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묻게 된다, 이 나라에 정부가 있는가?

메르스 첫 감염자가 발생한지 14일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얘기들을 쏟아냈다.

“안타까운 일이 발생해 지금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
“메르스가 더 확산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겠다.”
“현재 상황과 대처 방안에 대해 적극적이고 분명하게 진단한 후 그 내용을 국민에게 알려야한다.”

대통령에게는 미안한 얘기이지만, 별 도움이 되는 것은 없는 하나마나한 얘기들의 나열이었다. 아니, 이제야 알았느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지금의 긴박한 분위기에 맞지않는, 여전히 한가하게 들리는 얘기들이었다. 게다가 감염자가 이미 18명으로 늘어난 시점에서 15명이라고 틀리게 말하는 실수를 했다가 청와대의 동영상 편집에서 편집되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메르스에 대한 부실 대처는 여러모로 세월호 참사의 판박이가 되어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동안 사라졌다가 나타난 박 대통령은 이번에는 14일 만에 나타났다. 그래도 이번에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으니 다행이라 할지 모르지만, 대통령의 늦장 등장이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이다. 대통령은 진작에 나타나서 메르스 감염 확산을 막는데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세월초 참사 첫날 중대본을 방문했을 때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을텐데 왜 발견하기 힘드냐’고 엉뚱한 질문을 해서 상황파악을 하고나 있는 것이냐는 빈축을 샀던 박 대통령은 이번에도 감염자 수가 늘어난 사실도 보고받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대통령에 대한 청와대의 보고가 얼마나 부실한지는 이번에도 국민 앞에 생생히 노출되었다.

세월호 참사 때와 무엇보다 닮은 것은, 콘트롤타워도 없고 리더십도 없는, 정부의 무능한 대처 모습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초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치며 감염 확산을 막는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시종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복지부가 국민에게 내놓은 설명들은 자고 나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신뢰는 붕괴되었고, 정부는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렸다. 세월초 참사 때 국민적 공분을 샀던 해경의 모습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런가 하면 같은 박근혜 정부 아래에 있는 교육부와 복지부가 학교들의 휴업.휴교 문제에 대해 정반대의 입장을 내놓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때 콘트롤타워의 부재라는 문제가 그토록 지적되었건만 이번에도 콘트롤타워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부총리에게 회의를 맡기고 창조경제센터 개소식에나 참석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콘트롤타워가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세월호 참사 때 청와대가 콘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했듯이, 메르스 확산에도 청와대가 콘트롤타워 역할을 했어야 했다. 세월호 때 “청와대는 재난대처의 콘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궤변을 내놓았던 청와대는 또 다시 “방역수준 ‘주의’ 단계에서의 콘트롤타워는 청와대가 아니다”라고 말할 셈인가.

결국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이다. 국가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을 때 위급상황에서 어떤 재앙이 초래될 수 있는지를 우리는 세월호 참사 때 지켜보았다. 대통령의 리더십을 찾아볼래야 볼 수 없는 상황은 이번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아니, 이번에는 여권 내부의 계파갈등에 따라 청와대가 메르스 당청협의조차도 거부하는 광경까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국민의 안위보다 대통령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계파정쟁에 몰두하는 모습으로 밖에 달리 이해할 길이 없다. 대통령은 메르스 대책같은 것은 그저 아랫 사람들 일로 여기고, 자신의 힘만 지키면 되는 ‘제왕’이 되려는 생각 밖에는 없는 듯하다.

이 나라에 정부가 있는가. 세월호 참사 때 국민들 입에서 쏟아져 나왔던 그 질문이 다시 나오고 있다. 대통령은, 그리고 정부는 그 질문에 이번에는 뭐라고 답할 셈인가. 번번히 그런 참담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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