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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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뜨거라!” 이례적으로 신속한 징계수위 결정이다. 교육부가 13일 “대중은 개돼지…신분제 공고화 필요” 망언으로 국민적 공분을 산 나향욱 국장에 대해 파면 방침을 정하고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에 상신키로 했다. 정권 차원의 부담으로 커지기 전에 서둘러 파면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 징계문제를 다루는 인사혁신처가 이를 감경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랬다가는 최초의 발언 당시보다 훨씬 더 큰 쓰나미급 역풍을 맞을 게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이번 교육부의 결정은 발언이 알려진 8일로부터 나흘만이니 이례적으로 신속한 것이다. 통상 공무원징계는 사실관계 조사와 본인 소명 및 심의 등을 거치며 빨라도 3~4주는 걸렸던 게 전례다.

교육부나 정부가 처음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민심의 분노 강도를 체감한 것 같지는 않다. 10일까지만 해도 “취해서 기자들과 논전을 펼치다 나온 개인적 일탈”이란 입장을 견지했었다. 그러나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사드 문제까지 겹치면서 “작은 불이라도 빨리 끄자”는 권부 핵심의 의중이 신속한 파면으로 돌아선 건 아닌가 싶다.

나 국장은 교육부의 파면 상신에 억울해할지 모른다. ‘평소 어울리던 사람들과 이런 정도 얘기는 하던 건데 재수없게 알려져 당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또는, ‘나보다 더 한 생각이나 말을 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은데 나만 본보기로 당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국장의 잘못을 하나하나 들춰 공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지만, 혹시라도 그가 억울해한다면 나 국장에게, 아니 나 국장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한 마디 이르고 싶다. 공직자도 물론 자유로운 정치적 견해를 가질 수 있다. 두 말 할 필요 없이 그건 국민으로서의 권리다. 그러나 그(들)가 섬겨야 할, 그리고 그에게 월급을 주고 있는 99% 국민을 무지몽매한 개돼지에 비교하며 “배불리 먹게만 해주면 된다”는 지껄임은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국민적 처벌’을 받아 마땅한 징계거리다. “신분제를 더욱 공고화해서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잡아야 한다”는, 귀를 의심케 하는 망발은 그 자체만으로 국기를 문란케 한 일종의 ‘국사범’이다. 그러니 최고 수위의 징계가 당연하다. “국기 문란”이라고 하니 과장이라며 반발심이 드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나 국장의 망언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정면으로 깔아뭉갠 범법이다. 공무원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면 준수해야 할 헌법 1조에 나 국장은 침을 뱉았다. 대통령 이하 모든 공무원은 공무원이 되면서 말로든, 서면으로든 서약을 한다. “국법을 준수하고, 권력의 원천이자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섬긴다”고. 그 서약을 정면으로 위배했으니 공무원에게 취할 수 있는 최고 수위의 징계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정권 운용에 부담을 느껴 서둘러 파면 결정을 내렸는지는 확인할 길 없으나, 나 국장에게 내려진 파면 결정은 국민의 이름으로 내려진 징계라는 점을 똑똑히 인식하고, 행여라도 억울해하지 말기 바란다.

파면 결정이 알려지자 벌써 각종 인터넷 토론방에는 “나 국장이 파면은 과하다며 행정소송을 낼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솜방망이 처벌에, 그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됐었던 기억들이 너무도 생생하기에 그런 우려가 제기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나 국장이 속으로 ‘나만 그랬나?’ 라고 생각함직 하다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멀리 거슬러올라갈 필요도 없이 지난 6월 이래로만 살펴도, “천황폐하 만세”를 외친 국가 연구기관의 간부, “청년에게는 빚이 있어야 파이팅이 생긴다”는 안양옥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노동자들 집회 현장에 와서 술 마시고 행패부리다 항의를 받자 시민이라고 신분을 속인 서울 서초서 정보과 경찰 등 ‘유사 범죄자’들은 수두룩하다. “천황폐하 만세”를 외친 그 간부의 부친은 국방장관을 지냈다. 아버지가 국가안보의 총 책임자로서 얼마나 분골쇄신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리고 국방장관직을 지낸 걸 얼마나 영예롭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들의 국가관은 형편없기 짝이 없다. 전직 국방장관 이전에 아들 잘 못 가르친 애비로서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릴 일인데, 가타부타 말이 없다. 이게 다 최근 한 달 안쪽의 일들이다. 이래도 “일부 몰지각한 공직자들의 일탈”이라고 할 것인가? 일탈이란, “한 사회의 규범이나 표준에서 벗어난 행위”라고 정의된다. 이렇게 잦으면 일탈이 아니라 ‘구조화된 그 무엇’이라고 해야 옳다.

두 말 할 필요 없이 말은 의식의 반영이자 평소 사고의 투영이다. 도처에서 그런 수준의 언행이 일상화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것으로 보는 게 옳다. 집권당 원내대표에 선출되었다가 대통령에 의해 공개적으로 배신자라고 지목받아 목이 달아나고, 공천도 못받아 급기야 탈당으로까지 몰렸던 유승민 의원이 그 횡액을 겪었던 단초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강조한 연설이었다. 헌법정신이 이렇게 개차반 취급을 당하고, 헌법정신을 운위했다는 이유만으로 모진 불이익을 받는 것을 보면서 또 다른 ‘나 국장들’은 무슨 생각을 해왔을까.

나 국장 발언이 전해진 직후 각종 인터넷 토론공간에는 다음과 같은 분노가 폭발했다. “그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면 우리는 진짜 개돼지다. 개돼지들의 세금으로 월급받고, 미국 연수까지 가서 경력 쌓고, 그것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다가 퇴직후에는 관피아로 한 자리 꿰차 온갖 위세부리다, 늘그막에는 국가재정(세금)으로 보조해주는 연금까지 받는다면? 개돼지가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 필자에게는 이 분노가 녹두장군 전봉준의 21세기판 격문으로 읽혔다.

꽁지에 불 닿은 것 마냥 “앗 뜨거라” 식의 신속한 파면이 아니라, 뒤늦게나마 진정으로 국민을 무서워 한 파면 상신이었기를 바란다. 어느 것인지는 곧 드러날 것이다. 사드 문제에 비하면 나 국장 망언은 새발의 피다. (이강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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