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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 이해찬②

92년 통합민주당 창당과 14대 대선...95년 서울시장선거와 국민회의 창당

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을 시작하며...

시대가 변하고,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크게 고양되고 있음에도, 또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한국의 정당은 과거의 틀과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크게 변하지 않은 듯 합니다.

대의정치체로서 정당의 본질적 임무인 민의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시대를 앞서가는 지도력은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정당의 현실입니다.

지금 이대로의 정당체제라면 앞으로의 한국 정치의 미래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이에 무엇보다 최우선 할 것이 과거를 정확히 되짚어보는 일일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찾는 단서를 찾고자 합니다.

<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는 기존 자료의 재정리 방식이 아니라 한국정당을 이끌어 오신 정치지도자와 주역들로부터 당시의 <생생한 동영상 증언> 방식입니다.

60여년의 한국정당사 전체를 살아있는 정당주역들로부터 듣는 ‘증언록’으로 정리하겠다는 것은 아직 어디에서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야심찬 기획입니다.

한국정당사를 정리하는데 있어서 이념노선, 정책, 인물, 리더십, 정체성, 지역성, 파벌성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정당의 본질은 다름 아닌 ‘민의’를 대변하는 대의정치라는 점에서 과연 과거 정당들이 그 시대 민의를 제대로 대변했는지, 또 어떻게 민의를 억압, 왜곡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이슈별로 인터뷰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또한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 정치적 진실도 증언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폴리뉴스
<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의 첫번째 인터뷰 인물은 이해찬 전 총리다.

재야운동을 이끌었던 그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평민당으로 출마해 원내 진출에 성공한 후 17대까지 5회 연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지역주의 정치가 활개를 치던 13, 14, 15, 16대 대선은 물론 이어진 총선들에서 당의 선거기획책임자를 맡았던 그는 지역주의 정치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책임총리를 맡는 등 우리 정당사를 반추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와의 인터뷰는 김능구 본지 발행인과의 대담 형식으로 4시간 여 동안 진행됐다. 기사는 총 4회로 나뉘어 게재할 예정이며 ①편에서는 1987년 13대대선 후보단일화, 1988년 민평련 결성과 평민당 입당 얘기를 시작으로 1990년 3당합당 당시 평민당 입장을, ②편에서는 14대 대선, 1992년 통합민주당 창당 과정과 1994년 서울시장선거, 1995년 민주당 분열 및 국민회의 창당과정을, ③편에서는 1997년 15대 대선 및 집권 과정,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과정을, ④편에서는 16대 대선 그리고 참여정부 얘기를 전할 예정이다.

인터뷰 게재가 완료되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인터뷰 전문과 동영상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해찬 전 총리 인터뷰 전문 및 동영상


공멸 위기 속 야권 통합, 통합민주당 탄생...원내 분포 67:8임에도 1:1 통합

90년 1월 3당합당으로 국회 원 구성이 여대야소로 바뀌면서 어려움에 처한 평민당은 91년 4월 신민주연합당(신민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91년 6월에 있었던 시·도 지방의회선거에서 야당이 참패하면서 야권통합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같은 해 9월 10일 3당 합당을 반대하며 민주당 잔류파(꼬마민주당) 인 이기택, 노무현, 유인태, 김정길 등 5명과 무소속이던 이부영, 이철, 홍사덕 등이 신민당에 합류하면서 김대중과 이기택 공동대표체제를 구축했다.

당명을 통합민주당(민주당)으로 바꾼 후인 92년에 열린 제14대국회의원선거(92년3월24일)에서 통합민주당은 97석을 얻어 제1야당이 됐다.

이와 관련해 이 전 총리는 이렇게 회고했다.

"92년 이제 총선과 대선을 치러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가지고는 명분도 그렇고 세력도 약하잖습니까. 70몇 석밖에 안되니까 그리고 이제 3당 합당에 합류하지 않은 이기택이라든가 의원들 있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을 그럼 통합을 해서 새 당을 만들자 해서 그때 신민당인가 하는 걸 새로 만들었죠"

"그때 (통합)할 때 지분을 아예 반을 주는 걸 만든 거 아닙니까. 이기택 대표를 공동대표로 하고 후보는 김대중 총재를 나중에 후보로 하지만 당에 관한 권한은 이기택 대표한테 반을 주는 걸로 했거든요"

14대 대선 지역주의 더 심해져...‘초원복집 도청사건’은 공작, 결정적 패인

92년 12월 18일 치러진 제14대 대통령선거애서 김영삼 총재가 대통령에 당선됐고 다음 날 김대중 총재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14대 대선에는 김영삼·김대중·정주영·박찬종·이병호·김옥선·백기완 등이 출마해 김영삼 42.0%, 김대중 33.8%, 정주영 16%, 박찬종 6%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백기완·김옥선·이병호 후보 순으로 그 뒤를 이었다.

