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월간 폴리피플 7호(2010년 2월호)에 개재되었습니다.

박혜경_편집국장

세종시 입법예고는 향후 정계개편의 출발선

2010년은 이명박 정부의 집권 3년 차가 되는 해다. 2월25일, 이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맞이한다.
임기 5년의 절반이 지난 집권 3년 차는 집권자들에게 변곡점의 시기다.
3년 차가 지나면 정권 후반기로 넘어가고 차기 주자들이 미래권력을 놓고 ‘용들의 대전’이 벌어진다.
현재권력은 다음 자리를 서서히 준비해야 하는 레임덕 시기로 넘어가는 것이 집권 3년차다.
때문에 집권자 입장에서는 3년 차에는 무엇인가 정권의 성과와 업적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MB 집권 3년차…
마음은 급하고 성과는 내야겠고…

‘힘 좋았던’ 집권 1년 차에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촛불시위’의 화마에 휩쓸려 불끄기로 세월을 다 보냈고, 집권 2년 차에 들어서서 무엇인가 좀 해보려고 했더니 ‘노무현 서거’라는 충격적 사태를 맞이하면서 또 1년을 그렇게 보냈다. 5백만 많게는 1천만의 엄청난 역풍을 일순간에 맞으면서 노무현 서거정국에서 가까스로 살아나니 이번엔 김대중 서거였다. 늘어난 서거정국으로 집권 2년 내내 불길만 끄다가,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볼일 다 본 격이 되고 말았다.
노무현, 김대중 서거가 끝나니 이번엔 ‘세종시 블랙홀’에 빠져들어 지금껏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촛불시위와 노무현 서거는 MB와 야권-국민과의 대척점이었다면 이번엔 ‘여권이 깨질 판’이다. 세종시 정국이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與與내전’의 권력투쟁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지난 2년 이 대통령은 어느 것 하나 확실히 해내지 못했다. 촛불시위로 급제동 걸리고, 노무현 서거로 발목이 잡혔고, 세종시로 꼬여갔다. 상황은 뒤엉클어졌고, MB국정의 야심찬 계획은 모두 엉켜버렸다.
제대로 해놓은 것도 없이 벌써 집권 3년 차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마음은 급하고 성과는 내야겠는데 정권의 힘은 점점 빠져나가고 있다. 경제대통령으로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야당보다 거의 두 배 가까운 지지율 격차를 보이면서 들어선 이명박 정부의 지난 2년을 되돌아보면 그다지 크게 기억나는 것이 없다.
있다면 G20 서울유치와 아랍에미레이트 원전수주이다. 또 경제대통령으로서 ‘녹색성장’과 ‘중도실용 친서민정책’의 화두를 던져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고 보금자리 주택, 미소금융,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ICL) 등 ‘중도실용 친서민정책’이 그나마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녹색성장은 ‘대운하’ 문제로 흔들리다가 확실한 업적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세종시 블랙홀은 한마디로 ‘박근혜 블랙홀’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급한 건 이 대통령이다.
그래서 드디어 이 대통령은 MB정권의 최대 과제인 ‘세종시 수정’을 조기에 마무리 짓겠다고 결심하고, 1월 27일 입법예고를 하고, 3월에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고, 4월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일정표도 제시했다. 2-3월에는 한나라당 당론수정의 고비를 넘겨야 한다.
여권은 6.2 지방서거 전 세종시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겠다고 작심하고 서두르고 있다. 지방선거 결과도 장담 못할 뿐만 아니라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는 지방선거 후에는 사실상 처리 불가능이다.
정치권은 매우 바빠졌다. 국회 표대결을 위한 판짜기부터 여론몰이까지 찬-반 진영의 정치일정은 바쁘게 돌아갈 전망이다.
그동안 야권이 ‘조속처리’를 압박해도 여권은 ‘분당’ 위기로 호흡조절 해왔지만 1월말로 접어들면서 여권 기류는 ‘세종시 속도전’으로 다시 바뀌었다.
이처럼 바뀐 이유는 단하나, 이 대통령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MB로서는 해가 바뀌어도 한번 빠져버린 ‘세종시 블랙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장애물은 여당에 있었다. 60여 석을 쥐고 있는 ‘박근혜의 힘’은 당론수정과 국회처리를 막았고 MB로서는 거대한 장벽과도 같다.

