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색깔론과 합리적 햇볕론

                                                                          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처음 시작은 이게 아니었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선거부정 논란에서 출발하더니 어느새 색깔론과 매카시즘으로 변질되어버렸다. 민주주의 문제로 촉발된 사건이 가장 비민주적인 사상검증으로 확대되어 버린 것이다. 당선자와 진보당 일부 진영에 대해 종북과 주사파라는 레떼르가 부쳐지면서 그들을 격리시켜야 한다고 야단법석이다. 문제의 본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색깔 덧씌우기를 통해 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경계와 우려를 재생산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데는 진보당 스스로 자초한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비례대표 후보선출을 위한 당원선거에 부정이 있었음이 명백한 사실이라면 지도부와 당사자가 깨끗하게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 될 일이었다. 목표와 동기가 정당하니 수단과 절차는 부차적이라는 목표 우선주의, 나만 잘못한 게 아니라 비판자들은 더 나쁜 짓을 했다는 상대적 우월주의, 조중동의 프레임에 갇혀 진보진영 죽이기를 돕고 있다는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결국 당권파는 초기 대응부터 단추를 잘못 꿰고 말았다. 잘못된 논리와 경직된 조직문화 때문에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이젠 가래로도 못막게 된 것이다.
 
 선거부정을 넘어 지금 비판의 중심에는 종북 논란이 자리잡고 있다. 북한을 추종하고 따르는 세력이 대한민국 국회에 진입하고 제3정당이 되었다며 보수진영은 분노하고 있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조건에서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과 제도권 정당이 종북 노선에 빠져 있다면 일단 우려스러운 게 맞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내세운다 하더라도 북한을 대안적 모델로 간주하고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는 친북주의는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체제위협적인 게 맞다. 북한의 인권실상을 믿지 않으려 하고 독재체제의 권력세습을 정당화하려 하고 북한의 핵무기를 한반도의 전쟁 억지력으로 간주한다면 이는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것도 일반인이 아니라 국정을 관여하는 정치권이라면 문제는 간단한 게 아니다. 따라서 지금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는 진보당 사태의 종북 논란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거나 침묵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당사자가 진정성 있게 입장을 밝히는 게 정치적으로 맞다. 우리에게 친북은 옳지도 않고 아직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종북 논란으로 인해 진보진영 전체가 색깔론으로 매도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NL' 성향의 진보진영이 북한노선을 추종하는 종북과 동일시되는 것은 분명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기획된 마녀사냥이다. 일부 소수의 종북 논란을 빌미삼아 전체 NL 진영을 위험한 반국가 성향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NL로 표현되는 문제의식은 1980년대 대한민국의 변혁을 위해 민족문제와 통일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시작되었다. 민족자주와 평화통일을 핵심적 목표로 주장하면서 실제 우리 사회는 보다 대등한 한미관계와 보다 진전된 남북관계로 발전했다. 탈냉전 이후 한미관계의 변화와 재조정이 화해협력의 남북관계와 맞물리면서 NL의 문제의식은 상당부분 반영되었다. 지금도 한미동맹 일변도가 아닌 동북아 균형외교를 강조하고 남북의 적대적 대결 대신 대북포용정책을 우선시하는 것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정당한 입장이다. 따라서 종북 논란과는 별개로 한미관계와 남북관계를 고민하는 NL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지속되어야 한다.
 
 NL 중 일부가 아직도 북에 대한 환상을 깨지 못한 채 친북이라는 과거 틀에 갇혀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정권 타도론과 북한 민주화론에 빠져 극단적 반북으로 전향했지만 이들은 극히 소수의 편향적 입장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NL은 여전히 북한 실태를 정확히 인식하고 비판하면서도 한반도 평화와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대북포용이 불가피하고 효율적이라는 합리적 햇볕론을 지지하고 있다. 친북과 반북의 양편향이 아니라 대북 햇볕론이 사실 NL의 대세이고 흐름인 셈이다. 그래서 합리적 햇볕정책은 지금도 유효하고 정당하다. 극소수 편향의 극단적 반북과 친북이 전체 NL을 대변하는 게 절대 아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가지고 NL 전체의 목소리인양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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