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핵심은 제도개혁 아닌 정치적 결단의 문제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상곤 혁신위원회가 정식 출범했다. 다들 알다시피 2016년의 총선과 2017년의 대선을 앞두고 제1야당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데서 새정치연합의 혁신위는 만들어졌다. 이제 혁신위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어 당내 계파갈등을 극복하고 국민의 지지를 되찾을 전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내년 총선도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기반을 반드시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의 혁신위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낙관적이기 어렵다. 우선 하느님이 오신들 해결하기 어려운 고질적인 계파갈등의 현실이 있다. 그것이야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당장은 도리없는 일이니 그렇다 치자. 더 어려운 것은 김상곤 혁신위가 과연 길을 잃지 않는 혁신전략을 세울 수 있을지에 있다.

혁신위의 구성을 보면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국회의원, 교수, 기초단체장, 당직자, 지역활동가, 여성계 인사, 변호사, 청년대표 등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혁신에 대한 구상도 무척 다양하게 나온다. 물갈이, 제도개혁, 지방에 기초한 정당, 현장형 정당, 당원에 뿌리내린 정당..... 다 좋은 얘기들이다. 이렇게 다양한 혁신구상들이 다 모아지면 얼마나 훌륭한 정당이 만들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 않은 것이 우리가 경험했던 정치현실이다. 혁신을 위한 좋은 플랜들이 막상 말의 성찬으로 끝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새정치연합만 하더라도 혁신안이 없어서 오늘 이 지경까지 온 것은 아니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당 혁신안이 제시되었지만 막상 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는데는 별 역할을 하지 못한채 사장되곤 했다. 혁신의 구상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데 그쳐가지고는 이번에도 같은 결과가 반복될 것이다.

혁신의 전략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혁신과제의 우선 순위 설정이 제대로 진행되어야 혁신은 성공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제1야당이 부딪히고 있는 핵심 과제가 무엇인가를 올바로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 선거 때마다 야당을 연전연패시키고 있는 것, 그리고 야당 내부의 계파갈등을 만성화시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직시해야 한다. 그것은 지난 2007년 이래로 야당의 발목을 잡고 있는, 다름아닌 친노 프레임이다.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은 새삼스럽게 그 책임의 소재를 밝히기 위한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여당과 보수언론이 만들어낸 프레임이냐 아니면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이냐를 가리자는 얘기도 아니다. 그 논쟁은 어쩌면 앞으로도 10년이 가도 해결되지 않을, 영원한 평행선과도 같은 문제일지 모른다. 지금 그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그 프레임이 존재하고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지난 2007년 이래로 야당이 여당의 대적 상대가 되지 못했던 데는, 여당은 친노 프레임만 꺼내들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야당을 이길 수 있었던 현실이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야당은 오랜 지체 현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내년 총선도 마찬가지이고 후년의 대선도 마찬가지이다. 친노 프레임의 문제를 해결하든 넘어서든, 어떤 식으로든 그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 야당에게는 달라질 것이 없다.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도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고, 내부의 계파갈등도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친노 프레임이라는 것에 대해 어떠한 정치적 태도를 갖든, 그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세상에 눈감고 귀막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것이 넘어서야 할 중대한 과제라는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친노 프레임을 넘어설 길을 찾지 못한다면 아무리 수많은 혁신방안이 나온다 하더라도 백약이 무효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선거 때마다 국민 여론에 가장 크고 민감한 영향을 미치곤 하는 이 프레임을 해체시키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어떤 제도개혁이 의미있는 성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새정치연합 혁신의 핵심은 정치적인 문제임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가장 정치적이고, 따라서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앞에 놓고 혁신의 과제를 제도개혁 차원에서만 논의하는 것은, 눈 앞의 현실에는 눈감고 먼 곳만 바라보는 뜬구름 잡는 얘기가 될 위험마저 있다. 새정치연합 혁신의 핵심은 제도개혁 이전에 정치적 결단의 문제이다.

친노 프레임을 넘어설 답을 찾는 것은 지속가능한 혁신전략과도 직결되어 있다. 이 시점에서 의미있는 혁신은 기득권을 가진 당내 구성원들과의 갈등을 수반하게 되어있다. 지금 새정치연합에게는 친노 기득권, 호남 기득권, 중진 기득권 등이 모두 혁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혁신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으며, 어느 세력이나 지역만 보호될 이유는 없다. 친노 패권주의에 반대한다는 구실로 자신의 낡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움직임도 모두 고발되어야 한다. 당연히 모두가 혁신의 대세에 순응하도록 큰 흐름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노 프레임의 문제부터 답을 찾는 것이 순서이다. 김상곤 혁신위가 이 문제에 정면으로 제대로 접근하지 않은채 다른 곳에만 혁신의 칼을 들이댈 때 아무도 승복하지 않을 것이고, 새정치연합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당내에서 가장 힘이 센 인물과 세력부터부터 혁신의 대상으로 올려놓음으로써 성역없는 혁신 의지를 입증할 수 있고, 당내 다른 세력들도 그 혁신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도록 이끌 수 있다. 가장 힘 센 사람과 세력을 향해 혁신을 칼을 빼드는만큼 효과적이고 강도 높은 혁신전략은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김상곤 혁신위의 그 누구도 이러한 방향으로의 의지를 피력한 바 없다. 정치적 결단이 있어야 할 시점에 백화점식 제도개혁 논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자칫 길잃은 혁신으로 가게 만들 위험이 크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각종 제도개혁안만 무성하고 정치적 결단들은 회피되는 상황은 결국 계파갈등의 재연으로 귀결될 것이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혁신의 성과를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새정치연합의 혁신은 2007년 이래도 야당의 지체를 가져왔던 근본적인 문제들을 제대로 진단하고 이를 바로잡는 역사적 전기가 되어야 한다. 아마도 야당 스스로의 힘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또 다시 유권자들이 야당을 심판하는 일을 막으려면 이번 마지막 기회에 야당 스스로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새정치연합의 혁신위원들이 이에 관한 철저하고도 역사적인 인식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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