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의 '공작 예언'이 부적절한 이유

움베르토 에코가 쓴 『프라하의 묘지』는 하나의 음모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세상을 뒤흔들게 되는 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할아버지로부터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을 물려받은 ‘시모네 시모니니’는 ‘오디 에르고숨’(나는 증오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라 할 만큼 세상의 모든 것을 증오했다. 그가 특히 증오한 것은 여자였고 예수회 사제들이었고 유대인이었다. 소설은 유대인들이 세상을 지배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신화를 퍼뜨린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이라는 허위 문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내부로 들어가 추적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문서는 후일 히틀러의 손에 들어가 나치에 의한 유대인 박해의 근거로 이용된다.

이 소설은 세상에서 증오와 음모가 어떻게 생겨나고 확산되는 가를 다루고 있다. 에코는 생전에 거짓의 논리를 가려내고 참된 진실이 무엇인가를 찾는데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진실에 관한 관념이 없으면 어떤 것이 거짓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면서 거짓을 가려내는 일이 진실의 논리와 긴밀히 연계되어 있음을 말해왔다.

‘미투’ 운동을 둘러싼 음모론이 느닷없는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김어준은 미투 운동에 대해 얘기하면서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비판이 확산되자 "미투를 공작에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지, 미투가 공작이라고 한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미투 운동을 정파적 이해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피해자들의 고발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식의 ‘예언’이 받아들여진다면, 피해자들은 자신의 고발이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키는 행위가 아닐지 자기검열을 해야 할 것이고, 공작의 결과로 낙인찍혀 신상털이를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미투 운동에서 피해자들의 고통은 뒤로 사라지고 정권에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먼저 계산하는 정치적 셈법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음모론에는 크게 두 가지의 유형이 있다. 첫째는 권력이 자신의 지배 목적을 달성하려고 거짓 음모론을 만들어 사람들을 속이는 경우이다. 유대인들이 세계를 지배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던 나치의 주장이 그런 것이었고, “우물에 조선인이 독을 넣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관동대학살이 그것이었으며, 우리 현대사에서 독재정권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조작사건들이 또한 그런 것이었다.

또 하나는, 자신들의 잘못을 성찰하지 않고 그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음모론이다. 굳이 진영의 잣대를 들이대며 우리 진영의 잘못은 상대의 음모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여 자기 편의 책임을 모면한다. 미투 운동을 음모론과 연결시키는 행위가 그런 것이다. 이는 상대방은 절대악이고, 자신들은 절대선이라는 극단적 이분법의 해악을 낳게 된다. 그러니 자기 진영에 대한 성찰 같은 것은 필요가 없게 된다.

음모론이 횡행하는 사회는 이성이 작동하지 못하는 곳이다. 이성이 이끌어야 할 공론의 장은 만들어지지 못한 채 무책임한 예언과 자극적인 선동이 난무한다. 그리고 거짓으로 판명되어도 그것조차 진실이라고 숭배하는 다중들의 목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에코는 『프라하의 묘지』에 관한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역사를 바꾼 큰 거짓들은 내가 알기로 모두 거짓임이 입증되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어떤 것이 거짓임을 입증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계속 진실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음모론에 한번 갇히면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에코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시모네 시모니니는 여전히 우리들 사이에 있다.”

무분별한 음모론은 우리를 스스로 성찰하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시킨다. 그런 음모론이 극복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위력을 떨치는 사회라면, 그 곳에서는 더 이상 지성이 설 자리가 없다. 이성이 작동하는 사회라면 성폭력 피해자들 앞에 두고  ‘공작의 예언’을 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힘들었냐며 손잡아주는 것이 순서이다. 그것이 우리의 상식이 되어야 한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