14대 대선에서 당 대선기획단장, 기조위원장, 선거기획단장을 맡았던 이 전 총리는 초원복집 도청사건이 터지면서 DJ가 이번 선거에서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초원복집 도청사건을 공작이라고 단언했다. 500만표를 얻을 것으로 예상됐던 정주영 후보가 이 사건이 터지면서 388만표밖에 얻지 못했고 결국 이것이 패인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관련해 "도청한 것을 가지고 말하자면 그걸 역공을 한 거 아닙니까. 역공을 할 때, 말하자면 그 사안이 당시 보도를 보면 기억하겠지만 굉장히 정몽준이가 잘못한 걸로 보도한 거 아닙니까. 그게 지역주의를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계기로 써먹은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공작이죠. 그거는..."이라고 단언했다.

이와 함께 3당 합당으로 인해 TK와 호남 간 지역주의가 영남대 호남구도로 확장된 것도 패인으로 분석했다.

그는 "옛날에는 TK와 호남 간의 지역주의였지 않습니까? 오히려 경남, 부산은 그런 지역주의가 강하지가 않았었거든요"라고 설명하며 "3당 합당이 돼버리니까 영남 대 호남으로 지역주의가 더 강화돼버린 겁니다"고 상황설명을 한 뒤 “여론조사 해보는데 도저히 안 되는 거여요. 이 차이가 우리는 이제 YS가 3당 합당 했으면 영남의 개혁세력은 그래도 DJ를 찍을 줄 알았는데 안 되는 거여요 그게. 자기지역에서 대통령을 내야 된다는 그 지역주의 때문에 영남의 민주개혁적인 세력들이 전혀, 말하자면은 우리 쪽으로 오지 않는 거여요”라고 지역주의 때문에 영남 개혁세력이 민주당 표로 넘어오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여론조사를 해보니까 표차이가 100만 표 훨씬 이상 한 150만표 정도 차이가 나는데 단독으론 이겨볼 수가 없는 그런 상황이었죠. 선거를 끝까지 이제 끌고 가는데 정주영후보가 중간에 선전을 했었어요. 한 500만표까지 올라왔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초원복집사건을 일으킨 거 아닙니까. 그래서 두들겨 잡아가지고 정주영후보가 나중에 400만표를 다 못 얻었죠. 300몇십만표를 얻었는데 그 정도 가지고는 영남의 표가 호남보다 두 배나 많은데 못이기는 거죠"라며 초원복집 도청사건이 선거의 승패를 갈랐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폴리뉴스
95년 서울시장선거, 5% 인지도 민주당 조순 후보 TV토론과 서울포청천으로 승기 잡아

대선 이후 민주당은 1993년 3월 11일 전당대회에서 이기택 단일 대표체제로 전환하고 95년 6.27 지방선거에서 수도권과 호남 등에서 민자당에 압승을 거두었다. 사실상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의 역할이 컸다. 지방선거의 승리는 김대중에게는 공식적인 정계복귀의 명분을 주었지만 민주당은 분당의 나락에 빠지게 된다.

민주당 조순, 무소속 박찬종, 민자당 정원식 후보 간의 3파전이 벌어진 6.27 서울시장 선거는 최대 관심사였고 이 선거의 승리로 이 전 총리는 일약 스타 반열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95년 서울시장 선거가 97년 대선에서 이뤄진 DJP연대의 시험대였다’ 지적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당시 서울시장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4.19이후에 야당이 처음으로 행정을 맡아보는 첫 번째 기회가 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처음에는 박찬종 후보가 훨씬 앞서갔었습니다. 2등을 정원식 후보가 하고 조순 후보가 3등을 했었죠. 처음에는. 그걸 이제 박찬종 후보는 무소속이라는 조직적 기반이 약한 점이 있는데다가 선거과정에서 유신찬양문제 가지고 거짓말을 하다가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그게 노출됐잖아요. 그래서 막판에 이제 무너져버렸죠"

"정원식 후보는 별로 표를 못 얻었어요. 한나라당 후보였는데. 박찬종후보가 상당히 한나라당 표까지도 많이 가져갔었어요. 그랬다가 나중에 무너지는 바람에 조순후보가 당선이 됐죠"

이 전 총리는 후보 출마 당시 5%대의 인지도에 불과한 조순 후보에 대한 특별한 선거전략으로 TV토론을 성사시킨 것과 함께 선거 브랜드로 ''서울포청천''을 만든 것을 꼽았다.

