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모르는 청와대의 자업자득 혼란상

점입가경이다. 대통령 주변 인사들끼리 치고받은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청와대의 뒤죽박죽 모습이 국민에게 그대로 드러난데 이어 이번에는 김영한 항명 파문이다.

오늘(9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에 김영한 민정수석이 출석하지 않았다. 불출석 사유서를 보니,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로서, 비서실장이 당일 운영위 참석으로 부재중인 상황이므로 긴급을 요하는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고 전국의 민생안정 및 사건 상황 등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 업무적 특성도 있어 부득이 참석할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되어있다. 애당초 가당치않은 사유였다. ‘정윤회 문건’ 파문과 관련하여 문건 유출 경찰관들에 대한 민정수석실의 회유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라, 민정수석은 국회에 출석해서 이에 대한 답변을 해야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되는 사유를 갖고 불출석을 했다. 하늘을 찌르는 오만이다. 지금 청와대 사람들이 국회와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당연히 야당은 반발했고 결국 여당도 민정수석 출석 요구에 합의했다. 여야 합의에 따라 김기춘 비서실장은 김영한 수석의 출석을 지시했다. 그런데 김 수석은 이를 거부하며 사의를 밝힌 것이다. 비서실 책임자의 지시에 대한 항명이다. 김기춘 실장은 민정수석의 출석거부에 대해 "강력한 응분의 책임 묻겠다”고 했고, 다시 “사의를 받아들여 해임하도록 인사권자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김영한 수석이 그렇게까지 국회출석을 완강하게 거부한 이유는 몇 가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우선 국회 출석을 모욕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다. 자신이 불출석 사유서를 보냈는데도 굳이 여야 합의로 출석을 요구한 것에 반발하여, 국회에 나가느니 차라리 그만 두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만약에 그런 것이라면 지극히 오만한 안하무인의 태도라 아니할 수 없다. 국회의 요구에 당연히 따르는 것이 청와대 공직자의 의무이거늘, 그것을 굴욕처럼 받아들인다면 공직자로서의 기본이 안된 태도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김 수석이 민정수석실의 회유 의혹에 대해 답변이 궁색한 상황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동안 민정수석실은 회유 의혹을 부인해왔는데, 의원들이 구체적인 팩트를 제시하여 추궁했을 경우를 우려하여 차라리 완강하게 출석을 거부했을 가능성이다.

물론 또 다른 추론도 가능하다. 알려지지 않은 청와대 내부의 상황과 관련하여 자신이 책임을 뒤집어쓰는데 대한 항의의 의사일 수도 있다.

그 어떤 경우이든 간에 김 수석의 항명은 정윤회 문건 파문에 이어 청와대가 콩가루 집안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광경이다. 수석이 비서실장의 지시를 거부하고 그냥 사의를 표해 버렸다. 김기춘 실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임을 감안할 때 이는 박 대통령에 대한 항명과 다를 바 없다. 이제 청와대는 지휘체계조차 무너져버린 조직이 되었다. 어떻게 국민에게 얼굴을 들 것인가.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의 결과이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문건 파문이 있었어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성찰의 메시지도 없다. 책임을 지지 않는 조직에 무슨 기강이 설 수 있겠는가.

레임덕이다. 청와대를 흔들고 있는 것은 야당도 국민도 아니요, 바로 자기 자신들이다. 권력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은 사실은 말기적 증상이다. 그런데 생각보다도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박 대통령만 그것을 모르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