‘입법예고’는 박근혜와 결별선언

이 대통령이 ‘업적’으로 남기고 싶어 무리수를 두었던 ‘세종시’ 문제는 도리어 ‘박근혜’만 키워준 채 별 실익 없이 끝날 판이었다.
집권 3년 차로 들어서면서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세종시 수정이 ‘박근혜’에 막혀 세월만 보내다가 집권 후반기를 맞고 레임덕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졌을 것이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박근혜 탈출’ 가부를 ‘결단’해야 했고, ‘입법예고’는 MB가 朴으로부터의 ‘탈출선언’이며 챗바퀴 도는 해법 없는 세종시 소용돌이에서의 ‘출구전략’이다. 미래권력인 朴과 손을 끊고 MB가 독자적으로 나아가겠다는 ‘결단’이다.
문제는 세종시 수정이 사안의 폭발성으로 인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활화산과도 같이 MB정권 전체를 ‘공멸’시켜버릴 수도 있다는 데 있다. 그동안 ‘박근혜 블랙홀’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도 모두 보수의 공멸, MB정권의 공중분해에 대한 우려와 고민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정안 입법예고를 선언함으로서 이제는 당론수정, 국회 수정법안 제출, 국회처리의 일사천리식 순서만 남았고, 이것은 ‘박근혜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朴탈출 전략’이 ‘MB포위전략’의 역풍

이로써 한나라당은 ‘쫙’ 쪼개지는 분당의 원심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말았다. 한나라당은 ‘분당’에 가속도가 붙어갈 것이고 ‘친박’ 진영은 탈당의 명분을 얻고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그동안 ‘보수의 공멸’을 막아보겠다고 ‘MB의 양보’ ‘MB와 朴의 회동’ ‘MB+朴+昌의 보수대연정’ 등 갖가지 방안을 쏟아냈지만 이 모든 해법이 ‘쓸데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입법예고를 선언한 직후 민주당은 ‘야 3당과 친박의 세종시 연대’ 연석회의 구성을 제안하면서 본격적으로 ‘朴과 정치적 연대’의 움직임에 가속패달을 밟고 있다. 이른바 여야를 초월해 ‘반MB 정치연대’가 형성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朴을 벗어나려했던 ‘탈출전략’이 자칫 ‘MB 포위전략’의 역풍을 맞을 상황이다. ‘박근혜 블랙홀’을 벗어나니 ‘반MB 연합 역풍’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내부의 적과 절연을 선택한 MB의 ‘회생카드’가 결국 MB를 사지로 몰아넣는 ‘죽음의 카드’가 되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다.
충청은 이미 박근혜이고, 반반 쪼개져 있는 영남은 시간이 갈수록 미래권력 박근혜에게 돌아설 것이고, 수도권에서는 행정부처 기득권을 포만하게 누리고 있는 서울을 제외한 인천, 경기권에서는 충청출신도 많고 지역역차별론으로 인해 역시 박근혜 쪽에 가까워지고 있다.
여기에 ‘야권’도 박근혜와 손잡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세종시 입법예고’는 야권으로서는 ‘울고 싶은데 뺨때려 준 격’이 되었다. 朴과 손잡을 명분만 궁리했던 야권에 이처럼 확실한 카드는 없다. ‘세종시 연대’는 ‘반MB연대’로 나아갈 것이고 이는 향후 대권에서의 정계개편의 출발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이른바 여야를 초월해 ‘朴을 중심으로 한 보수대연합’의 정계개편 가능성이 물위로 드러나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시간이 없다. 시간은 오히려 박근혜의 편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세종시 문제를 끌면 끌수록 유리해지는 것은 박근혜이고, 불리해지는 것은 이 대통령이다. 이명박 정부에게 남은 시간은 3년이지만, 그 힘은 떨어질 것이다. 특히 세종시 수정입법 강행으로 자신의 힘 ‘절반’을 잘라버린 이 대통령으로서는 그 힘이 더 떨어질 것이다.
MB권력의 향배는 6.2 지방선거 결과로 결정난다. 그러나 ‘반’이 절단 나버린 한나라당이 ‘MB 심판론’의 강풍을 이겨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MB는 야권의 ‘MB심판론’에 朴의 막강한 힘을 실어주고 말았다.
정권의 중간평가인 6.2 지방선거에서 朴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형편이었는데, 이제 홀가분하게 ‘反MB’를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집권 3년 차 업적을 남기겠다는 일념이 이제는 정권 자체를 무너뜨려버릴 지도 모를 핵폭풍을 만들어버렸다. MB정부는 세종시 수정도, 쏟아낸 갖가지 국정과제도 뭐하나 해놓은 일 없이 ‘박근혜’와 싸우는 일만 하다가 끝난 정권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정권의 사활을 걸었던 세종시는 ‘긁어 부스럼’ 만든 채로 끝날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PD수첩 무죄판결’을 이유로 ‘법원인사권’에까지 손을 뻗치려 하고 있다. ‘정치성향 법관 형사사건 배제’가 그것이다. 법관의 평가제를 실시하겠다는 것.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이념논란을 불러일으킨 결과가 법관의 인사권 장악이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는 보수의 균열을 불러 오기에 충분하고, 이 사회 엘리트층의 대명사인 법조계 전체의 반발도 불러 오기에 충분하다.
3년차로 접어드는 MB정권이 시작부터 곳곳에 악재가 도사리고 있다.