그는 "인지도가 조순 시장후보가 한은총재도 하고 경제기획원 장관도 하고 서울대 유명한 경제학교수인데 처음에 인지도가 한 5%밖에 안 됐어요. 5% 갖고는 뭐 선거가 안 되는 거죠"라고 설명하면서 "텔레비전토론을 많이 하는 길밖에는 없는 거여요. 박찬종후보가 자기가 말을 잘하니까 자신 있어 했고 후보 간 합의로 성사됐다"고 TV토론 성사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MBC, KBS, SBS 한번씩 하고 KBS인가 MBC 한 번씩 더했나요? 다섯 번인가를 하니까 인지도가 쑥쑥 올라가는 거여요"라며 만족스런 표정으로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그는 "또 하나 성공한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서울포청천이라는 일종의 선거브랜드를 만든 거죠. 그 당시 이제 서울시가 복마전이라는 그런 인상을 많이 받고 있을 때인데 마침 포청천이라는 중국사극드라마가 그 당시에 시청률이 높았던 거 해가지고 그걸 연상시켜서 서울포청천이라는 브랜드를 우리가 만든 거죠. 그렇게 해서 그게 상당히 효과를 보는 아주 선전홍보수단이었었어요. 그래서 인지도가 선거 끝날 때 가서는 뭐 거의 90%가 됐으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때가 DJP연대 시험대였다고 하는데 맞나?’라는 질문에 “아니요. 그 DJP는 그 뒤고”라고 부인했다. 세간의 지적과는 다른 의견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내용적으로 충청표를 잡을 수 있는 것 아니었나?’라는 추가 질문에 “그거는 아니고 왜냐면 조순후보가 강원도 사람이거든요. 강원도 사람이라서 그때 충청표가 움직이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때는 오히려 지역에 관한 투표성향은 강하지가 않았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서울은 어차피 여러 가지 지역에서 같이 어울려 사는 지역이고 호남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이제 그렇게 강한 지역성은 별로 없었고 오히려 조순시장이 당선된 것은 젊은 표들이 나중에 박찬종이 쪽에서 이쪽으로 이동을 했어요. 처음에는 박찬종으로 모여 있다가”라고 분석했다.

민자당은 95년 6.27 지방선거에서의 패배와 노 전 대통령의 구속 등으로 12월에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꿨다.

6.27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하며 사실상 정치 활동을 재계한 김대중은 7월 18일 공식적으로 정계에 복귀를 선언한 후 민주당 내에 있던 자신의 계파를 이끌고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를 창당, 원내 53석을 차지하는 제1야당이 됐고 민주당은 원내 30석의 제2야당이 되고 말았다. 그 해 12월 16일 민주당은 재야 중심의 개혁신당과 합당, 통합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한편, 민주자유당 내의 민주계를 중심으로 한 여권 핵심부가 1994년 말부터 공화계의 김종필 대표 2선 퇴진을 요구하는 운동을 본격화하자 김종필은 1995년 2월 공화계의 동조세력을 이끌고 탈당해 3월 30일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다.

이기택 체제로 96년 총선, 대선 승리 어려워 국민회의 창당 결정, ‘노무현, 김원기 반대’

이 전 총리는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배경에 대해 95년 서울시장 후보 추천에서도 이기택 민주당 대표와의 갈등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조순시장을 영입해서 시장후보로 만들어서 추진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거든요. 그때 이제 은퇴했을 때지만 지방선거가 원체 중요하니까 좋은 사람을 영입해서 해야 되겠다 해서 당내에서 홍사덕, 조세형, 세 분이 경선을 했어요. 경선을 해서 조순 후보가 당선돼서 나갔지 않습니까. 그때 이기택 대표는 굉장히 싫어했어요. 조순후보를 내보내는 데 대해서. 그리고 당선되면 자기가 굉장히 부담스럽게 생각을 하고 선거에 협조를 잘 안했죠”라고 말했다. 주류와 비주류 간의 갈등이 정점에 도달했다는 지적이다.

이어 “96년 총선이 다가오는데 지분을 아까 말한 것처럼 김대중 대표는 은퇴를 했잖아요. 그러니까 사실상 이기택 대표 지분으로 다 넘어간 거여요. 당이. 최고위원들 있긴 하지만 여러 명 최고위원들 있으니까 당대표는 이기택 대표니까. 그래서 지방선거 끝나고 나서 7월인가요? 7월쯤에 DJ가 이제 앞으로 진로를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걸 가지고 이제 중진들하고 협의를 했어요”라며 얘기를 풀어갔다.

이 전 총리는 “협의를 하면서 이기택 대표 체제로 계속 당을 그냥 넘겨줄 것이냐, 아니면 총선, 대선을 96년도에 치러야 되니까 당을 새로 만들어서 할 것이냐를 가지고 논의를 여러 차례 했지요. 여러 차례 해서 도저히 이 대표 가지고서는 대선이 안치러진다, 그리고 총선도 어렵다, 그러니까 그렇다고 이 대표를 전당대회 통해서 바꿀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그러니까 도저히 그렇게 안 되니까 그럼 따로 당을 만들자, 이렇게 이제 거기서 견해차이가 생겼어요. 그러니까 저하고 임채정 의장 뭐 이런 사람들은 당을 따로 만드는 길밖에 없겠다는 그런 입장을 가졌었고 노무현 의원하고 김원기 이런 몇 분들은 분당을 하면 안 된다는 견해차이가 나눠졌어요”라고 밝혔다. 분당을 두고 상당한 내홍이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의 설명은 95년 지방선거 승리 후인 7월경, 동교동계 중진들과 DJ는 향후 진로를 논의하던 중 이기택 대표 체제로는 96년 총선과 대선을 치루면 승산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후 창당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세간의 지적과 일치한다.

이로서 정계는 1여3야(신한국당, 새정치국민회의, 통합민주당, 자유민주연합)의 구도로 다시 재편됐고 정치권은 96년 총선과 대선 준비로 숨가쁘게 돌아가게 된다. <③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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