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겨울 촛불광장을 가장 잘 설명하는 구호를 고르라면 ‘이게 나라냐’와 ‘국민의 명령’을 들고 싶다. 촛불집회의 본질을 잘 함축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촛불광장은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를 압도한 상황이다. 국회에서 가결된 탄핵소추안도 의원들이 국민들을 ‘대리’해서 투표행위를 한 것일 뿐이다. 이 흐름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안심리 최종결정이 날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두 말할 나위없이 시민이었다. 시민들이 자신의 승리를 지키려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헌재가 결국은  탄핵안 인용결정을 내리리라고 본다. 헌재 결정이 나고 나면 60일 내에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하므로 ‘모내기철 우는 아이 젖 물릴 틈도 없이’ 촉박하게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각 당은 이미 대선체제로 돌입했다. 그런데 이건 상황 오판이다. 이번 대선은 ‘촛불 자장권’ 내에서 치러질 게 명백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어떻게 분화하고 어떻게 합종연횡하든 시민들은 줄기차게 요구해온 국민의 명령과, 구체제 청산작업이 가동되고 있는지에만 집중할 것이다. 그 어떠한 정치공학적 행위들에 대해서도 이 기준에 의거해서 판단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 국면에서 최고의 대선준비나 선거운동은 구체제 청산작업에 집중하는 것이다. 국민의 명령을 법과 제도로 구조화하라는 것이 시민들의 요구이고, 이번 촛불의 역사성이다. 대선과 개혁입법은 별개의 투 트랙이 아니라는 얘기다. 

국회는 ‘개혁입법특위’(가칭)를 즉각 구성해 악법 개-페와 개혁입법작업에 지체 없이 돌입해야 한다. 그 준비작업에 시민대표의 참여가 보장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악법 개-폐 및 개혁입법작업에는 ‘처삼촌 벌초하듯’ 시늉만 내면서 대선 셈법에 치중하는 것은 촛불에 배한 명백한 배반이자 직무유기다. 

개혁입법작업은 고시 공부하듯 머리띠 둘러매고 철야작업 해야 할 ‘산더미 분량’이 아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동안 여당 횡포로 비정상 처리됐던 것들 중 비민주적 요소 골라내고, 정치-경제-사회민주화 저해 부분을 바로잡으면 된다. 새누리당 비박계가 탈당해서 제4원내교섭단체가 됐다. 이들이 진실로 과거를 반성하고 새 체제 건설에 순정적으로 기여하겠다는 걸 입증하려면, 최소한 몇몇 악법들의 개폐에 조건 없이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탈당은 ‘불난 집에서의 일단 탈출’에 불과하다. 

헌법을 고치지 않고도 가능한 투표권연령 만18세로 확대나, 이미 발의중인 ‘상법개정안’ 등 경제민주화 법안 통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비처) 신설, 검찰-경찰-언론개혁법 등은 그간 소상히 논의되어온 터라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최소한 이런 정도의 개혁입법작업이 이뤄질 때 실종된 국회의 대의민주주의는 신뢰회복의 첫 주춧돌을 놓을 수 있다. 

각 당의 대선 예비주자들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눈도장 찍고 인증샷 남길 때가 아니다. 가장 진정성 있는 선거운동은 자신의 정치력을 총동원해 개혁입법작업에 전력투구하는 것이다. 

아울러 ‘제도개혁’과 ‘인식개혁’은 선후를 따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직시해야 한다. 이른바 ‘적폐’의 기저에는 ▲권위주의 ▲수구적 기득권 옹위체인 정경유착 ▲관존(官尊) ▲청와대 절대권력에 대한 맹종적 충성 등이 서로 엉켜 똬리틀듯 뿌리 깊게 박혀있다. 이런 구체제 인식의 타파 없이 법과 제도만 개혁해서는 한계가 불가피하다. 인식개혁은 개헌을 포함한 개혁입법작업과 함께 20대 국회 내내, 새 정부 들어서도 정치-사회-경제 전 부문에 걸쳐 꾸준하고도 확실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1987년 6월항쟁이 한 세대 뒤인 2016년 겨울 ‘촛불바다’를 통해 완성될 때 이번 1천만촛불은 비로소 그 역사성과 의미를 획득한다. 연설문 유출과 4.16 참사당일 뭘 했는지에 대해서만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제 대청소’가 핵심이다. 광장의 요구를 ‘법과 제도’로 구조화하는 것이 최선의 대선 준비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