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유출’이 아니라 ‘정윤회 국정개입’ 여부가 본질이다

‘정윤회 국정개입 사건’인가,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인가?

그동안 비선 실세로 지목되어온 정윤회 씨의 국정개입이 청와대 내부 보고서에 의해 사실로 확인되었다는 <세계일보> 보도의 파장이 확산되는 가운데, 이를 ‘문건 유출 사건’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친박 실세로 꼽히는 새누리당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청와대의 공직기강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직원이 청와대 내부문서를 들고 나와 언론에 흘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검찰은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서 관련자를 엄벌에 처하고 사안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도된 문건 내용의 진위 여부보다는 어떻게 문건이 유출되었는가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주문이었다.

<조선일보>의 편집과 보도 또한 맥을 같이 한다. <조선일보>는 29일 1면 톱기사로 ‘라면박스 2개 靑문건 통째로 샜다’를 올렸다. 이 또한 청와대 문건이 외부로 유출된 점을 이 사건의 핵심으로 부각시키는 편집 태도라 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청와대 문건의 외부 유출이 대통령과 가까운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보다 중대한 사안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청와대 내부 보고서가 어떻게 외부로 유출되었는지를 가리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시급성이나 중요성이 정윤회 씨의 국정개입 여부를 가리는 것보다 우선할 일은 아니다. 만약 보고서에 나온 내용의 상당 부분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국가기강을 흔드는 국정농단 행위이며, 정권의 기반 자체까지 흔들 수 있는 엄청난 사안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가까운 인연을 가진 사람이 아무런 공직도 맡지 않은 상태에서 청와대 비서관들로부터 내부동향을 전해듣고 그들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내린 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그것이 용납될 수 있는 일이겠는가. 더욱이 정윤회 씨가 김기춘 비서실장의 거취에까지 개입하려 했다는 내용은 청와대 권력 주변에서 권력암투가 진행된 것 아니냐는 해석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미 일부 언론들은 이 사건을 정윤회-박지만의 권력암투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문건의 유출 또한 반(反)정윤회 인맥에 의해 저질러졌을 가능성에 대한 추측까지 내놓고 있다. 이같은 감찰 보고서의 작성을 지시한 조응천 비서관이 박지만 씨가 1990년대 마약투약으로 검거되었을 때 수사검사를 맡았던 인연, 문건 작성자인 박모 경정이 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보고한 뒤 얼마되지 않아 좌천성 경질되었던 점, 그 뒤 박지만 씨가 정윤회 씨한테 미행을 당했다는 <시사저널>의 보도가 나오고 이 때문에 조응천 비서관도 청와대를 떠나게 된 점, 최근 들어 정윤회 씨가 다시 공개행보를 하는 시점에 이 문건이 터져나온 점 등이 복잡한 권력암투의 정황들로 꼽혀지고 있다.

실제로 <조선일보>의 29일 보도에 따르면 박 경정은 지난 7월 통화에서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뒷받침할 정보가 있느냐는 질문에 "다음에 이야기하자"면서 "(청와대에서) 정씨에 대해 파악하면 큰일이 난다. (정윤회의) '정' 자도 못 꺼낸다. 금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직속상관이던 조응천 비서관이 4월에 경질된 배경에 대해 "조 비서관이 정씨를 둘러싸고 (여러 잡음 등)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를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했다가 '한칼에 좍~, 재판도 없이' 그대로 날아간 거 아니냐. 그렇게 들었다"고 했다는 것이다. 박 경정 자신이나 조 비서관이 정윤회의 ‘정’자를 꺼냈다가 청와대를 나와야했던 속사정을 말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청와대 권력 주변에서 ‘정윤회 대 반(反)정윤회’의 권력암투가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해지는 내용들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아무런 공직도 맡지 않은 인사가 정권내 권력암투의 핵심이 되었다면 이는 국가기강을 흔드는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고, ‘제2의 김현철 국정개입 사건’이라 부를만하다.

마땅히 청와대와 여당은 정윤회 씨의 국정개입 여부에 대한 진상을 국민 앞에 밝히고 그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냥 찌라시에 불과하다고 내용에 대해서는 일축하며 유출 문제만 부각시킬 일이 아니다. 지시를 받아 작성되고 보고까지 된 청와대 정식 보고서가 찌라시에 불과하다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수긍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청와대는 그처럼 찌라시를 보고받고 운영되는 곳이란 말인가. 지금은 정윤회 씨 국정개입 의혹의 진상을 유출 수사로 물타기 할 때가 아니다. 청와대와 여당은 정윤회 씨의 국정개입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협력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풍문으로 돌았던 정윤회 씨 문제가 이제 세상 한복판으로 나왔다. 여기서 분명하게 정리하지 않는다면 정윤회 씨 문제는 앞으로 박근혜 정부의 지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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