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변화만 기다리다간 남북 모두 큰 손해

2009년에도 남북관계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장기 경색국면에서 남과 북은 한 치의 양보 없는 기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끈이 망실된 상황에서 북한은 군복 입은 현역군인이 나와 결전의 의지를 역설하고 있다. 조그만 갈등도 큰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북한의 대미 관심 끌기와 대남 압박 전략이 지나칠 경우 결국은 남북간에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북한이 남한의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 역시 북한의 선변화를 강조하면서 기다림의 전략을 고집하고 있다. 통일부 장관 교체는 남북관계를 해결하고 돌파하기보다 경색 국면을 유지하고 관리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신임장관 하의 통일부는 남북대화에 매달리기보다 근본적인 대북전략 수립에 매진할 가능성이 커졌다. 인수위 시절 폐지 운명에 놓였던 통일부처럼 행여라도 남북관계 자체를 무용한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된다.

그렇잖아도 상호 불신이 커지는 상황에서 신임 통일부 장관이 입안했다는 비핵개방 3000이 다시 정책의 전면에 나선다면 남북관계는 또다시 소모적 대결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 경색, 남북 모두에 큰 불이익 초래

이처럼 한반도 정세불안의 한 복판에 남북관계 악화가 자리잡고 있는 바, 더 큰 문제는 남북관계 경색을 돌파할 수 있는 동력이 남북관계 자체가 아니라 외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자조섞인 분석이다.

어차피 남북관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난망하므로 2009년 오바마 행정부 출범과 이후 북미관계 진전이라는 외적 변화를 계기로 삼아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자는 주장은 남과 북 모두 미국만을 바라보게 하고 있다.

물론 북미관계 진전과 북핵문제 상황이 외적 힘이 되어 남북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 그런 환경이 조성될 경우 우리가 기민하게 잘 대응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외적 변화의 계기를 그저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여전히 남과 북이 스스로 문제를 풀고자 하는 주체적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장기간의 남북관계 경색은 그 누구가 아닌 남과 북 각자에게 큰 불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남, 경제적 리스크와 한반도문제 주도권 상실 우려

우선 남북관계 중단은 한국 정부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을 주는 게 사실이다. 원칙을 갖고 의연히 기다리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공식 입장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의 장기 경색은 당장 한반도의 긴장 상황과 경제적 리스크로 이어진다.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할 시급한 상황에서 남북관계 중단과 북한의 대남 압박은 그 자체로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만약에 있을 북한의 군사 도발은 대외신인도와 외국자본의 투자에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남북관계 중단은 한국에게 경제적 불안정성을 증대시키는 것 말고도 외교적 차원에서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주도적 개입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결코 이명박 정부에 이로울 게 없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 협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남북관계라는 독자적 채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난 김영삼 정부 시기처럼 북미간 양자협상에서 소외될 수 있는 구조에 노출된다.

특히 우리의 사활적 이슈인 북핵문제와 북미관계 정상화 및 평화체제 문제가 북미 양자간에 본격 논의될 때 우리가 한미관계만을 유지하고 남북관계를 상실할 경우 이는 불충분한 논의일 수밖에 없다.

북, 경제적 지원중단과 북미협상 장애 우려

남북관계 단절은 북한에게도 불이익을 제공한다. 당장 남측으로부터 제공될 식량지원과 경제적 지원이 중단됨으로써 북한은 실질적인 물질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올해 신년사설에서 북한은 먹는 문제를 자력갱생으로 풀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남북관계 단절로 인한 식량제공 중단의 어려움을 역으로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관광의 중단으로 현금 지원이 막히고 있는 것도 북에겐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야 하는 북한의 정치적 상황에서 남쪽으로부터 지원되는 경제적 혜택이 장기 중단된다면 당장 가시적인 경제적 손실이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남북관계 중단은 향후 진행될 북미협상에서도 북한에게 불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오히려 남북관계 악화는 북미 협상에서 미국을 압박하는 요인이 아니라 북한을 압박하는 요인이 된다.

북미 협상은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국면에서 오히려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반대로 남북관계 경색은 북미협상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후보시절 외교잡지에 기고한 내용에서도 남북관계 진전이 한반도 정세의 바람직한 방향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만큼, 통미봉남에 따른 남북관계 중단은 오히려 북한이 원하는 미국과의 협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남북간 신경전 1년이면 충분..주체적 경색돌파 요구돼

결국 관계 중단으로 인해 남과 북이 스스로 감수해야 할 불이익과 손실을 고려하면 주체적 노력에 의해 지금의 경색국면을 돌파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명박 정부는 이미 6.15와 10.4 선언의 이행을 협의할 용의가 있음을 반복해서 강조한 바 있는 만큼, 북한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불투명한 발언을 자제하고 남북간 합의사항 이행의지가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는 당당함이 필요하다.

북한 역시 남측 대통령에 대한 실명 비난은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는 북이 주장하는 6.15와 10.4 선언에 명시된 상호 존중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지지하고 남북관계의 진전을 희망하는 측에서도 북한의 실명 비난은 정당한 문제해결의 방식이 아님을 동의하고 있다. 북이 남측에게 6.15와 10.4 선언의 이행을 요구하기 위해선 남측에 대한 과도한 비난을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남북이 서로 신경전을 벌이며 기싸움을 벌이는 것도 1년이면 족하다.

미국 변수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남과 북이 주체가 되어 한발씩 양보하면서 문제해결의 돌파구를 스스로 마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상대가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먼저 노력하는 소의 우직함이 더욱 절실하다.

희망컨대 2009년 1월의 한반도 정세가 남북간 상호 불신과 불필요한 오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각자의 지혜가 발휘되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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