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유력 실세였던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실각이 공식 확인되었다. 1호사진에서 그의 얼굴이 삭제되고 노동당 정치국 회의 결정서와 더불어 체포되는 장면이 공개된 것은 이제 복권불가능을 넘어 잘못에 대한 공식처벌까지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우리에게는 절대권력 체제의 극적인 파워 게임으로 비쳐져 흥미롭게 다가올지 모르지만 북에서는 일단의 엘리트 그룹이 숙청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비정한 권력의 현실이다.

그런데 최근 장성택 숙청과 관련한 우리 내부의 분석과 전망은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측면이 적지 않다. 우선 장성택 숙청은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이 흔들리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김정은 체제의 리더쉽이 공고화됨을 입증하는 사건이다. 김정은의 권력을 위협하는 2인자 장성택의 제거가 아니라 김정은의 유일영도체게 확립을 확정짓는 마무리 작업으로서 장성택의 숙청이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

김정은은 이른바 세습권력이다.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의 권력이다. 따라서 권력의 속성상 김정은 체제는 스스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지난 해 리영호 총참모장의 해임은 군부에 대한 김정은식 홀로서기의 시작이었다. 당관료 최룡해를 총정치국장으로 내세워 김정일의 군부 내 인맥을 정리하기 위한 시도였다. 장정남 인민무력부장을 비롯해 군 핵심요직은 이제 비교적 젊은 김정은 사람으로 채워졌다. 내각 역시 아버지가 임명한 최영림 총리 대신 금년 4월 박봉주를 임명하고 젊은 장관급 부장들로 교체했다.

이번 장성택 숙청은 따라서 군부와 내각에 이은 당에 대한 김정일 그림자 지우기의 마지막 작업이었다. 김정일의 사람이고 당에 적잖은 인맥과 세력을 포진하고 있는 장성택을 이번에 비리와 부패 및 경제사업 방해 등의 책임을 물어 숙청함으로써 이제 노동당은 정풍과 쇄신이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세대교체와 함께 김정은의 당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장성택 숙청이 북한의 본격적인 권력투쟁의 시작이고 김정은 체제 불안정성의 증거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기대와 주관적 희망을 앞세운 오해와 편견일 뿐이다.

장성택 숙청 이후 정책기조의 변화와 관련해서도 이른바 개혁개방 정책의 퇴조와 군부 대남 강경파의 득세 등을 전망하는 분석 역시 근거가 희박하다. 장성택은 본래 개혁개방파로 분류되기 어렵다. 단지 대남사업에 자주 관여했고 대중국 인맥이 두터워서 대외협력과 외자유치를 핵심적으로 관장했고 그것이 외부의 눈에는 개혁개방 친화적으로 오해되었을 뿐이다. 장성택은 오랫동안 조직지도부 1부부장을 했고 복권 이후에는 당 행정부장으로 공안 사법기관을 관장해온 체제보위 핵심이었다. 필요하다면 가장 보수적인 역할을 자임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김정은 체제의 국가전략과 정책기조는 이미 공식화되고 입법화되어 진행되고 있다. 금년 3월의 핵무장과 경제건설 병진노선, 지난해 경제개혁의 신호탄이 된 6.28 방침, 금년에 입법화된 경제개발구 전략 등은 오히려 장성택과 상관없이 채택되고 확정되어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는 정책방향이다. 따라서 장성택 숙청이 향후 북의 정책변화를 결과하는 정도는 매우 미미할 뿐이다. 단지 장성택 숙청은 북한 내부의 권력지형의 변화일 뿐 정책기조의 변화와는 무관하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장성택 숙청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매우 신중하고 전략적이어야 한다. 마치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궁정 권력 잔혹사로 흥분할 게 아니다. 마치 북한 내부에 정변이나 권력투쟁이 시작된 것으로 착각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장성택 숙청을 계기로 김정은 체제의 유일지배체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해야 한다. 집권 2년 만에 아버지 그림자를 지워내는 김정은의 리더쉽을 똑바로 봐야 한다.

차분하게 북의 내부와 권력지형을 살펴보고 향후 우리의 대응도 매우 전략적으로 지혜롭게 마련해야 한다. 주관적 희망과 섣부른 흥분으로 북한 정변론에 경도되는 과도한 대북 발언이나 대응은 절대 금물이다. 퍼스트 레이디인 리설주 관련 추문까지 거론되는 것은 향후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장성택 숙청에 대해서는 일절 내색하지 않고 향후 북의 대남정책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단된 이산가족 상봉 재개와 북이 원하는 금강산 관광 회담을 장소와 시기를 북에 일임하면서 적극적으로 제의하는 것도 지금 시기 북의 태도변화를 유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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