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선거에는 시대정신이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시대정신을 정확히 포착해내고 구체적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승리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바탕으로 임기 동안 실현시키는 것이 선거제도의 골간이다. 제1, 2당이 비대위 체제에 마침표를 찍고 새 지도부를 수립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대선후보 얘기로 국면이 바뀌고 있다. 누가 누구와 합치지 않겠느냐, 이대로는 힘드니 제3지대에서 장래를 도모하지 않겠느냐…하는 정치공학적 계산들이 이른 봄 매화꽃망울 터지듯 분분하다. 

모든 선거가 그렇지만 대선은 특히나 후보가 중요하다. 후보 개인의 스펙이나 제원이 아니라, 후보가 들고나오는 시대정신이 중요하기 때문에  결국 후보가 중요한 것이다. 장기판에 말 쓰듯 대선 잠룡들을 두고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의 ‘수 읽기’에만 치중하는 것을 보자니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개탄을 아니 할 수 없다. 적어도 20년 쯤은 내다보고, 20년 후를  위해 자기가 담임하게 될 임기 동안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가, 누가 어느 당의 후보가 되느냐 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물론 각 예비후보들이 시대정신이나 비전을 제시했거나 곧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좋은 말은 다 모아놓은 백화점 진열대이기 십상이어서, 이대로 선거전에 돌입한다면 시대정신논쟁은 매몰된 채 익히 보아온 전국 순회유세만 또 다시 부각될 것 같아 걱정이다. 언론 역시 후보들의 유세 동정을 경마중계식으로 보도하기 십상이다. 이래서는 선거의 본령을 놓치는 것이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다음 사항들에 대한 후보들의 정련된 입장과 대안을 듣고 싶다. 정치공학적 계산이나, 권력풍향계를 따라 도는 바람개비 말고, 시대정신에 대한 철학의 차이에 따라 합종연횡한다면 유권자들에게 ‘염치’라는 것이 조금은 설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불안 사회’라고 집약하고 싶다. 공교육붕괴에 따른 자녀 미래 불안, 조기퇴출 불안, 노후 극빈층전락 불안 등 사회경제적 계층을 불문하고 2~3중의 불안에 매일 매일의 일상이 짓눌린 채 신음하고 있는 게 우리 사회다. ‘수저 논쟁’과 헬조선은 청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희망없는 대한민국 모든 세대의 우울한 초상화다. 이 불안사회로부터의 탈출방안은 무엇인가. 

둘째, 대표적 사례가 세월호참사와 가습기살균제 파동이겠지만, 생명과 안전에 대한 중시를 어떻게 제도로 확립하고 일상에 정착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답을 내놔야 한다. 지금도 법은 마련돼있다. 그러나 무시되거나 소홀히 취급되는 게 여전하다. 그래서는 되풀이되는 참사를 막을 수 없다. 핵심은 일상에 정착시키는 것이다. 생명과 안전을, 물이나 공기처럼 한 순간이라도 없어서는 삶이 영위될 수 없는 인자로 인식하고 체화시키는 구체 방안을 듣고 싶다.

다음으로, ‘일 할 권리’의 보장 방안이다. 가난과 실직은 인간의 황폐화를 초래하고, 비정규직문제는 우리 사회 소외와 분열의 핵심 요인이다. 가난과 실직을 개인의 무능 탓으로 돌리는 것은 국가가 자신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국가란 정부를 이행대리인으로 삼아 국민들에게 세금을 받는 대신 “인간으로서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해주겠다”는 계약서를 체결한 당사자이다. 계약의무불이행은 처벌 대상이다. 

고령화-저출산의 문제는 미래형이 아니라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기존 출산장려책과 고령화대책은 이미 곳곳에서 누수가 확인되고 있다. 노동정책과 결합되지 않은 고령화-저출산대책은 절름발이다. 새로 짜야 한다.  일례로 정시 출퇴근을 의무화하는 이른바 ‘칼퇴근법’ 제정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도 제기된 지 오래다. 후보들은 법제화 방안과 함께 로드맵도 준비해야 한다. 

유럽이나 대만 등에서 보듯 인구 5천만은 작은 규모가 아니다. 그러나  내수 기반이 취약해 국제경제환경이 조금만 변할라치면 우리 경제는 몸살을 앓고, 그 불똥은 고스란히 서민에게 전가된다. 지난 2012년 대선의 선거용 구호로 전락해버린 감이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다시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 아울러 강소기업 육성 등 ‘탈 재벌-경제체질개혁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양극화 탈출의 첫 걸음이다.  

미국 등 서방은 아직도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북한이 핵보유국임은 엄연한 현실이다. 남북문제는 체제경쟁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현 상태의 무한 군비경쟁은 남북한 국민들 정신적-물질적 삶의 피폐화만  가속시킬 따름이다. 상대를 무찌르기 위한 안보에서 생명존중과 상호 발전의 안보로 변화하지 않는 한 전쟁공포를 머리에 이고 살 수 밖에 없다. 휴전협정에 종지부를 찍고 평화협정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을 대내외에 천명해야 한다. 거기에는 물론 외교적 방안이 포함되어야 한다. 
통합과 평화는 누구나 소망한다. 그 밑바탕은 사회에 정의가 바로 설 때 가능하다는 점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추상적이고 낭만적인  구호 대신, 실익적 차원에서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 그러면 통합과 평화는 자연히 동반된다. 무엇이 사회정의인지, 그 사회정의를 어떻게 구현할지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아직 장도 서지 않았는데 상품이 진열되지 않았다고 타박하는 것은 이르지 않느냐”는 볼 멘 소리, 충분히 이해한다. 정치는 동네 상점이나 가게가 아니다. 신장개업 전단지 돌리기 전에 자신의 상품을 선보이는 것이 먼저다. 내년 대선은 지난 30년 다섯 번의 대선과 질적으로 달라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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