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의 강경 대응을 보노라면 한반도에서 갑을관계의 실체를 의심케 한다. 이명박 정부가 주장한 남북관계 정상화는 잘못된 갑을관계를 바로잡겠다는 것이었다. 시혜를 베푸는 쪽이 우리인 만큼 남북관계에서 명백히 북이 을이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당한 기다림의 전략을 구사하면 대남 의존적인 북은 반드시 고개를 숙이고 굴복해 나올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아쉬운 쪽은 을이기 때문이다.

북이 항상 을이라는 인식은 경제사정이 곤궁한 탓에 외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원한다는 전제에서다. 특히 김정은 체제는 정치적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외부의 경제적 지원이 더더욱 절박하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북한은 남쪽에게 손을 벌리고 남북대화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정책적 결론은 남측이 먼저 손을 내밀 필요가 없다는 데로 모아진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경제사정이 어렵다는 분석이 그대로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을인 것으로 귀결되려면 경제적 지원을 꼭 남쪽에게만 의존할 때에야 가능하다. 남쪽이 아닌 대체재가 존재한다면 남북관계에서 반드시 북이 을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던 것도 갑을관계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다. 갑의 위치를 고수하려는 이명박 정부에게 북은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았고 오히려 대체재를 찾아 중국으로 달려갔고 그래서 북은 남측에 굴복하지 않고 군사적 도발로 응수했다.

더욱이 최근 북한은 대외전략의 전환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탈냉전 이후 북한의 대외전략은 체제인정과 안전보장을 미국에게 담보 받고 경제적 지원과 협력은 한국에게 의존하는 것이었다. 탈냉전 이후 대미협상과 남북관계의 전개과정이 그것이다. 그런데 20여년간 지속된 대미 안보 의존과 대남 경제 의존이라는 노선이 최근에는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선거에 의해 주기적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그로 인해 힘겨운 협상과 대립을 반복해야 하는 미국과 한국보다 오히려 중국에게 북한의 안보와 경제를 의존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효율적이다는 판단이 가능해진 것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G2로 성장한 중국도 북한의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일정하게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 천안함 사태 당시 미 항모의 서해 진입을 중국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북한의 입장을 시종일관 두둔한 사례는 이제 안보를 미국 아닌 중국에게 의존해도 가능하다는 방증이었다. 동시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압박 역시 북중 경협의 확대로 충분히 경제적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남북경협의 빈자리에 황금평 위화도가 대체되었고 남북교역의 감소만큼 정확히 북중교역이 증가했다. 굳이 미국에 읍소하지 않아도 한국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안보와 경제적 필요를 나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역설적으로 북이 얻은 교훈이었다면 과장일까?

한국과 미국에 의존하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하다는 북한의 입장은 금년 신년사에서도 잘 드러났다. 연설문 전반에 녹아 있는 분위기는 상당한 자신감이었다. 강성대국 원년의 활기찬 평양의 모습, 고층 아파트와 나아진 전력사정 등은 방북 인사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연말 은하3호 발사성공도 북의 자신감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신년사에서 주한미군 철수나 한반도 비핵화 등 미국을 겨냥한 적대적 혹은 우호적 입장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점이나 대남 관련해 기존의 원칙적 입장만을 재확인하고 있음도 북이 먼저 입장을 정하지 않고 미국과 한국에 공을 넘기는 전략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안보리 결의 이후 북의 강경한 제멋대로도 같은 맥락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북이 을임을 강조하는 안이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항상 북은 어렵고 그래서 고개 숙이게 되어있다는 잘못된 정세인식은 그릇된 정책선택으로 귀결된다. 아쉬운 것은 북쪽이니 우리가 나서서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펼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다. 박근혜 정부가 또 다시 자의적 갑을관계론에 매몰된다면 남북관계는 시작부터 가시밭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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