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 국가와 무능한 정부

지난 4월 16일 진도 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로 3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大慘事는 온 국민을 비탄에 잠기게 했고 대한민국이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되묻게 하고 있다. 사고 선박의 선장이 승객들에게 배에서 탈출하라는 명령도 내리지 않은 채, 먼저 배를 버리고 빠져나온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이 비극이 선장만을 탓한다고 모든 문제가 덮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님을 국민 모두는 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연초 기자회견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사건 발생 보름이 경과하기까지 사고 발생 초기에 배에서 탈출하여 구조된 사람들 이외에 단 한사람의 생명도 구하지 못한 이 나라를 국가재난시스템이 작동하는 정상국가로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해난 사고가 발생하면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 신속히 정확한 보고를 받고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인명구조에 나섰어야함에도 그 중요한 시간대에 현장의 긴박한 상황조차 정확하게 파악을 하지 못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해난 사고의 경우 사건 발생 직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상황이 급속도로 최악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출동했던 해경과 해군, 민간선박 등에 대해 책임 있게 지휘하거나 통제하는 콘트롤시스템은 어디서도 작동하지 않았고, 관계 당국은 정확한 승선자 숫자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극도로 무능한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화급을 다투는 인명구조는 방치하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만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던 피해자 가족들과 시시각각 생존자 구조소식을 기다려며 TV 앞에서 마음을 조이던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절망에 이르고 말았다. 
  
팽목항을 다녀간 정부고위층 인사들 중 그 누구도 즉각적인 인명구조를 위한 대책수립을 절박하게 요구하는 피해자 가족들과 진심으로 아픔을 함께하면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지를 않았고, “청와대 상황실이 국가재난의 콘트롤타워가 아니”라며 책임 모면에 급급한  모습은 비정상적인 국가의 고위층들은 무능할 뿐 아니라 최소한의 공감능력마저 부재하면서도 대단히 비겁하고 뻔뻔하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위험한 사회에 방치된 국민들 

박근혜 대통령은 약속을 중시하는 信賴의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지녀 왔다. 세월호 대참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대목은 “배안에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라”는 안내방송을 성실히 따랐던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가장 컸다는 점이다.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는 학교나 가정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 책임자의 지시에 따르라고 가르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런 징후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도처에서 드러났다. MB정권의 4대강 사업이 국토를 파괴하고 강을 오염시킨 잘못된 토목사업임이 밝혀졌지만 그 사업을 지휘 총괄한 책임자들은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선거과정에서 국가기관이 개입한 명백한 증거들이 드러났음에도 책임을 진 사람은 없다. 21세기 정보사회에서 개인의 신용정보가 대규모로 유출되었지만 이를 규제, 감독해야 할 그 어떤 사람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직후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명칭을 바꾸면서 ‘安全’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경주 마리나 리조트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부실한 공사를 감독해야 기관들이 기업과 한 통속이 되어 눈감아 주는 관행은 여전하다. 대통령이 ‘규제는 암덩어리’라며 규제완화를 부르짓자 기업과 관료들은 쾌재를 부르며 국민의 생명이나 안전은 뒷전인 채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기에 급급한 현실이다. 지난 3∼40년 급속성장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 곳곳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이들을 꼼꼼히 점검하고 사고 요인을 사전에 발견하여 차단해야만 대형 재난을 맏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기업경쟁력만 강조하며 위험요인들을 키우고 있는 실정이다.   
어디 그뿐인가. 쌍용차에서 해고된 노동자들, 제주 강정에서 해군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 밀양에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 그리고 정부의 허술한 저소득층 대책으로 인해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 등 우리 사회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생계를 위협당하고 생활 근거지를 파괴당할 위험에 처한 채 방치되고 있는 현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행복시대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세월호 대참사 이후 우리 국민들 중 과연 행복시대를 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다수의 국민들은 언제 자신이나 가족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각종 위험에 방치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결코 국민행복시대일 수 없다. 국민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분노의 끝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참으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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