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끈질긴 국회 심판론 자체가 3권 분립의 헌법정신 위기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여러 차례에 걸쳐 국회 심판론을 거론했고 올해도 어김없이 연초부터 반복해서 국민에 의한 국회심판을 호소하고 있다. 나라가 안팎으로 어려운데 국회의원들이 이 같은 나라사정을 모르고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고 입법을 바라는 사안들을 외면하고 있어서 경제도 위기가 닥칠 수 있고 테러가 발생하더라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힘을 싣고자 보수언론에서는 19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까지 씌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인 동시에 집권당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권한도 가질 수 있어서 제왕적 대통령으로 불리며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여당만이 아니라 야당까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국민을 향해 심판을 하라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린 것이며 자신을 왕정시대의 군주로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우려를 낳게 한다.   

우리 헌법은 3권 분립을 명시하고 있다. 입법권은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국회가 가지며 지금 그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을 이끌던 시절에 통과시켰던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운영이 되고 있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국회에서 법률로 제정된 사안들에 입각해서 국정을 운영하고 사법적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3권분립의 기본 정신이라 할 것이다. 국회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헌법을 무시하고 국회를 해산하는 것은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쿠데타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국회를 심판해 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 과거 박정희 정권에서 유신쿠데타를 통해 국회를 해산하고 유정회를 만들어 대통령이 국회의원 1/3을 임명하고 나머지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하여 국회를 장악했던 어두운 그림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2016년 4월 13일에는 20대 총선이 예정되어 있는데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획정위는 법이 정한 제출시한을 139일이나 넘겨 국회에 넘겼다. 2월 29일 국회에서 통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총선까지는 44일밖에 남지를 않지만 이마저도 불투명한 상태이다.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한 테러방지법의 국회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로 인해 국회 본회의 소집이 이뤄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애당초 정의화 국회의장은 테러방지법 직권 상정을 요구하는 청와대나 새누리당에게 지금은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직권 상정하여 국회의장 스스로가 다시 선거구 획정안 처리와 테러방지법 처리를 연계시킨 꼴이 되고 말았다. 선거구 획정안도 마찬가지였지만 새누리당은 협상과정에서 단 한 치도 양보를 하지 않았고 지금 테러방지법도 새누리당은 시간만 보내면 야당이 다시 손을 들 것이라 생각하여 전혀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다. 국정을 책임진 여당이 대통령의 심기와 눈치만 살피면서 총선에서 유불리만 따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모습이고 부끄러운 작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의 필리버스터로 많은 국민들이 테러방지법의 위험성과 국정원의 가려진 실상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이 국면에서 의미가 있는 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꽉 막힌 정치, 흔들리는 경제, 위기의 외교, 안보,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남북관계  

새누리당이 이처럼 국회 다수당이자 집권당으로 교착된 정국을 풀 책임이 있지만 꽉 막힌 태도를 보이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에게 전혀 협상의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지난해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야당과 국회법 협상에서 합의를 했다가 ‘배신의 정치’로 낙인이 찍혀 20대 총선에서 공천마저 쉽지 않은 처지로 내몰린 것을 보고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 여당이 정치를 이렇게 꼬이게 만들고도 전혀 풀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다가올 총선만 바라보는 것 자체가 한국 정치의 심각한 위기 징후라 할 것이다. 

연초부터 수출의 급속한 붕괴와 부동산 경기의 급랭에다가 한반도 군사적 긴장 고조라는 경제외적 요소까지 겹치면서 우리 경제는 지금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퇴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소위 초이노믹스라는 땜방식정책 이외에 아무런 근본적인 처방을 내놓지 않았으며, 새로 임명된 유일호 경제 부총리 또한 경제상황에 대해 안이한 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3주년을 맞아 경제민주화를 자신의 업적이라 내세웠지만 우리 경제가 양극화를 해소하고 재벌의 경제 집중현상을 완화하는 등 민주화의 길로 가고 있다고 믿는 국민이 누가 있을지 의문이다. 문제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시급히 수술을 해야 할 부분들을 가리고 다시 땜방식 대처에 매달릴 경우 우리 경제는 소생을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까지 모두 허비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 핵과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사드 배치, 개성공단 폐쇄 등 강경 대응책을 내놓았지만 최근 한미관계나 한중관계는 어느 쪽도 신뢰가 쌓이기보다는 흔들리는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부가 먼저 사드 배치를 공개적으로 제시하여 중국과 러시아 등의 반발을 초래했지만, 정작 미국은 중국과 만나 UN 차원의 대북 제재에 보조를 맞추면서 사드 배치에서는 오히려 한 발을 빼는 모양새이다. 이로 인해 한중관계는 중국의 경제적 보복을 우려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태에 접어들고 말았다. 개성공단 폐쇄로 북한에 경제적 고통을 안기겠다고 했지만 정작 먼저 고통을 받는 것은 우리 입주기업들이고 우리 정부가 법적 절차 등을 무시하고 가동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에 개성공단은 정상화가 어려운 상황에 접어들었다는 비관적 전망이 많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나 외교 안보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꼬이게는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남은 임기 동안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더 큰 위기를 막는 차선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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