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회고록에서 집단적 자아도취를 읽는다

MB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대략 살펴보았다. 책이 정식으로 나오기도 전에 어째서 전문을 파일로 이곳저곳에 배포했는지도 개운치 않았지만, 책의 줄거리라도 파악하는데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것은 780페이지를 넘는 분량 때문만은 아니었다.시종일관 계속되는 MB의 자화자찬에 마음의 동요를 참으며 책의 마지막까지 살피는 것은 어지간한 인내심으로는 쉽지않은 일이었다.

회고록은 이런 내용을 담은 서문으로 시작된다.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는 열과 성을 다해 일하리라 다짐했다. 일이 희망이고 일이 기도였다. 한정된 시간이다. 무실역행(務實力行)하자. 열심히 일해 국민에게 보답하고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어보자. 나와 나의 참모들은 얼리버드(early bird)들이었다. 정말이지 쉬지않고 뛰었고 신나게 일했다. 다 잘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는 많은 일들을 해냈다.(6쪽)

그리고 회고록은 이런 문장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지난 5년간 국민을 위해 매 순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기에 후회나 아쉬움은 없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가장 행복한 일꾼이었습니다.” 마지막 연설을 하면서 대한민국의 힘차 전진은 계속될 것이라 확신했다. (781쪽)

이건 우리가 알던 MB가 아니다. 우리 국민들 기억에는 MB 5년은 ‘실정의 5년’이었다. 임기 말에 가서는 민심이반 앞에서 식물 대통령 소리를 들으며 좀처럼 앞에 나서지도 못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전후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라도 저런 얘기를 들으면, MB 5년은 태평성대를 구가한 시기였던 것으로 오해할지도 모를 정도이다. 아직도 우리의 기억이 생생하거늘, 물러난지 2년 만에 다시 이렇게 당당한 얘기를 담은 책을 펴내는 MB의 무모함 앞에서는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책의 곳곳마다 자화자찬으로 가득차 있다. 국민 혈세를 쏟아붓고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4대강 사업조차도 “금융위기를 다른 국가들보다 빨리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세계 금융위기가 들이닥쳤을 때 우리가 신속히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을 불행 중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자찬했다.

‘광우병 사태’는 책임을 떠넘긴 노무현 정부 탓이었고, 광우병 괴담을 퍼뜨린 <PD수첩> 때문이었다. “<PD수첩>이 방영되자 중고생들을 중심으로 인터넷에 광우병 괴담이 퍼져나갔다. “광우병은 공기로도 감염된다”, “화장품이나 젤라틴 성분이 들어간 생리대, 기저귀로도 전염된다”, “쇠고기를 다룬 칼과 도마로 수돗물까지 오염된다” 등으로 그야말로 괴담이었다“고 말한 MB는, 그래도 자신이 정치적으로 휘둘리지 않았기에 ”광우병 사태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도를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역시 자찬한다.

경제위기 극복, 세종시 수정안, 대북정책, 원전수출 등 사안마다 일방적인 자찬으로 덮여져있다. 잘못에 대한 인정과 성찰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MB가 했다고 해서 모두가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만, 거꾸로 MB가 한 것은 모두가 잘한 일이라는데, 우리가 그러한 강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책의 마지막 부분 후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무엇보다 자화자찬을 경계했다. 지난 일을 되돌아보다 보면 굳이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고 내 입으로 말하기 거북한 일도 있다. 특히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한 일들이 미화되거나 과장되어 기록될 위험이 있다. 국정 철학을 공유하면서 함께 일했고 따라서 이해관계가 겹치는 참모들과 과거사를 돌아보다 보면 스스로 집단적 자아도취에 빠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기우였다....(784~785쪽)

말이나 안하면 밉지나 않지....  MB가 우려했던대로 이 회고록에서 발견되는 것은 집단적 자아도취 증상이다. 에리히 프롬의 <인간의 마음>(The Heart of Man)은 프로이트의 ‘나르시시즘’ 개념을 발전시켜, 나치즘 등 현대의 광신 및 파괴적인 행위들에서 나르시시즘이 했던 역할을 살펴보며 그 심리적 동인을 분석하고 있다. 프롬은 집단적 나르시시즘(아래 인용문에서는 ‘자아도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집단적 자아도취는 개인적 자아도취보다 더 알아보기가 어렵다. 어떤 사람이 ‘나와 내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 우리들만이 깨끗하고 총명하고 착하고 점잖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더럽고 어리석고 정직하지 못하고 무책임하다’고 말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람을 균형을 잃은 미숙한 사람이라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미쳤다고 생각하기까지 할 것이다.“

그러면서 프롬은 “자아도취가 심하면 심할수록 자아도취적인 사람에게는 스스로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의 비판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설명한다.

프롬의 얘기는 회고록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의 것이다. 이 회고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프롬의 말대로 “심지어 미쳤다고 생각하기까지”할지 모른다. 지금 MB에게 필요한 것은 회고록이 아니라 참회록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