지방선거와 대선의 함수관계…
지방선거 이기면 대선 승리

MB도, 朴도, 야권도 집권후반기로 넘어가는 6.2 지방선거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여기서 역대 대선과 지방선거의 함수관계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과 같은 4개 동시 지방선거는 1995년 YS정권 때였다. 1992년 YS가 대선에서 승리한 후 2년 반 만인 6.27 지방선거는 YS 중간평가였다. 시기적으로 지금 이명박 정부에서 2년 반 만에 치르는 6.2 지방선거와 상황이 같다. 이때 YS의 민자당은 대참패를 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조순 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결정적이었다.
그 원인은 JP팽으로 충청을 잃어버린 여권분열 때문이었다. 지방선거에서 패한 후 2년 뒤에 치러진 1997년 대선에서 여지없이 패했다. 역사상 최초의 정권교체인 김대중 정권을 들어서게 한 1등공신은 DJ의 정치숙적인 YS였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당시 정권재창출의 실패 원인은 지방선거의 패배는 민심이 YS를 떠났다는 것이었고, 또한 YS와 昌의 여권 분열 때문이었다.
김대중 정부시절에는 1997년 대선승리 바로 다음 해인 집권 1년차인 1998년에 치러졌다. 이때는 집권 하자마자 치러진 선거여서 정권의 힘이 강력했을 때였다. 이때 서울시장으로 고건 후보가 당선되면서 DJ정권은 정치적 안정을 가져왔다.
그 후 2000년 총선 참패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2002년 노무현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노무현 후보는 부산출신일 뿐만 아니라 1995년 부산시장으로 출마했던 경력이 있어 부산에 정치적 기반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에서 치러진 마지막 선거인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DJ 여당이 참패했다. 이때 서울시장으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 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지방선거 참패는 노무현 정권에서 치러진 2006년 4기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을 당선시켰고, 이 힘이 2007년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킨 배경이 되었다.
노무현 정권은 지방선거에서 패배함으로서 정권교체에 실패하게 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재집권에 실패함으로써 결국 가장 아프게 인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세력이 집권하고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집권에 실패한다는 것이 지방선거와 대선의 함수관계다. MB 집권 3년차 최대 정치행사는 6.2 지방선거다. 그곳에 세종시 해법도 있고, 그곳에 대권의 향배도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승자는 살고, 패자는 죽는 가장 무서운 정치인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가 절반을 달려온 정권의 꼭지점에서 치러질 6.2 지방선거에 각 세력들은 정치사활을 걸고 있다.
MB는 집권 3년차에는 확실한 업적을 남기고 성공한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박근혜는 차기 주자 1위자리를 굳혀 미래권력 자리를 확실히 움켜쥐기 위해서, 야권은 재집권의 실패의 악몽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또는 자파세력의 안전보장을 위해서 뛸 것이다.
여기에 집권 3년차가 시작되자마자 벌써 이명박 정부의 힘의 파열음과 함께 레임덕 조짐이 보이고 있다. 대법원의 독립선언이다.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 ‘강기갑 의원 무죄’ ‘시국선언 전교조 무죄’에 이어 ‘PD수첩 광우병 보도 무죄’까지 이른바 ‘릴레이 무죄판결’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물론 이용훈 대법원장이 노무현 정권 때 임명되었고, 개혁성향의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라 하더라도 서슬퍼런 집권 초라면 언감생심(焉敢生心)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권력의 한 축인 ‘사법 권력’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초장부터 정권의 정당성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국정운영 전반을 뒤죽박죽 만들었던 ‘촛불시위’의 원인제공자 ‘PD수첩 무죄판결’은 여느 무죄판결과는 격이 다르다.
MB정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촛불시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집권 3년차도 시작과 동시에, 더 심해진 세종시 소용돌이에 ‘사법권력의 독립선언’까지 처음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다. 이명박 정권은 ‘촛불시위’의 불길에 다시 휩쓸릴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기억의 정치에 식은땀이 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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