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지난 여름 남아공에 갈 기회가 있었다. 만델라가 수감되었던 로벤 섬을 가봤다. 관광지로 바뀐 그 섬에는 남아공 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유럽과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과 남미 심지어 중동에서도 만델라의 흔적을 찾아 오고 있었다.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의 고른 존경을 받고 어느 나라에서도 추앙받는 위대한 지도자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영웅은 자서전이나 회고록 즉 傳記를 남긴다. 당연히 훌륭한 인격과 위대한 업적과 비범한 능력이 묘사되어 있다.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없는 결단과 모험과 의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자서전은 기본적으로 영웅적 시각이 개입되어 있다. 본인이 쓰거나 아니면 본인이 구술하고 작가가 쓰거나 자서전은 주인공의 위대함과 비범함에 적합한 서술과 내용을 전제로 한 것이다. 600만부가 팔리고 지금도 스테디 셀러로 읽히고 있는 만델라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은 어떤 의미에서 공식 기록이다. 위대한 저항가이자 해방자이자 정치지도자인 만델라의 공식 아이콘에 맞춰져 있고 겨눠져 있다.

 이에 비한다면 최근 출간된 ‘나 자신과의 대화’는 가장 인간적인 만델라를 만나게 해준다. 누군가가 서술하거나 구성한 것이 아니라 만델라가 직접 말하고 쓰고 대화했던 1차 자료를 그냥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공식 이미지 너머에 있는, 공개적 삶 뒤에 있는 개인 만델라를 보게 해준다. 온전한 초상을 그려줌으로써 지구상 최대의 존경이 아깝지 않은 영웅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우리와 마찬가지로 흠이 있는 사람이었음을 있는 그대로 내보여 준다.

 사실 진정한 영웅은 그의 평범함에서 비롯된다. 똑같이 두렵고 똑같이 불안하고 똑같이 피하고 싶지만 인간해방을 위해 당당하게 일관되게 자신있게 그 길을 가는 것이다. 외적으로 드러난 결과로서 영웅의 비범함만으로는 일반인에게 그의 삶을 뒤따르게 할 수 없다. 거기에 더하여 그마저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함과 불완전함과 인간적임을 분명히 보여줘야만 우리도 그를 따라 위대한 길을 갈 수 있다. 만델라의 가장 평범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어김없이 보여주는 이 책이야말로 세상의 일반인에게 만델라의 길이 따라갈 수 없는 길이 아님을 입증해준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담담히 수긍하는 일이야말로 사실은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위대한 일임을 깨닫게 해준다.

 평범함에 토대한 만델라는 그래서 겸손한 지도자였고 통합의 리더였다. 저항적 지식인이 그것도 종신형을 받고 27년 이상 수감한 정치범이 성공한 정치지도자가 되고 통합적 리더쉽을 발휘하기는 여간 쉽지 않다. 그러나 만델라는 탄압과 저항의 악순환을 끊고 ‘복수를 하고 싶은 유혹에 부딪쳤을 때도 화해의 필요성을 보았다’. 백인정권이 끝장나고 그들에게 억압받던 흑인정권을 이끌 때도 그는 진실한 반성과 진정한 화해를 이끌어내고 대결보다 통합을 이뤄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기는 쉽지 않다. 만약 그가 저항과 해방의 의지만으로 충일한 혁명가였다면 보복과 저항의 악순환에 빠졌을 지도 모른다. 이 책에 드러난 불완전하고 평범하고 인간적 고민에 익숙한 그였기에 오히려 흑백을 아우르는 통합의 리더쉽이 가능했다.

 이를 감안하면 과연 우리에겐 만델라의 평범한 영웅 정신 즉 강인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성공하고 국가통합에 기여한 지도자가 과연 얼마나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그나마 가장 근접하지만 그마저도 지금 남남갈등의 형국에선 근거없는 비난과 음해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엔 진영의 지도자만이 존재한다. 좌우, 여야, 진보보수의 극단적 대결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내로라 하는 정치지도자 역시 그들 진영의 논리에 포획되고 진영의 인기에 만족하고 있다. 진영을 벗어난 통합의 지도자라면 적어도 만델라에게서 평범함의 숨은 이치를 깨닫고 여기에서 비롯된 강인함과 겸손함을 배워야 할 것이다. 국가의 리더, 사회의 석학이 아니라 각자 자기가 속한 진영의 논객이나 리더에 만족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정치인과 지식인은 평범한 영웅 만델라의 겸손과 통합의 정신을 꼭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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