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전북 부안군 대명리조트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강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9일 오후 전북 부안군 대명리조트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강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석현 중앙일보그룹 사주의 대선 출마여부를 놓고 얘기들이 많다. 몇  달 전부터 출마설이 돌았던 데다, 유력 언론사 사주이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일가와의 특수관계 등이 얽혀 관심이 모아지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에게 '정치'나 권력이란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것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대통령이란 직책이 그렇게 만만한가. 만만하게 보여도 되는가. 만만해도 되는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아무리 도가 땅에 떨어지고 정의가 질식했다기로서니, '상황이 이러니 나도 한 번?' 하고 나서도 되는 게 대선이고 정치인가? 자신이 구축해온 '영향력'을 테스트하는 기회로 삼아도 될 만큼 나라는 태평하고 민생은 안녕한가?

명문가, 명문교에 대한 오해 

이 대목에서 오랜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든다. 자칭 명문가에, 가진 것 많고 이룰 것 이뤘다고 생각한다면 "봉사" 운운하며 저울질해도 되는 게 대통령직과 정치인가? 많은 걸 -대개는 탁부(濁富)인데다 그것도 물려받은 게 태반이지만- 갖고 있으면 정치에 입문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그런 걸 또 소극적으로라도 수긍해주는 게 그간의 전례이자 관행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게 과연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오늘 칼럼의 제목으로 보자면 곁가지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차제에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우리 사회는 명문가, 명문학교의 기준이 크게 잘못된 채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굳어져버렸다. 이는 당연히 가치관의 기형화와 왜곡으로 이어졌다. 부끄러움을 알고 몸가짐을 바로하거나,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정신을 대쪽같이 지켜낸 조상보다, 무슨 수단을 쓰든지 간에 어떻게든 한 자리 차지하거나 큰 재물 모은 조상을 뽐내고, 급기야는 주변에서 이를 부러워하는 풍조가 이 나라와 이 나라 사람들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 부분은 내면의 이중성과도 맞닿아있어 한 마디로 정리하기에는 너무도 복잡다단하다. 이런 양면성이 잘 드러나는 대표적 사례가 혼담이 오갈 때다. '좋은 집안' 출신이라거나, 아무개 자녀라는 게 점수 따고 들어가는 걸 심심찮게 본다. 사회적 잣대와 개인적 잣대의 불일치 문제는 '가족(사랑)'이라는 극강의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섣불리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힘든 점이 있다. 그러는 사이, 이른바 '좋은 집안'에 대한 기준은 공동체의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정의에 대한 기준을 흐릿하게 해왔다.

'힘과 부 = 좋은'이라는 등식 깨야 

명문가에 대한 개념에 왜 왜곡이 초래 됐는지는 다 아는 일이다. 일제 패망 이후 민족정기를 바로잡을 기회를 강탈당했다. 이것이 현 단계 화두이자 시대정신인 적폐의 근원이다. 커트라인 높은 학교, 유명대학에 많이 집어넣는 학교를 그저 명문교로 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실생활 속에 깊이 침윤된 이 점을 고치지 못하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정신이건 물질이건 궁벽함을 넘어설 수 없다. 

부끄러워해야 할 조상과 선배를 감싸왔기에 수십 년간 엄청난 희생과 비용을 지불하고도 우리는 아직 천박함과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원에 대한 성찰 없이 그저 '힘과 부 = 좋은'이라는 등식이 내재화된 지 오래다. 촛불광장이 그렇게 외쳤던 '새시대'는 이 점을 바로잡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검찰 출두 사주에게 "사장님, 힘내세요!"

다시 본 줄기로 돌아오자.
김대중 정부 시절 탈세 혐의로 검찰에 출두하는 홍석현 사주에게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외쳤던 그 신문사 기자들을 진정한 언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번엔 또 뭐라고들 할지 조금 궁금은 하다. 

촛불이 여러 '야심가'들을 선거무대로 호출하는 기회로 전환되다니 아이러니 그 자체다. 피선거권이 있으면 출마는 자유겠지만, 스스로들 자격을 엄격히 따져봐야 구시대와의 결별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적폐의 수혜자나 원인 제공자가 어떻게 적폐를 청산하겠는가. 3·15부정선거와 이승만, 이기붕, 홍진기. 역사는 그들을 사면했는가? 선친의 '업'에 대해 홍 전 회장은 어떤 생각인지 궁금하다. <삼성 X파일사건> 녹취록에 생생히 담겨있는 자신의 말에 대해서는 또 어떤 설명을 할지 자못 궁금하다.  

<삼성 X파일사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자신의 적격 여부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거 대선에 출마하거나, 새시대 새정치에 역할을 하겠다고 여기저기서 부산하다. 촛불의 자장권 아래에서 치러질 수밖에 없는 이번 선거임을 감안하면 당선 가능성이 희박해보이지만, 정치를 그리고 역사적 의미를 획득한 이번 대선을 그렇게 희화화해도 되는가? 

수구 기득권층 후보들의 이전투구

홍 전 회장과 이력이나 부류는 다르지만, 대선에 도전했거나 거친 언사로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구여권 인사들, 즉 반기문 조경태 김진태 원유철 김문수 홍준표 씨 등을 보면서 다시 정의를 생각한다. 과연 이들은 정녕 스스로가 '새시대 새정치'의 앞렬에 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러는 걸까? 정치를 희화화하지 마시라. 정치에 대한 염증을 부채질하지 마시라. 당신들이 더럽혀왔던 공동체의 우물을 치워놓는 게 먼저다. 치우는 방법을 겸손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게 경우에 맞다. 그것을 도리라 부른다. 도리란 사람이 금수와 구별되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건 더 강조하지 않겠다.

시민들은 더 이상 수치와 모욕을 참지 않는다

시민들은 이제 더 이상 수치와 모욕을 참지 않는다. 정부 수립 후 70년 간 지배력을 유지-확장하기 위해 불법과 불의와 상식의 파탄을 자행해온 수구 기득권층이 시민들을 꾸준히 연단시켜왔다. 수구 기득권층의 정치 희화화는 씻지 못할 과오로 기록될 것이다. 각자가 끼친 적폐에 대한 상세 명세표와 청구서를 들이밀어야 계면쩍어할 것인가. 아니, 계면쩍어는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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