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등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수사발표에 즈음하여
한 언론에 의해 청와대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이 제기된 이후 39일 만에 검찰의 수사 발표가 나왔다. 예상한대로 문건 내용은 소위 ‘찌라시’를 짜깁기한 것이고, 십상시(十常侍) 회동은 없었다고 결론을 냈다. 한편 이를 유출한 책임을 물어 조응천 전 청와대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경정, 그리고 서울경찰청의 한모 경위를 기소했다. 결과적으로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이 공모해 벌인 조작극”이라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한 모양새이다.
이 사건이 언론에 노출된 직후 박근혜 대통령은 “‘찌라시’에나 나오는 애기로 나라가 흔들린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언급한 바 있는데 이 대통령의 언급을 그대로 받들어서 검찰의 수사가 진행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아울러 대다수 국민이 국정개입 의혹이 사실인지, 대통령이 문체부 실국장 인사에 직접 개입한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는 확인도 하지 않고 덮고 말았다. 문제가 되었던 비서관 3인 중 1명만이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을 뿐이고 거꾸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이후 자살한 최모 경위와 한모 경위에 대한 청와대의 협박과 회유 가능성 등에 대해서도 당사자가 사망하는 등 ‘단서가 없다’는 이유로 수사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대통령 주위에서 국정을 농단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정윤회씨와 소위 문고리 3인방은 검찰에 의해 면죄부를 받은 셈이 되고 국정농단은 없었던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손가락이 가리키던 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고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만 기소되어 그를 가리킨 손가락만 탓하는 격이 되고 말아버렸다.
물 건너간 인사쇄신 가능성
비선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으로 대통령 지지도가 추락하면서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과 소위 문고리 3인방 등의 인사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지만 검찰의 이번 수사 결과 발표로 그 가능성은 물 건너간 듯하다. 특정인이 찌라시 내용을 과장하여 대통령 측근들을 모함한 사건으로 몰고 가는 마당에 이런 찌라시에 불과한 내용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고 언급한 바 있는 대통령이 아무런 잘못도 없는 측근들을 경질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연초에 청와대 직원들 앞에서 충(忠)을 강조하고 파부침주(破釜沈舟)를 언급하면서 내부 기강잡기에 나서는 모양새를 보인 것은 대통령이 다시 김기춘 실장 등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 임기 3년차를 맞아 개혁을 완수하고 성공적으로 국정을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지만 지난 연말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이 다른 곳도 아닌 대통령 비서실에서 터져 나온 것에 대한 경고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충을 강조하고 배수진을 치겠다고 해서 개혁을 추진할 동력이 생길 것인가 하는 점이다.
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은 소수 측근들의 강력한 충성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의 신뢰에서 나오는 것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울러 그 신뢰는 국민들과의 소통에서 깊어질 수 커지는 것인데 소수 측근들을 제외하고 청와대 수석들이나 장관들조차 대통령을 직접 대면하여 보고할 기회조차 갖기가 어렵다는 현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미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검찰은 한 치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의 의혹이 해소되고 신뢰가 형성되기는커녕 의혹은 증폭되고 불신은 깊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거짓과 불신이 난무하던 시기를 벗어나 2015년이 정본청원(正本淸源)의 근본이 바로 서고 근원이 맑은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연초의 검찰 수사 발표와 김기춘 비서실장의 발언 등을 접하면서 또 다시 거짓과 불신의 나날들이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감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