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떠오르는 ‘유인물의 추억’

과거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 시절, 그리고 전두환 5공 정권 시절, 반정부적인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뿌리는 일은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하는 행동이었다. 당시 대학 캠퍼스 곳곳에는 사복경찰들과 백골단이 들어와 있었고,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숨조차 마음놓고 쉬기 어려울 정도의 감시가 있던 그 시절, 화장실 벽에는 자유롭게 내뱉지 못했던 외다마 절규들이 쓰여져 있었다. ‘유신독재 타도하자’ ‘전두환 살인정권 물러가라’... 대략 그런 낙서들이었다. 그리고 학내외를 막론하고 한번 반정부 유인물이 발견되면 그것을 뿌린 사람을 찾기 위해 그 일대는 뒤집어지곤 했다.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유인물의 추억’이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2014년말. 다시 반정부 전단지와 낙서가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지난 25일 밤 서울 명동에서는 신원미상의 청년들이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ㅈㅂㅇㄱㅎㅎ 나라꼴이 엉망이다’라는 글귀를 건물과 바닥에 남겼다고 한다. 경찰은 재물손괴, 명예훼손 혐의 등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일대 CC TV 분석까지 하며 용의자 검거에 나섰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26일에는 서울 홍대 인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전단 1만 여장이 뿌려졌다고 한다. 이 전단지에는 박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함께 찍은 사진과 '김 위원장은 가식이 없고 거침없는 스타일' 등 과거 박 대통령이 발언했다고 알려진 내용이 담겼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종북?', '진짜 종북은 누구인가?" 등 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문구도 쓰여있었다는데, 박근혜 정부의 종북몰이를 비꼬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역시 경찰은 건조물 침입 혐의를 적용할 예정이라며 강력팀에서 수사할 가능성을 밝혔다고 한다.

이 광경을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두 가지이다. 우선 정부 비판 전단지 살포와 낙서를 몰래하고 도망가는 풍경이 수십년 만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은밀한 전단살포와 낙서가 어째서 등장했던가. 공개된 영역에서의 정상적인 통로로는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런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단살포와 낙서는 그 시대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누군가는 그 시절과 지금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냐고 할지 모른다. 정부 비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대인데 굳이 전단을 뿌리고 낙서를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맞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논리이다. 정부, 그리고 검찰.경찰이 나서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통제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이 받고 있는 제약과 그로 인한 위축심리를 외면한 얘기이다.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거나 그런 얘기를 거리에서 하면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올지를 걱정해야 하는 세월을 우리는 겪고 있다. 그러하기에 최근 이어진 전단살포와 낙서는 그만큼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음을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나서서 못하니까 숨어서 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이런 일들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유신정권-5공정권 시절의 그것과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음에 놀라게 된다. 박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 했던 말은 ‘팩트’인데, 사실을 사실대로 알린 것이 어떤 범죄가 되는지 알기 어렵다. 고작해야 박근혜 정부의 종북 프레임을 풍자하는 문구 정도인데, 민주주의를 하는 어느 사회에서 그 정도의 내용을 갖고 처벌을 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통령을 건드린 전단이기에 처벌은 해야 하겠길래 고작 찾아낸 것이 건조물 침입 혐의이다. 참으로 저렴해 보인다.

그리고 ‘나라 꼴이 엉망이다’라는 정도의 비판을 한 것 역시 무슨 문제가 되는지 알 길이 없다. 명동 거리에서 길가는 사람들 붙잡고 물어봐도, 아마 절반 가량은 ‘나라 꼴이 엉망’이라는데 공감을 할텐데, 그것을 어떻게 처벌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건물과 바닥에 낙서를 했으니까 재산손괴 혐의라 한다. 게다가 명예훼손 혐의라 한다. 낙서하면 재산손괴라.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이면 다른 낙서들도 다 CC TV 분석해 가며 낙서한 사람들을 수사해야 형평성에 맞을 것이다. 그리고 ‘ㅈㅂㅇㄱㅎㅎ’라는 초성어가 무슨 말인지 누가 어떻게 단정하고 명예훼손 혐의를 거론하는지 모르겠다.

정부비판 전단살포와 낙서은 그동안 표현의 자유를 통제해온 박근혜 정부가 낳은 산물이다. 그렇다면 정부 비판에 숨 쉴 곳은 남겨주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해서 이렇게까지 ‘강력범’으로 몰아가면서 CC TV분석까지 해야 하는가 말이다. 그냥 못본척 넘어가도 이 사회는 아무 일 없이 유지되고 돌아간다.

유신독재 시절, 친구들끼리 모여 막걸리를 마시다가 대통령 비판이라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곤 했던 ‘막걸리 반공법’의 악몽이 있다. 정부 비판의 내용을 다중들에게 알렸다고 굳이 건조물 침입, 재물손괴의 칼을 들이대는 모습은 결국 ‘막걸리 반공법’의 박근혜 정부 버전일 뿐이다. 시대가 전단을 만들었고, 그 전단이 다시 시대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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