아무 관련이 없었고 서산 온금지구 조선내화 부지 아파트 건설을 맡은 것은 지역 건설사인 중흥건설임이 확인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중흥건설이 SBS에 제보해 보도하게 했다’는 음모론이 재등장했다.

그런데 지지자들이 유포시킨 음모론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핀 것은 손혜원 의원 본인이었다. 손 의원은 “SBS, 중흥건설, 조합 관련자들, 그리고 박지원 의원님 검찰조사 꼭 같이 받읍시다”라며 이들이 조선내화 부지에 아파트를 지으려 했던 세력으로, SBS보도의 제보자인 듯이 몰아갔다. SBS야 보도 당사자니까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 쳐도, 다른 사람들은 무슨 죄로 함께 검찰에 가야 한다는 것인지, 아무런 사실도 제시되지 못했다. 중흥건설이나 조합이 이번 보도에 관련되었다는 어떤 내용도 드러난 것은 아직 없다. 느닷없이 호출된 박지원 의원의 경우도 2017년에 서산 온금지구 재개발 사업 추진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째서 손 의원이 이들과 검찰조사를 같이 받자고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일단은 음모론의 프레임을 작동시킴으로써 자신이 불의한 세력으로부터 박해당하고 있음을 부각시키려는 구도인 것으로 해석된다.

손 의원이 목포 구도심에서 수십 채의 건물을 매집하고 국회의원으로서 그 곳에 대한 정부 지원을 요구해온 것이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인지는 앞으로 가려질 일이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자신이 불을 지핀 음모론의 실체에 대해서는 보다 책임있는 입장이 필요하다. 자신과 함께 검찰조사를 받자고 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번 보도에 배후로 작용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이 최소한의 책임일 것이다.

캐스 선스타인은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라는 책에서 미국사회에 음모론이 횡행하는 이유를 분석하며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가 우리의 가장 확고한 신념을 부정하면, 우리는 보통 그 신념에 더욱더 강하게 집착하는 식으로 반응한다.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 한 가지 이유는 우리에게 동기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깊이 믿게 되면 자연히 정서적으로 강한 애착을 갖게 되고, 그 믿음이 공격을 당하면 더욱 열렬히 거기에 매달리게 된다.”

음모론이 기본적인 사실 요건조차 갖추지도 못했음에도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음모론은 진영논리와 더 없는 파트너이다. 음모론은 ‘사실’ 보다 ‘신념’을 우선하는 사람들을 자극한다. 상대를 음모세력의 하수인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음모세력에 대한 우리 진영의 분노를 자극하며 궐기할 것을 호소한다. 그 배후세력이 실존하는가라는 실체적 진실 보다는 ‘내 편’과 ‘네 편’의 대결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만이 남게 된다. 그래서 이제 관심은 다른 곳으로 전환되는데 성공한다. 손 의원이 지인들에게 목포 부동산 매입을 권유한 건 이익 충돌 금지 규정과 상충되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아니라면서도,  “문체위나 문화재청에 (도시재생과 관련한) 그런 얘기를 수없이 했지만 움직이질 않았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태연히 할 수 있는 무모함도 그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합리적 이성이 이끄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음모론의 영향력이 거세되어야 한다. 그런데 막상 음모론을 상대하는 것은 무척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음모론을 제기한 쪽이 아니라, 졸지에 악마로 낙인찍힌 쪽이 음모가 아님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게 진영대결의 한복판에 서게 된 SBS는 자신들의 보도에 배후가 없음을, 그리고 음모가 아님을 설명하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다른 언론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저러니 우리는 앞으로 조심하자. 이번 사태가 남기는 교훈이 만약 그런 것이 된다면 우리 언론은 자기 검열의 늪에 갇히게 될 것이다. 죽은 권력 뿐 아니라, 잘못이 있다면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서도 과감히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회, 그것이 그 추운 겨울에 우리가 촛불을 들고 만들고자 했던 사회가 아니었던가.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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